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 상처받은 마음은 글로 써야 치유 된다”

두 번째 장편소설 ‘비늘’ 펴낸 임재희

“내 글쓰기의 출발점은 자의식과 수치심이었어. 그런 감정을 글로 풀어내면서 정화된 느낌이 들었어. 어느 순간 발설하고 표현하고자 하는 욕구가 침묵하려는 욕구를 앞설 때가 있는데 그때가 그랬던 거 같아. 그래서 쓰는 걸 거야.”

소설가 임재희(53)는 자신의 두 번째 장편소설 ‘비늘’(나무옆의자)에 등장하는 소설가 한동수의 입을 빌려 순결한 소설론을 설파한다. 무릇 글쓰기란 자기 정화욕구와 닿아 있다고. 제9회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으며 2013년 소설가로 등단한 임씨는 이번 소설에서 소설가로 등단했으나 과거의 상처에 갇혀 ‘안 쓰는 자’, 의욕은 넘치지만 ‘쓰지 못하는 자’, 끊임없이 회의하지만 ‘쓰고 있는 자’를 그려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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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동수라는 인물은 첫 습작품 ‘비늘’이 그대로 등단작이 된 천재적 자질을 갖춘 소설가. 그에게서 소설 강좌를 들은 김재경은 이후 작가가 되지만 한동수는 정작 작단에서 사라져버린다. 문우인 영조와 동거하다가 소설에 대한 ‘믿음’을 상실하고 책을 전부 팔아버린 뒤 헤어지는 과정에서 재경은 소설 그 자체에 대한 강렬한 회의와 질문을 거듭하게 된다. 그는 이 질문에 대한 해답을 얻기 위해 자신의 롤모델이었고 소설가로 나아가는 데 가장 강력한 동기를 제공한 한동수를 찾아나선다. 강사 시절 동수는 소설은 “더럽고 아름다운 것”이라고 설파했다.

“내 영혼이 가장 깊이 닿아 있는 곳이 소설이라는 땅이지요. 그래서 가장 소중하다고 여기는 것을 위해 전부를 걸어보고 싶었어요. 그래야 가치 있는 일이 될 것 같았어요. 가치를 만들어나가는 일은 아름답죠. 내게 소설만큼 더럽고 아름다운 것은 없어요.”
2013년 세계문학상 우수상을 받고 소설가의 길을 걸어온 임재희씨. 그는 “문학이 혹은 소설이 내게 눈부시게 다가왔던 한 시절을 얘기하고 싶었다”면서 “소설가가 소설가에 대한 얘기를 소설로 썼으니 두 번의 반칙을 저지른 느낌”이라고 썼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소설을 구원의 한 도구로 상정하는, 이처럼 순결하게 소설을 대하는 자세는 갈수록 가벼워지는 세태에서 문학을 시작하는 귀한 태도일 것이다. 순결한 만큼 쓰는 고통은 더 극심하고 진도는 더디게 나갈 수밖에 없다. 살인과 배신과 자극적인 언사들이 홍수를 이루는 이야기를 위한 이야기 쓰기와는 태생이 다르다. 재경이 수소문 끝에 찾아낸 동수는 하와이에 있었다. 형의 실종으로 인해 어머니마저 위태로워지자 이국 땅 어머니 곁으로 가서 살며 소설과는 담을 쌓는 생활이었다. 재경이 동수를 찾아가 나누는 대화들은 소설에 대한 미련을 놓지 못하는 습작생과 독자들은 물론 등단한 기성작가에게도 글쓰기의 뿌리에 대해 더불어 고민하고 공감할 만한 내용이다.

동수 곁에 있는 피터라는 인물은 도서관 노숙자로 살면서 많은 책을 섭렵하고 쓰는 일에 매진하는 스타일이지만, 세상의 텍스트들이 자신의 글을 표절했다는 생각에 절망한다. 작가가 보기에 이 부류는 쓰고 있지만 능력이 모자라는 가련한 유형일지 모른다. 재경은 “가장 먼 곳에서 빛나는 별들에 관한 글 같은 거, 수만 년이 지나 이 지구에 와 닿은 그런 언어로 쓴 이야기”를 언젠가는 쓸 수 있을 것이라고 피터를 위로한다. 동수에게는 “농사에 실패한 농부가 다시 삽을 들 듯 글로 상처받은 마음은 글로 써야 치유 될 것”이라고 다독인다. 임재희가 말미에 적은 이 대목이야말로 그녀가 자신의 분신들과 나눈 고민의 해답일 터이다.

“소설가의 눈으로 본 세상은 소설이 아니더라도 이미 소설이다. 소설은 순결한 사기성을 띤 가장 아름다운 치기라고 그가 말했던 것처럼 나는 그를 영원히 ‘소설가’라고 부를 것이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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