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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성황후의 그녀’ 진령군 국정농단… 역사 법정에 서다

입력 : 2017-02-25 03:00:00 수정 : 2017-02-24 19:4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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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상열 지음/추수밭/1만4000원
조선을 홀린 무당 진령군/배상열 지음/추수밭/1만4000원


탄핵정국을 초래한 ‘최순실 게이트’에 대해 외신들은 ‘샤머니즘 스캔들’(shamanism scandal)이라고 명명했다. 졸지에 한국은 ‘샤머니즘의 국가’가 됐다. 일부 외신들은 최순실씨를 가리켜 ‘무당’이라고도 표현했다. 이번 국정농단 사태는 비선실세에 의한 국정농단이라는 점, 샤머니즘이 연관되었다는 점에서 130여년 전 진령군(眞靈君)을 연상케 한다.

역사교양서 집필가인 배상열씨는 ‘조선을 홀린 무당 진령군’을 통해 어제의 역사가 반복되는 오늘의 현실을 톺아본다.

고종실록(高宗實錄)에 따르면 1894년 7월 전(前)형조참의 지석영이 고종에게 “신령의 힘을 빙자하여 임금을 현혹시키고 기도한다는 구실로 재물을 축내며 요직을 차지하고 농간을 부린 요사스러운 계집 진령군에 대하여 온 세상 사람들이 그녀의 살점을 씹어 먹으려고 합니다”고 상소를 올렸다. 격동의 시기였던 19세기 말, 진령군은 어떤 인물이기에 이토록 극단적인 지탄을 받았을까.

무당에게 진령군이라는 군호가 내려졌다는 정식 기록은 없지만, 당대 조선인들은 그를 진령군이라고 불렀다. 저자는 그가 스스로를 진령군으로 칭했고, 왕과 왕비가 이를 묵인했을 것으로 추정한다. 당시 천민으로 취급받았던 무당이 군호를 자칭했다는 것은 그의 위세를 짐작하게 하는 부분이다.

파격적으로 신분이 상승한 진령군은 명성황후를 뒤에서 조종하고 국정을 농단했다. 왕실에서는 굿판이 끊이지 않았다. 고대 중국의 영웅에게 조선의 안녕을 기원하는 일도 벌어졌다. 국가의 방향을 책임져야 하는 고종의 뒤에는 명성황후가 있었고, 그 뒤에는 진령군이 있었던 것이다.

권력의 실세인 진령군에게 줄을 대기 위해 탐관오리들은 북관묘 앞으로 길게 줄을 섰다. 수염이 하얀 중신들은 그와 의남매를 맺기 위해 서로 다퉜다. 장차 조선을 이끌 인재들은 그를 어머니로 모시고자 머리를 조아렸다. 그들의 전횡으로 조선의 국고는 탕진되었고, 19세기 말 조선의 운명이 걸린 중요한 시기 국정은 혼란 속으로 표류했다. 그렇게 조선은 근대화와 열강의 침략 앞에서 서서히 침몰했다.

헤겔은 “역사는 두 번 반복된다. 한 번은 비극으로, 한 번은 희극으로”라고 말했다. 국정을 농단했던 진령군은 탄핵되어 역사에서 자취를 감췄다. 그러나 성강호라는 박수무당이 고종을 홀려 관직까지 받는 등 다시 국정을 농단했다. 진령군은 끌어내려졌지만, 대한제국은 변한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한국 현대사는 마치 습관처럼 비슷한 참사를 되풀이했던 시간의 연속이다. 1994년 성수대교 붕괴사고와 2003년 대구지하철 참사, 2014년 세월호 참사를 반복해서 겪었다. 위기를 맞닥뜨릴 때마다 분노했지만, 비극은 어김없이 반복됐다. 저자는 분노의 이후가 없을 때 어떤 내일이 나타나는지 진령군을 통해 보여준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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