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의·정의의 소중함 되새기는 연습 필요
이규리 시인의 ‘껍질째 먹는 사과’를 읽으니, GMO는 물론 신선한 과일조차 안심하고 먹을 수 없는 우리 식탁이 불안해진다. “껍질째 먹을 수 있다는데도/ 사과 한입 깨물 때/ 의심과 불안이 먼저 씹힌다”니, 정말 사과 한 알 마음대로 깨물 수 없는 세상이 안타깝다. 어디 사과만 그런가. 사람의 말이야말로 가장 무서운 독을 묻힌 화살이 되곤 한다. “주로 가까이서 그랬다/ 보이지도 않는 무엇이 묻었다는 건지/ 명랑한 말에도 자꾸 껍질이 생기고/ 솔직한 표정에도 독을 발라 읽곤 했다”니, 이제 타인의 솔직하고 명랑한 말투조차 믿지 못하게 된 우리의 의심이 농약보다 무서워진다. 우리는 언제부턴가 ‘진심’은 따로 있고 ‘표현’은 예의상 하는 것이라는 이분법적 세계관을 지니게 됐고, 아무리 좋은 말도 곧이곧대로 듣지 않게 됐다. 칭찬을 해줘도 ‘무슨 꿍꿍이가 있나’ 싶고, 사과를 해도 ‘진심은 아니겠지’라고 생각한다.
정여울 작가 |
철학자 키에르케고르는 이렇게 말한다. 세상의 모든 일 중에서 가장 위험한 일, 즉 자아를 상실하는 일은 아주 은밀하게 벌어진다고. 물건을 잃어버리거나, 기억을 잃어버리는 것은 ‘알 수 있는 상실’이다. 하지만 자기 자신을 잃어버리는 것은 아주 미세하고 점진적이며 거의 무의식적인 일이기에 우리는 자칫하면 ‘겉모습’에 정신이 팔려 우리 자신이 진정으로 원하고 꿈꾸던 것을 몽땅 잊어버릴 수 있다. 의심과 불안에 지칠수록, 우리는 좀 더 자신을 믿고, 타인을 믿고, 선의와 정의의 소중함을 되새기는 연습을 해야 하지 않을까. ‘껍질째 먹는 사과’라고 분명히 씌어 있는 사과조차 기어이 껍질을 벗겨 먹는 우리는, 이 불안 때문에, 이 의심 때문에 더 불행해지는 것은 아닌지. 가끔은 마음을 놓아버리고 싶다. 타인의 진심조차도 몇 번이고 의심함으로써 더욱 불안해지는 이 마음의 운전대를 놓아버리는 ‘무장해제’가 그리운 요즘이다.
정여울 작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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