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인들이 가장 사랑하는 클래식 음악을 꼽다 보면 거의 항상 비발디의 ‘사계’가 언급된다. 봄, 여름, 가을, 겨울의 사계절을 모아놓은 작품으로, 전문적으로 말하면 바이올린 협주곡이다. 전문적 지식을 하나 더 더하면 ‘사계’를 프로그램 음악이라고 한다. 음악 외적인 이미지나 현상 등을 음으로 그려내는 내용이 있는 음악인 것이다. 당연히 네 곡의 프로그램은 제목 그대로 사계절이다. 각각의 곡은 그 계절에 걸맞은 내용을 음악으로 묘사한다. 봄에는 새가 지저귀고, 여름에는 소나기가 내리고, 가을에는 풍요로운 추수 후에 춤을 즐긴다는 내용을 담고 있다.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음악학 |
그럼 추위는 어떻게 음악으로 그려낼 수 있을까. 비발디 시대에는 추위를 묘사하는 방법이 있었다. 음을 짧게 짧게 끊어서 연주하는 것이다. 우리가 덜덜 떨며 말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이런 점을 염두에 두고 들어보면 겨울의 첫 악장은 놀라울 정도로 실제 추위를 느끼게 한다. 음반마다 온도 차이가 있지만 1990년쯤에 나온 나이젤 케네디의 음반부터 비발디의 겨울은 예전보다 춥게 연주하는 경향이 있는 것 같다. 지구의 온난화와는 반대로 가는 현상이다. 그만큼 추위가 그리워졌다는 뜻일까.
첫 악장의 끝에서 추위가 절정에 달하고 두 번째 악장으로 이어진다. 비발디 시대의 협주곡은 보통 세 악장으로 돼 있는데 각 악장의 빠르기가 빠르게-느리게-빠르게로 고정돼 있다. 느린 두 번째 악장에서 우리는 바로 그 따뜻함 속에 휴식을 취한다. 두 번째 악장의 내용은 불 곁에서 따뜻함을 즐기는 동안 밖에서는 추위가 지속된다는 것이다. 계절마다 세 개의 악장으로 작곡됐으니 ‘사계’ 전체로 보면 총 열두 악장의 짧은 곡으로 구성된 작품이다.
그런데 이 열두 개의 개별 악장 중에 가장 많은 사랑을 받는 곡이 바로 겨울의 두 번째 악장이다. 예전에 따뜻한 커피 광고 음악으로도 쓰였고, 그 후에는 우리 대중음악에서도 인용할 정도로 유명한 선율이다. 어쩌면 사람들이 겨울의 두 번째 악장을 가장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 따뜻함에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다. 매서운 추위의 첫 악장 뒤에 이어지는 따뜻하고 포근한 느낌의 두 번째 악장은 그야말로 우리가 찾는 안식이 아닐까. 추위 속에 떨다가 우리의 몸을 녹여주는 따뜻함의 위력은 제대로 추워 봐야 알기 때문이다.
겨울만 되면 우리는 훈훈한 이야기를 찾는다. 연말에는 구세군의 종이 울리고, 연시로 이어지면서 이웃돕기 모금이 지속된다. 설로 계속되는 겨울 동안에 우리는 어느 누구누구의 숨겨진 선행을 듣고 싶어한다. 그런 이야기만으로도 따뜻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어쩌면 이번 겨울 우리의 체감온도를 이토록 떨어트린 사회의 분위기 덕분에 훈훈한 이야기를 더 듣고 싶어지는 게 아닐까. 그리고 그 훈훈한 이야기는 그 어느 때보다 따뜻하게 우리를 위로해 줄지 모른다.
체감온도 높이기 운동이 필요한 시기이다. 봄이 시작된다는 입춘이 지나고 우수가 됐지만 아직 몸이 움츠려진다. 비발디 ‘사계’의 겨울, 반드시 그 추운 첫 악장을 먼저 들어야 두 번째 악장에서 체온이 올라가는 효과를 볼 수 있다.
허영한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음악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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