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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와 만납시다] 정정당당 스포츠로 가는 길…도핑 테스트 세계

입력 : 2017-02-04 08:00:00 수정 : 2017-02-06 14:23: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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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상 기대주로 손꼽히는 A군은 지난해 국제대회 100m 경기에서 당당히 1등으로 결승선을 통과했다.

시상대에서 내려온 그는 경기장에 나온 도핑검사동반인(Chaperone·샤프롱)과 함께 측정실로 자리를 옮겼다. 옷 갈아입을 틈도 없었다.

A군은 화장실에서 투명한 컵에 소변을 받아 제출해야 했다.

여기서 잠깐. A군이 홀로 화장실에 갈 수 있을까? 그럴 일은 절대로 없다. 옆에 샤프롱이 따라붙는다. 볼일을 보는 동안에도 A군 옆에서 지켜본다. 물론 동성(同性) 검사관이다.

샤프롱이 신경 쓰인 A군. 소변이 제대로 나올 리 없었다. 방금 땀까지 뺀 터라 배출될 수분이 거의 남아있지 않았다. 생수만 들이켠 A군은 경기가 끝나고도 무려 6시간이 지난 뒤에야 겨우 샘플을 제출하고 경기장을 떠날 수 있었다.

나중에 A군은 도핑 테스트 결과 이상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도핑 테스트를 받아야 하는 운동선수들은 이렇게 번거로운 과정을 거쳐야 한다.

검사관이 옆에서 지켜보는 동안 소변을 받아야 한다. 최소 90㎖ 이상이다. 건강한 성인의 하루 소변량은 보통 1∼2ℓ이며, 1회 소변량이 300㎖ 안팎이므로 횟수로 치면 하루 4∼6회 정도다.

소변이 나오지 않는다면? A군처럼 샘플을 낼 때까지 자리를 떠날 수 없다. 밀폐된 측정실에서 무작정 기다려야 하는데, 검사관도 마찬가지다.

스포츠는 땀으로 말한다. 정당한 결과로 평가받아야 한다. 하지만 성적이 우선이라는 생각에 금지된 약물을 복용해 경기력을 끌어올린 채 정정당당히 경기에 임하는 상대 선수들을 제치고 부정 수상을 하는 이들도 더러 있다.

도핑 테스트에서 금지약물 복용이 적발되면 메달 박탈은 물론이고, 심하면 영구 제명과 함께 선수 생활을 끝낼 수도 있다. 이런 불명예와 더불어 금지약물 복용으로 망가진 몸만 남는 신세가 된다.

금지약물을 복용했다 도핑 테스트에 걸리면 메달 박탈은 물론이고 심하면 영구 제명으로 선수 생활을 끝낼 수도 있다. 사진 속 병은 소변시료 채취용으로 도핑 테스트에 쓰인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지난 2일 세계일보와 만난 고려대 스포츠과학연구소 '포티움'의 엄성흠 연구원은 “검사 대상 약물 범위가 점점 넓어지고 있다”며 “항히스타민제(antihistamines)나 스테로이드(steroid) 계열이 주요한 대상이다”고 설명했다.

2002년 부산 아시안게임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태권도 트레이너로 이 분야에 발을 들여놓은 엄 연구원은 10년 넘게 탁구, 요트, 스키와 스케이트 선수단의 체력과 재활 트레이닝을 담당했다. 2014년 인천아시안게임 때는 도핑 검사관으로 투입됐다.

재밌는 건 종목에 따라 도핑 테스트에 저촉하는 약물이 다르다는 사실이다. 육상, 스피드 스케이팅과 같은기록 경기에서는 폐활량을 늘리는 기관 확장제나 근력을 끌어올리는 약물이 검사 대상이다. 사격이나 양궁처럼 순간 집중력이 필요한 종목에서는 신경을 안정시키는 약물이 저촉된다.

도핑 테스트의 시료는 소변과 혈액으로 나뉜다. 대부분 종목은 소변시료 채취를 행한다. 그만큼 혈액시료 채취는 드문 편이다.

소변시료 채취는  도핑 검사관이나 도핑검사동반인이 선수 측과 접촉해 검사 대상임을 알리는 일로 시작한다. 이어 △ 통지서 서명 △ 도핑 관리실 도착 △ 시료 채취 △ 도핑 검사서 작성 및 서명 등의 절차를 거친다.

