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일 서울 종로구 소격동의 한 카페에서 만난 이병헌은 자리에 앉자마자 "절대 놓치고 싶지 않았던, 다른 사람에게 갔다면 너무 아쉬웠을 작품"이라고 말했다.
그는 "시나리오를 처음 봤을 때 또 하나의 천만 영화가 나오겠다는 생각은 1%도 안 했다"며 예상 관객수와 상관없이 이 작품을 선택했다고 말했다.
"전체적인 감성과 분위기에 끌렸다"는 그는 특히 영화를 연출한 이주영 감독이 이창동 감독과 함께 기획한 시나리오를 높이 샀다.
재훈은 '내부자들'의 정치 깡패 안상구, '밀정'의 의열단장 정채산, '마스터'의 사기꾼 진 회장 등 이병헌이 최근 전작들에서 보여준 강렬한 캐릭터와는 확연히 구분된다.
부실채권에 분노한 고객들 앞에 고개를 떨어뜨린 채 무릎을 꿇었다가 뺨을 맞거나, 아내가 이웃집 남자와 함께 웃음을 짓는 모습을 창문 밖에서 목격한 뒤 그 주변을 맴돌기만 하는 무기력한 모습이 그렇다.
이병헌은 "10년 전 나라면 과연 어땠을지 모르겠지만, 지금의 나는 재훈 쪽에 더 가까운 것 같다"고 설명했다.
"사람이 살다 보면 성격이 변하는 것인지, 지금은 다 내려놓고 초월하고 어떤 (위기) 상황이 벌어졌을 때 기운이 빠지는 느낌이에요. '내가 이 상황에서 과연 무엇을 할 수 있을까?' 이런 식으로요. 그래서 재훈에 정말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이병헌은 원래 선 굵은 액션보다는 인물의 섬세한 감정선을 따라가는 '싱글라이더' 같은 영화를 연기하는 것이 더 흥미롭다고 했다. 그러나 후자의 연기가 더 어려웠다.
"스펙터클한 영화는 시각적인 부분이 크지만, 이런 영화는 배우의 컨디션에 따라서 미세한 감정선을 놓치면 큰 것을 놓치기 때문에 촬영할 때 더 예민해지는 부분이 있었죠."
이병헌의 출연분이 영화의 90% 이상을 차지하기에 육체적으로도 고된 작업이었다. 그는 "호주 촬영하면서 에너지를 좀 비축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는데 쉬는 날이 없어서 더 힘들었다"고 가볍게 푸념했다.
이병헌은 아내 수진을 연기한 공효진에 대해서 "힘을 줄 때와 뺄 때를 정말 잘 아는 배우"라고 칭찬을 아끼지 않았다.
"극 중 수진이 합격 문자를 받고 오열하는 장면처럼 격렬하게 감정을 터뜨려야 할 때는 확 터뜨리고, 생활 연기할 때는 마치 카메라가 없는 듯, 리허설하듯이 연습하는 모습을 보면서 정말 놀랐어요. 역시 공효진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병헌은 인터뷰 한 시간 내내 영화에 대한 칭찬을 멈추지 않았다. 출연 배우의 의례적인 홍보 이상으로 느껴질 정도로 작품에 깊은 애정을 드러냈다.
"'싱글라이더'가 누구에게나 재미있을 것이란 생각은 안 해요. 하지만 어떤 관객에게는 그 사람의 인생영화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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