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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조선왕릉 석물 ‘진한 한국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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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2-23 08:00:00 수정 : 2017-04-11 13:44: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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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종 예릉의 무석인상.
우리나라 미술사학의 선구자 고유섭 선생은 한국미술의 본질을 이르러 ‘구수한 큰 맛’ 또는 ‘무기교의 기교’ 등으로 정의한 바 있다. 중국 미술처럼 우람하지도, 일본 미술처럼 장식적이지도 않으면서 푸근함 속의 담대함과 섬세함이 숨어 있는 우리 미술의 성격을 집약한 말이라 할 수 있다. 우리 조상들의 이러한 미감(美感)은 서산마애삼존불, 백자달항아리뿐만 아니라 자연친화적인 조선왕릉의 조형물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봉분 주위에 놓여 사악한 기운을 쫓는다는 석호와 석양은 너털너털 웃음 띤 얼굴에 해학미가 넘치고, 차가운 돌이 아니라 살아 있는 것인 양 따스함이 느껴진다. 노천의 석불(石佛)처럼 세월의 시간을 고스란히 머금은 석인상의 어깨는 이끼가 수없이 피고 자라 털옷처럼 되었고, 벌과 나비의 쉼터가 된 석물의 빈틈에는 해마다 자연의 섭리가 반복되고 있다. 

인경왕후 익릉의 석호.
중국 황제릉의 경우 사암, 현무암 등 여러 재질로 만들어 색깔과 느낌이 서로 다르다. 그러나 조선왕릉 석물은 풍화에 잘 견디는 화강암으로 제작해 다부지게 보인다. 절제미를 갖춰 조각했기 때문에 언뜻 보면 일률적으로 보이지만 구석구석 새겨진 모란, 불로초, 국화, 석류, 학 등의 문양은 고유섭 선생이 말한 ‘무기교의 기교’를 대변하듯 다채롭고 세밀하다.

이 때문에 조선왕릉 석물은 상서로운 문양의 집합체이자 조선시대 야외 도안집이라 부를 만하다. 석물 문양은 ‘조각장’ 또는 ‘섭장’으로 불린 전문 장인의 솜씨인데, 온릉을 감독한 최천약, 융릉 조성을 담당한 정우태 등 당대 최고의 장인들 못지않게 활약한 무명 조각가들의 유일한 자취로서 의미가 크다.

국립문화재연구소는 지난해부터 이러한 조선왕릉 조각의 숨겨진 가치를 밝혀 우리나라 전통적 미감의 본질을 찾는 연구를 진행하고 있다. 매서운 동장군이 물러갈 즈음 한국인의 진한 생명력, 무기교의 구수한 큰 맛을 왕릉 석물에서 느껴보자.

황정연 국립문화재연구소 학예연구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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