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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춘들이 절망하고 있다. 희망을 찾아보려 하지만 쉽지 않다. 청년실업자 43만명은 절망의 상징이다. 각종 시험 준비생, 대학 졸업유예자를 합치면 취업준비생은 80만명에 육박한다. 희망을 동력으로 미래를 설계해야 할 청춘이 흙수저를 자처하는 실정이다. ‘이번 생애는 망했어’(이생망)라는 읊조림에서 절망의 깊이를 느낄 수 있다. 절망을 떨치고 희망으로 나아갈 방법은 무엇일까. 세계일보는 창간 28주년을 맞아 연중기획으로 청춘들의 절망과 희망을 짚어본다.
2016년 청년층 실업률이 9.8%, 실업자 수 43만5000여명. 역대 최고치다. 최근 5년간 해마다 증가했고, 이제는 두 자릿수 실업률을 걱정해야 할 지경이다. 전체 실질실업자가 200만명에 이른다는 통계를 감안하면 청년층의 취업 관문이 바늘구멍보다 좁다는 게 괜한 말이 아니다. 지금의 대한민국을 살아가는 청년들이 직면하는 다양한 문제들은 많은 부분 취업난에서 비롯되는 게 사실이다. 연애, 결혼, 출산 등 예전에는 누구라도 누릴 것이라 여겼던 것들을 포기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흙수저’와 ‘헬조선’을 넘어서 ‘이생망’까지, 청년들의 자기포기 선언이 낯설지 않다.
박모(27·여)씨는 웃음을 잃었다. 대학입시를 준비할 때도, 그것에 실패해 재수생활을 할 때도 이러지는 않았다. 3년이 가까워지는 취업 준비 기간, 좌절감만 남았다. 처음 지원한 기업에 탈락했을 때는 ‘누구나 겪는 일’이라며 애써 위로했다. 경쟁력을 더 갖춰야겠다는 생각에 높은 공인어학시험 점수를 받았고 한자와 한국사 자격증도 취득했다. 하지만 번번이 실패했다. 때로 자신에게 중대한 결격사유가 있는 게 아닐까 하는 의심마저 생겼다. 박씨는 “처음 취업을 준비할 때만 해도 자신감이 있었는데 지금은 학벌, 전공, 성별 등 모든 게 불리하다고 생각한다”고 한숨을 쉬었다.
홍모(31)씨는 아예 취업을 포기하고 일용직을 전전하고 있다. 남부럽지 않은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하고 2013년 졸업했지만 직장을 구하지 못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2015년부터는 가정형편이 어려워져 제3금융권에 4000만원을 빌리기도 했다. 연 30%가 넘는 이자에 허덕이던 홍씨는 개인회생을 신청하게 됐다.
거듭되는 실패의 경험에다 공정하지 못한 사회 시스템 때문에 절망감은 더욱 깊어졌다. 노동시장이 실력이 아니라 집안과 부모의 재력, 직업 등에 좌우되는 것을 직간접적으로 경험한 것이다. 원천적인 불평등을 의미하는 ‘흙수저론’이 탐탁하지 않지만 수긍할 수밖에 없는 이유다.
취업만 한다면 모든 게 나아지겠거니 생각할 수도 있지만 취업은 넘어야 할 하나의 산일 뿐 이후에도 첩첩산중의 어려움은 계속된다. 결혼과 출산, 육아 문제 등이 그렇다. 사회가 유지되는 기본적 구조이지만 개인이 부담해야 할 몫이 너무 크다. 결혼과 출산 이후 경력이 단절된 젊은 여성에서 이런 문제를 확인할 수 있다.
◆작은 성취감을 통해 절망, 희망으로
전문가들은 무기력과 절망감에 빠진 청년들을 위해 작은 성취감을 느낄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야 한다고 입을 모은다. 또 경제적인 문제 때문에 발생하는 격차를 해소하기 위해 정부가 어느 정도의 직접적인 개입을 해야 한다는 의견도 적지 않다.
곽 교수는 “가장 우려되는 상황은 학습된 무기력이 사회 전반에 퍼지는 것”이라고 걱정했다. 곽 교수는 “작은 성취감을 장려하고 맛볼 수 있도록 도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평범한 일상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조명하고 그들의 일에도 가치가 있다는 것을 알려줘야 한다”며 “큰 꿈, 큰 포부를 갖도록 강요하다 보니 인생의 가치를 스스로 찾지 못하고 외적인 가치에 구속되고 좇아가게 된다”고 지적했다.
김범수·이창훈 기자 sway@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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