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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춘(立春)이다. 봄의 기미가 느껴지시는가. 계절의 변화를 체감하려면 아직 한 달 정도는 더 기다려야 한다. 태양이 막 북반구로 접어들어서 대지를 덥히려면 그만큼 시간이 필요하다. 그렇긴 해도 민감한 이들이라면 햇빛이 강해지고 더 밝아진 것을 느낄 수 있다. 태양이 황경 315도에 오는 이날은 설날 전후에 걸쳐 있다. 24절기가 시작되는 입춘을 새해 첫날로 치는 사주쟁이들도 많다. 이날 보리 뿌리를 뽑아 한 해 농사도 점쳤다. 바야흐로 봄은 땅 밑에서부터 시동을 걸기 시작했다.

“입춘(立春)은/ 봄의 시작이 아니라/ 깊이 잠든 봄을 깨우는/ 알람시계의 멜로디일 뿐”(김병훈)이라지만 “이젠 더 이상/ 주체할 수 없는 태동/ 어차피 잘려나갈 겨울 긴 꼬리/ 아직은 좀 이른 셈인데/ 꽃망울을 붙들고/ 서로 밀치고/ 잡아당기며/ 서리꽃 앞 다투어/ 지는 소리를 듣는”(박얼서) 절기다. “햇빛 좋은 입춘 날, 눈이 부신 햇빛 거울로, 제 마음속, 무덤속 어둠을 불살라, 보살도 부처도 잿더미가 되고 마는 날”(박제천)이고 “하얀 겨울,/ 치마끈 풀어내고 살그머니/ 가슴에 작은 꽃씨 하나”(목필균) 품는 시점이다. “솔나무는 오히려 너같이 젊고/ 스무날쯤 있으면 梅花도 핀다”(서정주)고 했고 “薔薇꽃처럼 곱게 피여 가는 화로에 숫불,/ 입춘 때 밤은 마른풀 사르는 냄세가 난다”(정지용)고도 썼다.

“입춘 무렵 보리밭 하나는 신명나 푸르지만”(고은), 시인들은 저리 노래하지만, 이 땅에 정작 봄은 오시려나. 나라는 자욱한 탄핵의 미세먼지에 갇혀 있는데 그 휘장을 걷어내야 할 장본인들은 동토에 숨어 있다. 아니다, 기억나지 않는다, 음모다…. 봄을 모르는가, 봄이 기억나지 않는 건가. 봄이 온다는 소식이 음모인가. 제아무리 얼굴을 감추고 꽁지만 드러낸 채 태양을 외면해도 대지는 일각을 지체하지 않는다. 성급한 매화는 엊그제 벌써 창원 미술관에 피었다는 소식이고, 미당의 노래처럼 스무날쯤 지나면 달빛 아래 암향은 남쪽에서 진동하기 시작할 것이다.

봄은 바야흐로 입덧을 시작했다. 봄을 품어 “토해도 토해도 앙금으로 내려앉는 금빛 햇살”은 제아무리 앞을 가로막아도, 휘저어도 기어이 태어난다. “돌쩌귀를 열고 나오는, 얼음장을 깨고 나오는, 겨우내 내린 눈을 가슴으로 껴안아 녹인 물로 가득가득 속을 채운 냉이며 달래, 움파며 승검초, 죽순이 부처가 되고 보살이”(박제천) 된다는 전언은 음모가 아니다.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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