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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여울의문학기행] ‘겉과 속 다른 세상’에 대한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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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23 21:50:51 수정 : 2017-04-11 14:19: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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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심 따로 표현 따로… 의심 가득한 사회
선의·정의의 소중함 되새기는 연습 필요
연일 국내외로 테러와 살인에 관련된 뉴스가 터지니 ‘평화’라는 것은 우리 머릿속에만 있는 이상이 아닐까 하는 절망감이 드는 요즘이다. 더구나 ‘이것만은 안전해야 할 것 같은’ 것들이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생각이 들면, 평화는커녕 기본적인 ‘신뢰’조차 불가능한 사회가 돼가는 것이 아닌지 걱정스럽다. 특히 우리의 식탁이 걱정이다. 지난해 우리나라에 수입된 유전자변형식품(GMO)은 무려 214만t이었고, 아직 우리나라에서는 GMO 완전표시제가 실시되지 않고 있다. 식용유, 간장, 액상과당 등 가공식품에서 가장 많이 사용되는 재료들이 GMO 표시대상에서 제외돼 우리는 입속으로 들어가는 음식의 원재료에 대한 알권리를 100% 실현하지 못하고 있다.

이규리 시인의 ‘껍질째 먹는 사과’를 읽으니, GMO는 물론 신선한 과일조차 안심하고 먹을 수 없는 우리 식탁이 불안해진다. “껍질째 먹을 수 있다는데도/ 사과 한입 깨물 때/ 의심과 불안이 먼저 씹힌다”니, 정말 사과 한 알 마음대로 깨물 수 없는 세상이 안타깝다. 어디 사과만 그런가. 사람의 말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독을 묻힌 화살이 되곤 한다. “주로 가까이서 그랬다/ 보이지도 않는 무엇이 묻었다는 건지/ 명랑한 말에도 자꾸 껍질이 생기고/ 솔직한 표정에도 독을 발라 읽곤 했다”니, 이제 타인의 솔직하고 명랑한 말투조차 믿지 못하게 된 우리의 의심이 농약보다 무서워진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진심’은 따로 있고 ‘표현’은 예의상 하는 것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지니게 됐고, 아무리 좋은 말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게 됐다. 칭찬을 해줘도 ‘무슨 꿍꿍이가 있나’ 싶고, 사과를 해도 ‘진심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한다.


정여울 작가
‘겉 다르고 속 다르다’는 말은 인간의 마음을 절반만 이해한 문장 같다. 이규리 시인의 시처럼 “중심이 밀고 나와 껍질이 되었다면/껍질이 사과를 완성한 셈인데”, 그저 껍질만 벗겨버리고 속살만 야금야금 먹는다고 해서 불안이 치유될까. 껍질과 속살은 본래 하나였으니, 우리는 ‘겉 다르고 속 다른’ 존재들이 아니라 ‘안과 겉’을 자연스럽게 일치시키는 삶의 방식을 잃어버린 것이다. 자기를 잃는다는 것은 바로 그 겉모습에만 신경 쓰느라 점점 비틀어지고, 문드러지고, 짓밟혀가는 자신의 ‘안쪽’을 돌보지 못하는 비극이 아닐까.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위험한 일, 즉 자아를 상실하는 일은 아주 은밀하게 벌어진다고.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은 ‘알 수 있는 상실’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주 미세하고 점진적이며 거의 무의식적인 일이기에 우리는 자칫하면 ‘겉모습’에 정신이 팔려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꿈꾸던 것을 몽땅 잊어버릴 수 있다. 의심과 불안에 지칠수록, 우리는 좀 더 자신을 믿고, 타인을 믿고, 선의와 정의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껍질째 먹는 사과’라고 분명히 씌어 있는 사과조차 기어이 껍질을 벗겨 먹는 우리는, 이 불안 때문에, 이 의심 때문에 더 불행해지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마음을 놓아버리고 싶다. 타인의 진심조차도 몇 번이고 의심함으로써 더욱 불안해지는 이 마음의 운전대를 놓아버리는 ‘무장해제’가 그리운 요즘이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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