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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세의 색 ‘파랑’ 이성의 색 ‘하양’ , 다채로운 색채 세계로의 여행

입력 : 2017-02-25 03:00:00 수정 : 2017-02-24 19:5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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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궁산 지음/창비청소년문고/1만2000원
문명을 담은 팔레트/남궁산 지음/창비청소년문고/1만2000원


인류의 역사에서 색은 인간과 밀접한 관련을 맺고 있다. 색은 인간과 끊임없이 영향을 주고받으며, 지역과 사상에 따른 의미가 다르게 해석됐다. 색의 의미를 살펴보는 것은 당대 사회를 이해하는 방법이 되기도 한다.

생명 판화가로 불리는 남궁산 판화가는 신간 ‘문명을 담은 팔레트’를 통해 인류가 색을 어떻게 만들고 퍼뜨렸는지 살펴본다.

고대 그리스에서 이름조차 부여되지 않았던 파란색은 중세시대를 거치면서 가장 인기 있는 색으로 부상했다. 중세 교회 예술에서 성모의 옷이나 천상 세계를 파란색으로 표현하면서, 파란색의 지위가 올라간 것이다. 18세기 후반 유럽의 신고전주의는 하얀색을 우월한 색으로 여겼다. 하얀색이 냉철한 이성과 엄격한 조화를 중요시하던 당시 철학에 적합한 색으로 여겨졌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서는 명절이 되면 아이들에게 색동옷을 입혔다. 색동옷은 단지 곱다는 이유로 입힌 것이 아니다. 오방색으로 물든 색동옷이 나쁜 기운을 막아주고, 아이의 무병장수를 이루어 준다고 믿었기 때문이다. 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장신구와 신발을 착용할 때 오방색의 균형을 신경 썼다.

오늘날에는 누구나 자신이 좋아하는 색을 곁에 둘 수 있지만, 수백년 전만 해도 색은 계급과 직위를 나타내는 수단이었다. 이 때문에 귀한 색은 상류층이 독점했다. 색을 얻기 위한 인간의 노력은 상당했다. 광물이나 식물, 심지어 곤충에게서 색을 얻으려 애를 썼고, 색에 포함된 납이나 비소 성분 때문에 목숨을 잃기도 했다.

화학이 발전하고 인공적으로 색소를 합성할 수 있게 되면서 인간은 비로소 색을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게 됐다. 로마 제국에서 황제의 색으로 여겨진 보라색은 가장 먼저 합성염료로 발명되면서 색의 대중화를 상징하는 색이 됐다.

권구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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