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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어느 소방관 가장의 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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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23 08:00:00 수정 : 2017-02-23 11:2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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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싫다. 남들의 시선이… 얼마나 억울하면 이렇게 죽겠나. 소방관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어린 내 아들은 어떻게 살아야 하나.”

제주 소방장비 납품 비리에 연루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던 제주도소방안전본부 장모(50) 소방위가 지난 13일 스스로 목숨을 끊기 전 남긴 자필 유서 내용 중 일부다.

‘아 힘들다’로 시작된 A4용지 8장 분량의 유서는 27년 동안 사명감을 갖고 소방관 일을 해 왔는데 검찰 수사를 받게 돼 아들에게 부끄럽고 범죄자 취급하는 주위 시선, 검찰 수사에 대한 억울함과 결백함을 주장하는 내용이 담겨 있다. 


◆검찰 수사받다 숨진 소방관…‘억울하다’ 유서 남겨

장 소방위는 뇌물수수 혐의로 구속기소된 강모(37) 소방장과 여행에 동행했다가 평소 알고 지내던 업체 관계자가 항공료를 대신 지불한 경위를 추궁받았다. 장 소방위는 두 차례 검찰 조사를 받고 강씨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뀌었다. 그는 유서에서 “억울한건 풀어야 하겠습니다. 죽음으로 답합니다. 비행기표 값을 나중에 다 갚았습니다. 여행경비 처리 다했고…”라며 결백을 주장했다.

그는 “검사님, 꼭 제가 사는 집에 들러서 사는 꼴을 보십시오. 남들처럼 잘 살지도 못하고, 꼭 뇌물을 받아 먹는 놈처럼 보지 마시고… (항공료를 선결제한 지인에게) 계좌번호 문자메시지로 찍어주라고 그렇게 말했건만…”이라며 억울함을 주장했다.

그는 “너무 억울합니다. 장비계(직원)도 아니고. 남들이 뭐라할까요. 소방을 어떻게 볼 지 전 그게 걱정입니다. 어린 아들이 나만 좋아하고 소방차, 포클레인 좋아하고...”라며 글을 잇지 못했다. 그는 “직원 여러분, 저 그렇게 더러운 놈 아닙니다. 공짜 안 좋아하고, 아이 엄마가 늘 ‘공짜 좋아하지 말고, 당신이 먼저 계산하라’고 시키곤합니다”라며 떳떳한 공직생활을 했다고 자부했다.

장 소방위 부인(45)은 “119 구조대와 소방교육대 전문교육 교관으로 근무하며 예산과 계약 부서와는 거리가 먼 사람”이라며 “소방관으로서 하나밖에 없는 어린 아들에게 부끄럽지 않게 열심히 일 해왔는데… 5년 후에 명퇴하겠다고 했는데…”라며 눈물을 글썽였다.

장 소방위는 유서 끝자락에 “조사에 임하시는 분들 다 얘기하세요. 존경하는 도지사님, 소방(이) 얼마나 풍비박산나야 되겠습니까. 이번 일을 계기로 깨끗한 소방, 욕 많이 안먹는 소방이 돼길 바랍니다”라고 당부했다.

그는 “이제 빚은 없습니다. 2016년이여 안녕. 아들아 사랑해. 여보 미안해. (그동안) 못해준 말 ‘사랑해’. 벌금은 대신해서 내줘”라고 끝을 맺었다.

장 소방위 부인은 “검찰 수사에 대한 억울함보다는 범죄자 취급하는 주위 시선과 소방관 아빠를 자랑스러워하는 아들에게 부끄러움이 무엇보다도 컸던 것 같다. 돌아가시기 며칠 전부터 아들을 곁에 오지 못하게 해 이상했다”고 말했다.

숨진 장 소방위는 유서에서 “오늘 검찰에 가서 ‘이건 아니다’라고 하려 했는데 못하네. 오늘 변호사님 만나기로 했는데… 발등에 불이 붙어야 변호사를 찾느냐. 남들은 다 미리 선임하는데… 통장에 돈도 없어서 형에게 빌려서 선임한 주제에… 난 참 바보다(중간 생략) 변호사님, 저의 뭣을 믿고 기소유예라고 해서… 그래도 나는 파면인데”라며 자조와 회한이 섞인 글을 남겼다. 장 소방위는 숨진 당일 오후 변호사와 함께 검찰에 출두하기로 약속했었다.

제주지검은 장 소방위가 사망한 이튿날인 14일 공소권 없음 처분을 내렸다. 김한수 제주지검 차장검사는 “여행경비에 대한 혐의는 입건하지 않았고 구속기소된 강씨 범행에 일부 가담한 정도로 범행이 중하지 않았는데도 극단적 선택을 해서 너무 안타깝다”며 “강압수사는 있을 수 없다”고 말했다.

◆검찰 수사받은 소방공무원 잇단 비보 ‘당혹’…소방본부 ‘침통’

장 소방위가 스스로 목숨을 끊을지 나흘만에 사건에 연루된 또 다른 공무원이 자살을 기도해 검찰과 경찰이 당혹해 하고 있다. 제주도소방안전본부는 침통한 분위기다.

지난 17일 제주 소방공무원 비리 관련 조사를 받던 제주동부소방서 소속 강모(50·소방령)씨가 차 안에서 유해가스를 흡입해 자살을 기도하다가 행인에 의해 발견돼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다. 강 소방령은 이미 구속기소된 강 소방장 부서 책임자로, 범행에 가담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고 있다. 공교롭게도 검찰 조사에서 참고인에서 피의자 신분으로 바뀐 공무원들이 잇따라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검찰 관계자는 “향후 수사에 참작할 수는 있다. 입건한 범죄 사실 무게로 볼 때 전혀 예상치 못한 일이 벌어져 안타깝다”고 말했다.

지난 14일 구속기소 된 강씨는 2012년 2월부터 2016년 5월까지 면체소독기 등 소방장비 입찰관련 정보를 사전에 납품업체에 제공해 낙찰을 도운 혐의를 받고 있다. 강씨는 낙찰 조건으로 소방업체 관계자 2명으로부터 2400여만원을 받고 허위공문서를 작성하는 방식으로 장비구입 관련 국고 1600여만원을 챙긴 혐의도 있다.

경찰은 강씨의 비리사건을 중심으로 조직 내부에 조력자나 이를 방관한 직원들이 있는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 중이다. 담당 공무원에 대한 소환조사도 이어지고 있다. 경찰 관계자는 “송치한 사건과 별도로 납품 비리 의혹에 대한 수사를 계속 진행할 것”이라며 “소방 내부의 조직적인 비리인지 여부에 대해서는 조사가 필요하다”며 말을 아꼈다.

애초 직원의 개인비리라는 입장을 밝혔던 소방안전본부는 구속에 이은 수사 확대, 직원들의 극단적 선택까지 이어지자 ‘멘붕’에 빠졌다. 소방 관계자는 “직원들이 줄줄이 수사기관에 출석하고 비보까지 전해지면서 그야말로 최악의 분위기”라며 “다들 빨리 수사가 마무리 되길 바라는 마음 뿐”이라고 전했다.

제주=임성준 기자 jun258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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