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물끄러미 나를 바라볼 때가 좋다/ 차가운 겨울 밤하늘에 비껴 뜬 보름달이 나를 바라보듯/ 풀을 뜯던 들녘의 소가 갑자기 고개를 들고 나를 바라보듯/ 선암사 매화나무 가지에 앉은 새가/ 홍매화 꽃잎을 쪼다가 문득 나를 바라보듯/ 대문 앞에 세워둔 눈사람이 조금씩 녹으면서 나를 바라보듯/ 폭설이 내린 태백산 설해목 사이로 떠오른 낮달이 나를 바라보듯/ 아버지 영정 앞에 켜둔 촛불이 가물가물 밤새도록 나를 바라보듯/ 물끄러미 당신이 나를 바라볼 때가 좋다”(‘물끄러미’)
열두 번째 시집을 펴낸 정호승 시인. 그는 “희망은 절망보다 더 무섭다”면서 “희망의 절망이 희망이 될 때/ 당신을 사랑한다”고 위로를 건넨다. 세계일보 자료사진 |
“늦은 저녁/ 들녘의 풀을 뜯어 먹던 진흙소가/ 노을을 등에 지고/ 외양간으로 돌아와/ 아버지가 쑤어준 여물을 먹다가/ 물끄러미/ 웃으면서 나를 바라본다/ 나 이 세상 사는 동안/ 더 이상 배고프지 않으리”(‘진흙소’)
이 시집에서 기실 이 같은 평화는 시인이 각고의 인내와 다짐과 고통 속에서 길어 올린 흔치 않은 경지이다. 오히려 자주 절망하고 안타까워하며 한숨을 쉬는 편이다. 시인은 별이 되고 싶었지만 평생 그 별만 바라보는 자신을 돌아본다. “사다리를 타고 지붕 위에 올라가/ 사다리를 버린 사람은 별이 되었다/ 나는 사다리를 버리지도 못하고/ 내려가지도 못하고/ 엄마가 밥 먹으러 오라고 부르시는데도/ 지붕 위에 앉아/ 평생 밤하늘 별만 바라본다”(‘별’) 스스로 별이 되지 못하고 내내 올려다보기만 하는 행위란 밤하늘에 가 닿지 못한 가련한 존재들이 시를 쓰며 더불어 위로하는 행위와 크게 다르지 않다.
“수선화가 피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 겨우내 불을 켜두고/ 문을 열어둔 채 너무 멀리 나왔다/ 수선화의 노란 향기가/ 수의처럼 나를 감싸기 전에/ 집으로 돌아가 불을 꺼야 한다/ 대문을 닫고/ 우물을 파묻고/ 고요히 홀로/ 수선화의 뿌리 속으로 걸어들어가/ 아름다운 인간의 구근이 되어/ 기다려도 오지 않는 봄을 또/ 기다려야 한다”(‘수선화를 기다리며’)
시인의 이러한 자세는 “나는 희망이 없는 희망을 거절한다/ 희망에는 희망이 없다/ 희망은 기쁨보다 분노에 가깝다/ 나는 절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졌을 뿐/ 희망을 통하여 희망을 가져본 적이 없다”고 고백한 이번 시집의 표제작 ‘나는 희망을 거절한다’와도 맥이 통한다. 오래 걸어온 세월에도 불구하고 그에게 여전히 ‘희망’이란 명사는 난공불락이다. 그는 “희망은 무섭다/ 희망이 있어도 희망은 무섭다/.../ 절망보다 무섭다”고 설파한다. 어설픈 희망이야말로 절망보다 더 무서운 희망이라는 것이다. 얼마나 희망이 간절하기에 시인은 이리 절망 곁을 쉬 떠나지 못하는가. 그는 “이번 시집을 통해 희망이 있는 희망은 무엇인가, 희망은 무엇을 통해 이루어지는가, 무엇이 내 인생의 가장 소중한 가치인가 하는 고통의 질문을 끊임없이 해보았다”면서 “시가 이루어지는 순간은 인생의 사랑이 이루어지는 순간과 같다”고 썼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jho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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