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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빈곤의 해법… “그냥 물고기를 줘라”

입력 : 2017-02-10 21:28:56 수정 : 2017-02-10 21:3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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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용 늘지않는 저성장시대… ‘분배’ 중요 화두
국민에 기본소득 주는 남아공 복지실험 소개
국민은 국부 소유자… 정당한 몫 배분서 출발
영국 원조기구 “기본소득 확산은 조용한 혁명”
세계적으로 부의 양극화가 심해지면서 자본주의 체제의 한계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조기 대선이 전망되는 국내 정치권에서는 ‘분배’가 중요한 화두로 떠오르고 있다. 대표적인 사례가 부의 쏠림 현상을 막는 ‘경제민주화’와 모든 국민에게 일정액을 지급하는 ‘기본소득’이다. 인류학자인 제임스 퍼거슨 미국 스탠퍼드대 교수는 분배를 가리켜 ‘새로운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라고 말한다.

고용이 늘지 않는 저성장이 지속되면서 전 세계가 몸살을 앓고 있다. 일각에서는 복지국가의 종말을 예견하고 있다. 하지만 퍼거슨은 복지의 종말이 아닌, 새로운 복지 프로그램의 확장 일로를 전망한다. 이는 매월 일정액을 지급하는 단순한 방식을 토대로 하고 있다.

퍼거슨은 지난 30여년 동안 남아프리카 지역에 대한 광범위한 현지조사와 이론 작업을 바탕으로 빈곤, 개발, 이주, 현대성에 대한 연구를 벌였다. 그는 신간 ‘분배정치의 시대’에서 탈빈곤의 해법은 ‘기본소득’뿐이라고 강조한다.


지난해 3월 서울 광화문에서 열린 기본소득법 입법 촉구 기자회견.
기본소득한국네트워크 제공
이 책의 메시지는 책의 원제인 ‘물고기를 줘라’(Give a Man a Fish)에 명확하게 나타나 있다. 물고기를 잡는 법을 가르치는 대신 물고기를 직접 배분하라는 것이다.

퍼거슨은 남아공의 사례를 들어 ‘기본소득’의 효용성을 설명한다. 남아공은 실업률이 40%에 육박하고 인종 문제까지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에서도 분배정치가 활발히 전개되고 있다. 이는 분배를 기생적인 ‘가져가기’로 보지 않고, 국민을 국부에 대한 진정한 소유자로 인식해 ‘정당한 몫’을 배분하는 것으로 보기 때문이다. 2012년에는 남아공 전체 가구의 44%가 정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았는데, 그해 복지 지출은 10년 전보다 2배 증가했다. 하지만 2002년과 2012년의 통계를 비교하면 남아공에서 기아를 경험한 가구 비율은 29.3%에서 12.6%로 줄었다. 또 교육과 보건에서 긍정적인 개선 효과가 나타났다. 임금노동을 시장의 기반으로 하는 유럽형 복지 모델에서는 상상하기 어려운 방식이다.

미국의 시사주간지 뉴스위크는 기본소득을 가리켜 ‘복지 2.0’이라 지칭했다. 국제노동기구(ILO)는 유엔의 지지 아래 ‘사회적 보호 최전선’이라는 국제적 캠페인을 벌이기도 했다. 캠페인의 핵심은 “누구도 일정한 소득 기준 이하로 생활해서는 안 되며, 모든 사람이 적어도 기본적인 사회 서비스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는 현금이 물만큼이나 바람직한 소비재이며 생사 문제가 걸린 자원이라는 생각에 뿌리를 두고 있다. 영국의 공식 개발원조기구는 전세계적 현상이 되어가는 기본소득의 확산을 ‘조용한 혁명’이라 정의했다. 또 이러한 복지 프로그램이 현재 약 7500만명에서 1억명 사이의 사람들에게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추산했다.

그러나 직접적으로 현금을 지급하는 복지정책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높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자본주의 체제의 근간이 되는 ‘일하려는 동기’를 약화시킨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퍼거슨은 “가난한 사람을 의존적으로 만드는 것은 복지가 아니며, 노동을 하려면 먼저 (어린이가) 양육돼야 한다”며 “빈자를 위한 지출은 낭비가 아니라 수많은 타인을 고무시키고 영향을 미치는 활동”이라고 역설한다.

그러면서 기본소득이 국가를 지탱하는 일원으로서 받는 정당한 몫이라는 프레임이 만들어지면 빈자들이 약간의 물질적 자원뿐 아니라 ‘소유자’라는 새롭고 강력한 사회적 정체성을 획득할 것이라고 주장한다.

제임스 퍼거슨의 첫 번째 번역서로, 스탠퍼드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조문영 연세대 문화인류학과 교수가 우리말로 옮겼다.

권구성 기자 ks@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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