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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아내나 남편조차 처음 보는 듯한 상황에 빠지면 어찌할까. 소설가 이유(48∙사진)가 펴낸 첫 소설집 ‘커트’(문학과지성사)의 모두에 수록된 ‘낯선 아내’는 안면인식장애에 빠진 남자를 등장시켜 잘 알고 있는 것 같지만 궁극적으로는 서로 다른 존재들일 수밖에 없는 관계의 조건을 낯설게 드러낸다.

2010년 세계일보 신춘문예 등단작이기도 한 이 단편의 남자 직업은 형사다. 살인사건이 일어나고 죽은 자의 내연녀가 용의자로 떠오르는데 잠복 끝에 범행 장소 인근을 다녀간 여자를 만나보니 그 여자는 자신을 ‘여보’라고 부른다. 여러 정황을 따져보아 아내가 죽은 자의 내연녀일 가능성도 다분하지만 끝내 사실을 알 수는 없다. 아내가 이혼을 요구한 적이 있을 때 그녀와 진지하게 대화를 나누는 차 안에서 남자는 비가 온다며 와이퍼를 작동시키고, 아내는 마른 하늘이어서 놀란다. 남자는 성장기에 부모가 이혼하고 오갈 데가 없었던 적이 있었다. 그는 “내 부모라는 사람들이 내 존재를 거부한 순간부터 줄곧 비가 내렸다”고 중얼거린다. 

낯선 세상에서 서로 깊이 알 수 없는 상태로 살아가는 존재의 숙명을 드러낸 작가는 표제작 ‘커트’에서는 “온갖 잡냄새로 시달리던 머리통”을 가위로 댕강 잘라버리는 미용사의 판타지를 구사한다. 썩은 내 나는 머리통을 제거하고도 죽지 않고 살아갈 수 있다. ‘꿈꾸지 않겠습니다’에서는 꿈을 꾸는 대로 그 꿈이 현실에서 이루어지는 판타지를 그려낸다. 꿈을 꾸어도 문제고 꾸지 않아도 결핍에 시달린다. 꿈에서도 상상할 수 없는 현실과 꿈 같은 세상은 어떻게 다르고 같을까. 문학동네소설상을 받은 장편 ‘소각의 여왕’에서는 쓸쓸하게 죽어가는 이들의 현실을 리얼리즘의 시선으로 바라보았지만, 단편 8편이 수록된 그녀의 첫 소설집에서는 기발한 상상력을 동원해 현실을 우회적으로 드러내는 편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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