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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상희의 컬쳐 포커스] 비뚤어진 세상에 메스를 거부한 블랙리스트

입력 : 2017-01-24 17:06:15 수정 : 2017-01-24 17:06: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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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출처=YTN
그들에겐 문화예술계가 그렇게 만만했나?

정부가 그토록 힘주어 말했던 문화융성이라는 그럴싸한 포장지를 열어보니 그 내용물은 썩어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 전역에서 우리의 다양한 문화콘텐츠들이 ‘한류붐’을 일으켰으니 이 또한 대단한 일이 아닐 수 없다. 정부의 실천 없는 구호 속에서도 문화예술인들이 스스로 제 몫을 다해 괄목할 만한 성과를 이뤄주고 있었으니 말이다.

그 성과의 반응이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라니 이거야말로 정말 한심한 작태가 아닌가. 엇박자도 한참 엇박자다. 블랙리스트의 작성 시점이 2014년 세월호 참사 이후였다니, 표현의 자유를 억압해 정부를 향한 비판의 입을 틀어막겠다는 얕은 속셈의 일환으로 계획된 일이라는 건 너무도 자명한 사실이다.

유신정권의 정치스타일을 버리지 못한 전 청와대 왕실장 김기춘은 그 시대의 악습을 30여년 이상의 시간이 흐른 지금에 고스란히 적용하려 했다. 박 대통령에 대한 과잉충성이었을까?. 시대가 변했고, 국민들의 의식수준이 높아졌으며 억압의 기제가 더 이상 통용될 수 없다는 사실을 그는 진정 인지하지 못했던 것이었을까?. 구시대의 인물은 시대 부적응자의 모습으로 그렇게 역주행하다 피의자 신분이 되어 나락으로 떨어졌다.

김기춘 전 실장과 함께 정무수석 시절 블랙리스트 작성에 가담한 혐의로 구속 수감된 전 문체부 장관 조윤선. 모르쇠로 일관하다가 청문회를 통해 이용주 국회의원의 끈질긴 추궁 끝에 블랙리스트의 존재 여부를 시인, 피의자가 되니 그 몸통이 김기춘 전 실장이라는 사실을 밝히기에 이르렀다. 평소에 문화예술을 사랑한다고 스스로 말하던 그녀가 아니었던가! 그야말로 표리부동(表裏不同)의 전형적인 인물이다.

특검에 소환돼 검찰 조사를 받은 조윤선 전 장관은 며칠사이 눈에 뛸 만큼 초췌해진 모습으로 변해있었다. 과연 그녀는 알고 있을까?. 이유도 모른 채 블랙리스트에 올라 활동하기 힘들었던 예술인들과 좋은 작품, 콘텐츠에도 불구하고 우리 편이 아니라는 이유로 번번이 정부 지원금 지원 선정 대상에서 탈락해야만 했던 공연단체들의 가난한 삶을.

문화예술의 범주에는 대중들의 관심을 받고 블루칩으로 고성장을 이루는 콘텐츠도 존재하지만 정부 지원금에 목말라하는 다수의 순수예술도 함께 존재하는 것이 현실이다. 정말 문화예술을 사랑하는 관료였다면 편향된 정치이념에 기반 한 블랙리스트 작성에 반기를 들었어야 했다. 훌륭한 문화예술 콘텐츠가 돈이 없다는 이유로 사장(死藏) 되어 버리는 불행한 일이 없도록 힘써야 했다. 그런 노력을 조금이라도 기울였다면 그녀는 최소한 자신의 초라한 민낯을 보인 피의자로 전락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이른바 좌파 성향의 문화예술인들, 그들을 감시하기 위한 핍박리스트로 불리는 블랙리스트. 문화예술은 흑과 백이 아니다. 정치 논리로 설명할 수 없는, 편 가르기 할 수 없는, 함부로 침범할 수 없는 고유의 영역이다.

얼마 전 올해의 영화상 시상식에서 블랙리스트에 올라있던 영화배우 송강호는 남우주연상 수상 소감으로 영화가 세상을 바꿀 수 있다고 말했다. 어쩌면 위정자(爲政者)들은 그런 문화예술의 힘을 무서워했을 수도 있다. 창작의 힘으로 비뚤어진 세상에 메스를 가져다 대는 역할을 하기에 두려웠는지도 모르겠다. 그 메스의 비뚤어진 거부반응이 바로 블랙리스트였던 것이다.

그들은 문화융성이라는 거창한 당근의 실체가 국정농단과 블랙리스트라는 채찍뿐이었음을 어떻게든 은폐하려는데 급급했다. 하지만 손바닥으로 하늘을 가릴 수는 없지 않은가. 다시는 자행돼서는 안 될 문화예술계 블랙리스트, 구시대가 만들었던 악습의 부활이 이제 거의 종식을 앞두고 있다. 

문화평론가 권상희 cyberactor@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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