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 씻어낸 색’ 블루…또 다른 세계 연다

본지 창간 28주년 세계미술전 초대작가 김선형

10여 년 전 작가는 전남 구례 화엄사에 이르렀다. 범종 소리에 벚꽃마저 우수수 떨어지는 계절이었다. 해질녘 산사의 어스름 속에 새 한 마리가 푸드덕 날아가는 것을 목격했다. 작가는 작업실로 돌아와 자신도 모르게 파란색 물감을 타고 있었다. 세계일보 창간 28주년 기념 세계미술전(21일~3월9일 서울예술재단) 초대작가인 김선형(54)의 ‘블루 이야기’다.

“블루는 새벽과 저녁녘의 검푸른색이라 할 수 있어요. 어둠이 밝음으로, 밝음이 다시 어둠으로 가는 경계의 색입니다. 들고 나는 문의 역할을 하는 색이지요.”
김선형 작가는 “그림 속 어디쯤에 앉아 있는 한 마리 새처럼 관람객들이 잠시 멈춰서 자신을 바라보고 관조하는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블루는 전통 색으로 표현하면 쪽빛에 가깝다. 음이 강한 색으로, 대개 남성에게 좋은 색으로 알려져 있다. 음의 색이라 여성들도 좋아하는 색상이다. 서양적 우수 이미지보다 동양에선 소망을 상징한다.

“무채색에 가까운 정서를 지닌 유채색이지요. 경계의 색이라 어느편에도 얽매이지 않는 새로운 가능성을 열어젖히게 됩니다. 늘 또 다른 세계를 추구해야 하는 예술가의 기질을 닮았어요.”

그는 유화물감을 쓰지 않고 수용성 석채와 아크릴 물감을 사용한다. 물의 흐름에 순응하는 작업방식이다. 물에 탄 물감이 물 따라 흐르고 번지고, 흡수되는 것이다.

“서양의 문화가 중력을 거스르는 분수문화라면 동양은 중력에 물을 맡기는 낙수문화라 할 수 있지요. 동양화에서 폭포가 주요 소재로 등장하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사실 서양화는 미디엄이란 용제(溶劑)로 유화물감의 물성을 조절해 가며 작업을 하게 된다. 이에 비해 동양화는 모필에서 물감이 흘러내림을 그대로 활용할 뿐이다.

“온도 기후 등 상황에 따라 번짐도 다양한 양상을 보여줍니다. 다만 그것을 필법으로 조절을 할 뿐입니다.”

그의 그림엔 다양한 들꽃들이 형상으로 등장한다. 새들도 있고, 향기는 없어도 부귀와 소망을 상징하는 목단꽃도 있다. 열흘 붉은 꽃이 없다는 화무십일홍(花無十日紅)의 대표적인 꽃이다.

“들꽃의 소박한 어우러짐은 부딪히지 않고 공존하는 자연의 섭리를 보는 듯합니다.”

그는 형상들을 그리고 그 위에 물을 뿌린 후 다시 붓질을 한다. 이질적인 것들을 동질화시키고 조화롭게 하기 위해서다,

“서양 그림들이 만들어지는 것이라면 저는 어느 순간의 감성을 일시에 표출하는 데 주력합니다. 자연스레 사전 스케치가 필요 없지요.”

그의 작품은 자신의 심상을 캔버스에 그대로 얹히는 과정이라 할 수 있다. 이런저런 인위적 만듦이 없으니 텁텁하지가 않다. 블루가 어느 순간 ‘다 씻어낸 색’으로 다가오게 된다. 조선 목가구의 맛이다. 어느 순간 절제된 ‘해치움의 미학’이다.

“한국미술은 서구 패러다임의 가면을 벗어버릴 때가 됐습니다. 가면 뒤의 우리 본모습을 봐야 합니다.”

그는 세계 어느 왕조도 조선 오백년만큼 길게 왕조를 유지한 적이 없다는 점에 주목한다. 조선문화의 힘이 그것을 가능케 했다는 것이다.

“저는 슬픈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조선의 맥을 잇고 싶습니다.”

실례로 그는 일본의 기모노와 중국의 치파오에서 느껴지는 여성성과 섹시함과는 달리 한복이 주는 단아함이 조선미학의 전형이라는 것이다. 게다가 선비정신으로 상징되는 조선 선비의 인문학적 정신이야말로 조선문화를 꽃피우는 불쏘시개가 됐다는 분석이다.

한국화의 뉴버전을 보여주고 있는 김 작가는 홍익대 동양화과를 졸업하고, 지금은 경인교대 교수로 재직 중이다. 특히 여성들이 선호하는 작가로 유명하다. 무엇보다도 서구미술계에서 담론이 사라진 요즘 새롭게 주목받고 있는 작가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wansi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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