소변 내 특정 성분의 비중이 기준에 못 미치면 적정 비중의 시료가 채취될 때까지 대상자는 계속해 만들어 내야 한다. 화장실에 계속 가야 한다는 뜻이다. 소변 내 수분이 많을 때 이런 일이 종종 벌어진다.


 

고려대 스포츠과학연구소 '포티움'의 엄성흠 연구원이 소변시료 채취 과정의 시범을 보이고 있다. 약식 시범인 관계로 사과음료를 썼다. 김경호 기자 stillcut@

고려대 스포츠과학연구소 '포티움'의 엄성흠 연구원이 소변시료 채취 과정의 시범을 보이고 있다. 약식 시범인 관계로 사과음료로 대신했다. 사진처럼 두 병에 나눠 담고 추가로 시료를 따르는 이유는 비중 측정을 위해서다. 김경호 기자 stillcut@


도핑 테스트에서 걸리더라도 면책 사유가 주어질 수도 있다. 다만 관련 기관에 미리 특정 사유에 따른 치료가 불가피해 약물을 복용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문서를 제출해 알려야 한다. 골절처럼 급히 수술이 필요할 때는 ‘선조치 후보고’ 형식으로 진단서와 수술·치료문서를 나중에 제출해도 된다.

화학 약물만 도핑 테스트에 적용돼 양약만 주의하면 된다고 여기기 쉽지만, 엄 연구원은 한약도 조심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생약 성분의 한약이라도 오래 복용하면 장기에 영향을 미칠 수도 있다는 게 이유다. 이런 점을 알고 도핑 테스트에 걸리는지 여부를 파악해 운동선수를 상대로 약을 쓰는 한의사도 있지만, 모르는 이도 있다고 엄 연구원은 덧붙였다.

도핑 테스트 당시 위치 정보를 제대로 등록하지 않아 뜻하지 않은 위기에 놓이는 일도 생긴다. 우리나라 배드민턴의 간판 이용대 선수는 지난 2014년 세계반도핑기구(WADA)의 테스트를 통과하지 못해 인천아시안게임에 출전하지 못할 뻔했는데,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도핑 테스트는 경기 전 선수 측에 알리지 않고 불시에 시행하는 것을 원칙이다. 2013년 한국에 파견된 WADA 관계자들은 3월~11월 3차례나 이용대를 만나지 못해 허탕을 쳤다. 세계배드민턴연맹(BWF)은 이듬해 1월 이용대에게 자격정지 1년을 통보했다. 같은 삼성전기 소속 김기정도 징계 대상에 올렸다.

당시 대한배드민턴협회가 선수 위치 등록 시스템(ADAMS)에 이용대의 정보를 제대로 입력하지 않아 벌어진 일이었다. 정보 등록은 이용대처럼 특정 종목의 일부 선수(상위권)에게만 주어지는 의무다.

ADAMS에 입력된 서울 태릉선수촌을 근거로 WADA가 방문했지만, 이용대는 대화 참가 등의 이유로 그곳에 없었던 게 화근이었다. 다행히 같은해 4월 자격정지 처분이 철회됐지만 도핑 테스트 규정을 우습게 본 배드민턴협회를 겨냥한 누리꾼의 날선 비난이 쏟아지기도 했다.


 
소변시료의 모습. 이를 채취하려면 먼저 도핑 검사관이나 도핑검사동반인이 선수 측과 접촉해 대상임을 알려야 한다. 이어 △ 통지서 서명 △ 도핑 관리실 도착 △ 시료 채취 △ 도핑 검사서 작성 및 서명 등의 절차를 거친다. 한국도핑방지위원회 홈페이지 캡처



엄 연구원과 함께 만난 노혁준(19) 선수와 박대한(20·이상 단국대 스피드스케이팅) 선수도 도핑 테스트를 받은 적 있다. 노혁준은 오스트리아 인스브루크에서 열린 국제대회에서 입상한 뒤 검사 대상임을 통보받았고, 이전 대회에서 입상 경력이 있는 박대한은 대한체육회가 따로 불러들여 검사를 벌였다고 한다.

엄 연구원은 “도핑도 엄연한 약물 복용이므로 장기적으로 보면 선수 자신에게 무척 해롭다”며 “복용 사실이 밝혀지면 선수 생활에 치명적인 영향을 주는 만큼 노력과 체계적 훈련 등으로 정정당당하게 경기에 임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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