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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 발탁 공무원 ‘도둑 심보’ / 주공의 잘못엔 아예 눈감고 자리 이용해 이권에만 눈독 / 뽑아 쓰더라도 검증은 거쳐야 중국 역사에서 공과 사를 가장 엄격히 구분한 청렴한 공무원의 모범으로 칭송받는 이로 후한 광무제에서 명제 때 활동하던 제오륜(第五倫)이 있다. 삼강오륜의 오륜이 아니라 성이 제오이고, 이름이 륜인 이 사람은 회계태수(會稽太守)로 부임해 있을 때에 녹봉이 2000석이었으나, 아내가 직접 부엌일을 하고 자신은 말을 사육하면서 손수 꼴을 베었으며, 이렇게 절약하면서 받은 녹봉 가운데 한 달분 양식만 남겨 두고 나머지는 모두 가난한 백성에게 나눠 주었다. 임기가 끝나고 돌아갈 때 백성들이 말고삐를 붙잡고 울부짖으며 “우리를 버리고 어디로 가십니까”라고 했다.

그가 공과 사를 엄격히 구분한다는 말을 들은 어떤 사람이 물었다. “공(公)께서도 사사로운 마음(私心)이 있습니까?” 제오륜이 대답했다. “전에 나에게 천리마(千里馬)를 준다는 사람이 있었는데, 내가 비록 받지는 않았지만 국가의 주요 인재를 선발하고 천거하는 정승 회의 때 마음에 잊을 수가 없었어요. 물론 끝내 등용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는 또 조카가 아프다고 하니 하룻밤에 열 번을 가서 문병을 했지만 자신의 아들이 병 들었을 때에는 문병을 가지 않았는데 대신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다며 자신에게도 사사로움이 어찌 없겠느냐고 털어놓았다.(‘후한서 제오륜열전’) 

이동식 언론인·역사비평가
예부터 사대부들에게는 집안일을 관장하거나 시중을 들고 잡무를 처리해주던 사람들, 곧 겸종(傔從)이 있었고 이들 사대부가 높은 벼슬에 오르거나 지방에라도 나가게 되면 겸종들은 그 밑에 가서 주공(주인)의 경제적인 이익을 챙기면서 자신들의 잇속도 챙기는 것이 불문율이었다고 한다. 한편 사대부로서도 지방관으로 나갈 경우 복잡하게 얽혀 있는 지방 행정 실무를 향리들과 접촉해 처리하는 한편 주공의 지방 살림살이를 주공 편에 서서 챙겨 주는 존재로서도 겸종은 필요했다. 게다가 중앙 권력에 진출할 때 자기 집안의 겸종을 중앙 관청의 요소요소에 밀어 넣어 두는 것은 정보의 수집, 연락의 편의 등을 위해서도 필수적이었다. 그렇기 때문에 주공과 겸종은 끈끈한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의 이익을 돌보았던 것이다. 대신을 지내는 집안에는 겸종이 수십 명에 이르고, 그중에는 몇십 년이나 혹은 몇 대에 걸쳐 겸종을 지낸 이들이 있었다고 한다. 19세기 대표적인 명문가 중 하나인 연안 이씨 이만수(李晩秀) 집안은 겸종이 거의 30명에 이르렀고, 철종 연간 좌의정을 지냈던 박영원(朴永元)의 겸종으로 호조 서리를 오랫동안 지냈던 이윤선(李潤善)은 그의 부친인 이기혁 때부터 박영원을 주공으로 모셨다. 즉 대를 이어 한집안의 겸종을 지낸 것이다.

겸종과 주공의 관계는 매우 끈끈해서 단순히 주종 관계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때때로 서로가 부자지간 같은 관계로 인식하기도 했다. 실례로 조태채(趙泰采·1660∼경종 2년 1722)의 겸종이었던 홍동석(洪東錫)이 선혜청 서리를 맡고 있을 때, 간관(諫官)이 자신의 주공인 조태채를 탄핵하는 장계(狀啓)를 옮겨 적도록 했는데, 홍동석은 붓을 던지면서 주공과 겸종의 관계는 부자와 같은 의리가 있고, 이에 자식이 아버지의 죄를 적을 수 없다고 했다. 심지어는 사약을 받는 자리에까지 쫓아가서 그 아들이 오도록 기다려야 한다며 금부도사가 주는 사약을 발로 차서 사형집행을 한 달 이상이나 늦추기까지 했다.(‘이향견문록’) 이처럼 끈끈한 관계가 형성될 수 있었던 것은 결국 양자의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결과였다.

문제는 이러한 겸종이 온갖 부정부패의 원인이 된다는 점이다. 그래서 다산 정약용은 ‘목민심서’의 율기(律己) 6조 중 제3조 제가(齊家)편에서 벼슬에 나갈 때에는 겸종이 설혹 노고가 있더라도 선물을 보내주겠다는 등의 방법으로라도 만류를 해서 따라가지 않도록 해야 하며, 친척이 따라가는 것도 말려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제오륜이 겸종을 하나도 데리고 가지 않아 부인이 직접 부엌일을 한 것과 명나라 때 왕서(王恕)라는 사람이 운남순무(雲南巡撫)로 나가면서 “하인을 데리고 가고 싶었으나 백성들의 원망을 살까 두려워 늙은 몸을 돌보지 않고 단신으로 왔다”면서 하인을 데리고 가지 않은 것을 모범 사례로 들고 있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는 주요한 행정관서의 장들이 자신들 주위의 사람을 불러서 직접 자리를 주고 쓰는 경우가 많다. 이들 중에는 학문이나 정책 연구, 현장 경험 등이 뛰어나 정무직으로 채용되는 경우가 많지만 개중에는 개인적인 일상이나 몸관리를 담당하다가 갑자기 높은 자리를 받기도 한다. 그런 경우에는 공직자로서 국민이 낸 세금을 받는다는 정신자세나 태도, 공직자로서의 윤리와 덕목을 넘어서서 주공과 겸종처럼 주종관계, 나아가서는 홍동석의 경우에서 보듯 부자관계처럼 끈끈해지고, 그 관계를 악용해서 이권을 챙기거나, 주공의 잘잘못에 대해서는 일절 눈을 감고 은폐하는 행위까지 우려되고 있고 실제로 그런 일이 벌어졌다.

요즘은 공직자의 문호를 개방하는 추세이다. 그만큼 공직자를 선발하는 것은 공개채용이 원칙이 돼야 한다. 행정이나 정부 부처의 필요 인원을 쓰더라도 발탁이라는 이름 아래 기관장의 재량이나 선택권으로만 넘기지 않고 최소한의 기준으로 공개하고 검증하는 시스템이 필요하다는 것도 바로 이런 이유에서이다. 지난해부터 올해까지도 우리 사회를 흔들고 있는 사태에서 경험한 값비싼 교훈이라 하겠다.

이동식 언론인·역사비평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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