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이승현칼럼] ‘새 미국’이 오고 있다 ②

관련이슈 이승현 칼럼 , 오피니언 최신

입력 : 2017-02-08 01:08:31 수정 : 2017-04-11 11:45:24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미국 우방국 정상에 모욕 준 트럼프 / 대선 몰입 말고 국제 기류에 눈떠야 대통령 탄핵을 지지하는 여론이 지난달 말 기준으로 40%에 달했다고 한다. 그 전주에 비해 5%포인트 급증했다. 대한민국 얘기가 아니다. 지구촌을 주름잡는 최강대국 얘기다. 미국 대통령 도널드 트럼프가 권좌에 오른 것은 1월20일이다. 내일모레가 돼야 임기 4주차가 시작된다. 그런데도 벌써 대통령 적임 여부를 놓고 세상이 시끄럽다. 새내기 대통령이 사고를 쳐도 너무 일찍, 그것도 대형으로 치고 있다는 뜻이다. 이슬람권 7개국 국적자 입국과 비자 발급을 금지한 ‘반(反)이민 행정명령’이 대표적이다.

트럼프는 5일 시애틀 연방지법의 제임스 로바트 판사를 겨냥해 “판사 한 명이 미국을 그렇게 위험에 빠뜨리게 하는 것을 도저히 믿을 수 없다”고 했다. 앞서 “정말 끔찍한 결정”이라고도 했다. 로바트가 3일 행정명령에 제동을 건 것에 단단히 화가 났다는 뜻이다. 인간은 공감 능력을 가진 존재다. 하지만 트럼프 분노엔 도무지 공감이 가지 않는다. 차라리 미국 안팎의 반발 기류에 눈길이 간다. 정말 끔찍한 것은 따로 있다는 생각도 든다. 트럼프의 전화 매너다.

이승현 편집인
트럼프는 지난달 28일 맬컴 턴불 호주 총리와 통화하다 일방적으로 전화를 끊었다. 전화를 끊기 전의 통화 매너도 끔찍했다. 미국이 호주로부터 난민 1250명을 받아들이기로 양국이 지난해 합의한 난민협정을 두고 “사상 최악의 협정”이란 식의 격한 반응을 보였다. “호주가 테러범을 수출하려 한다”면서 역정도 냈다. 턴불은 어안이 벙벙했을 것이다. 게다가 전화가 툭 끊기기까지 했으니….

전화를 일방적으로 끊는 것은 비례(非禮)다. 턴불은 미국 우방국 정상이다. 비례로 대할 상대와는 거리가 멀다. 트럼프는 그런데도 모욕을 줬다. 이유가 뭘까. 일단 분노 발작과 같은 정신과적 문제를 의심할 만하다. 이민·난민 같은 의제 앞에선 제정신을 잃게 되는 것은 아닐까. 국력 격차를 의식한 우월감에도 혐의를 둘 만하다. 양국은 인구(2015년 기준, 미국 3억2136만명 대 호주 2275만명), 국내총생산(2014년 기준, 17조4189억달러 대 1조4441억달러), 국방비(2014년 기준, 5810억달러 대 225억달러) 등 어느 모로 보나 같은 체급이 아니니까.

미국이 코끼리라면 호주는 사슴이다. 상대를 가리지 않고, 상대 감정도 개의치 않고 제멋대로 구는 코끼리는 세상 곳곳에 존재한다. ‘슈퍼 갑’들이 대체로 그렇고, 소시민들도 때론 갑질을 일삼는다. 강대국 행태도 예외가 아니다. 그러나 지구촌에 민주화, 세계화, 인권 등의 가치를 전파한 미국 지도자가 노골적으로 코끼리 행세를 하는 현실은 자못 낯설고 거북하다. 특히 반이민 깃발은 엽기적인 감마저 준다. 왜? 미국은 이민·난민 행렬을 받아들여 부국강병의 꿈을 이룬 나라여서다. 트럼프는 자국 역사를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미국은 어떻게 미국이 됐고, 호주는 어떻게 호주가 됐나. 국운을 가른 가장 중요한 요소는 이민이다. 예일대 교수 에이미 추아의 ‘제국의 미래’에 따르면 1871년부터 1911년까지 미국은 이주민 2000만명을 받아들였다. 같은 기간에 호주와 뉴질랜드에 정착한 이주민은 250만명이다. 미국 특유의 종교적 다원주의와 민주적 제도, 활발한 시장경제 등이 우호적으로 작동했고, 대단한 흡인력을 발휘했다. 호주의 8배에 달하는 이민을 끌어들인 비결이다. 그것은 결국 기술 혁신 등과 맞물려 폭발적 국부 신장으로 이어졌다. 미국은 이민의 힘으로 19세기엔 농업·산업 국가로 발돋움했고, 20세기엔 초강대국이 됐다. 21세기에도 잘나가고 있고….

트럼프와 그 지지자들은 자기들이 가진 무형의 자산을 크게 축내고 있다. 바로 개방성이다. 제 밥그릇을 차는 셈이다. 왜들 저러는 것일까. 정치학자 새뮤얼 헌팅턴을 비롯한 미국 일부 지식인들의 그릇된 주장이 사회 불만 계층에 깊이 먹혀든 탓이 없지 않다. ‘문명의 충돌’로 유명한 헌팅턴은 ‘새뮤얼 헌팅턴의 미국’이란 책도 냈다. 멕시코 등의 이주 물결이 미국 특유의 개인주의, 직업윤리, 법치주의 등의 가치관을 무너뜨리는 위협요소라고 강변한, 영향력이 큰 저서였다. 트럼프는 헌팅턴 등이 가리킨 막다른 길로 빨리 달려가지 못해 안달하는 인상이 짙다. 혀를 차지 않을 수 없다. 사상과 지성의 힘도 거듭 곱씹게 된다.

미국 대선 결과가 나오기 몇 달 전인 지난해 8월 ‘새 미국이 오고 있다’는 제목의 칼럼을 썼다. “지구촌은 과거보다 훨씬 이기적인 ‘새 미국’을 보게 될 공산이 많다”고 지적했고, 트럼피즘에 면밀히 대처하라고 정부와 정치권에 주문했다. 다시 한 번 강조할 수밖에 없다. 새 미국 상태는 생각보다 좋지 않고, ‘미국 우선주의’ 정도가 아니라 아예 ‘백인 우월주의’로 무장한 ‘헌팅턴의 미국’이 등장할 가능성도 없지 않아 보이니….

국가적 각성이 필요하다. 트럼프가 자국 사법부, 호주 정상만 상대할 까닭이 없다. 사활적 이슈는 8월 칼럼에 썼듯이 트럼프의 세계 지도에서 대한민국이 어디에 놓이느냐는 점이다. 지금이라도 눈을 크게 뜨고 철저히 대비해야 한다. 국내에 조기 대선이 다가온다 해서 미국을 중심으로 요동칠 국제 기류는 나 몰라라 하면서 다들 선거공학에만 몰입하다가는 큰코다칠 수가 있다. 트럼프가 전화를 툭 끊게 될지도 모를 일이고….

이승현 편집인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리센느 메이 '반가운 손인사'
  • 아일릿 이로하 '매력적인 미소'
  • 아일릿 민주 '귀여운 토끼상'
  • 임수향 '시크한 매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