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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동환의 월드줌人] 내전 아픔 뗀 줄 알았는데, 당뇨병의 아픔이 오더라

입력 : 2017-01-23 15:50:29 수정 : 2017-01-23 15:5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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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전으로 얼룩진 고향을 등지고 새로운 보금자리를 찾았다는 생각에 안도하는 것도 잠시 아들의 당뇨병 사실을 안 나자르는 늘 미안한 마음뿐이다. 버거운 가정형편에 돈 드는 게 무리지만, 시리아에서 손쓸 수 없이 아들을 방치하는 것보다 낫다는 게 위안이라면 위안이다.

지난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요르단 수도 암만에서 북쪽으로 40마일(약 64km) 정도 떨어진 마프라크(mafraq)의 한 아파트에 사는 히샴(7)은 ‘1형 당뇨병(type 1 diabetes)’을 앓아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 처지다. 췌장의 '랑게르한스섬(Langerhans’ island)'의 β 세포 파괴로 인슐린이 제대로 분비되지 않아 혈당 수치가 높아지는 병이다.

아들을 보는 나자르는 가슴이 찢어진다. 2012년 내전으로 얼룩진 시리아의 서부 도시 홈스(Homs)를 떠나 요르단에 새 보금자리를 마련했지만, 처음에 단순 기침 증세를 보이는 줄 알았던 아들이 당뇨병 진단을 받으면서 이들 가족의 조금이나마 남았던 행복에 금이 가기 시작했다.

 

올해 일곱 살인 히샴은 ‘1형 당뇨병(type 1 diabetes)’을 앓고 있다.


나자르는 히샴이 처음 병원에 갔던 날이 눈에 생생하다. 가슴 통증과 옆구리가 아프다며 우는 아들의 혈당 수치가 급격히 치솟았다는 의료진의 진단에 나자르는 순간 머리가 멍했다. 하루 안에 아들의 생사가 판가름 날 수도 있다고 했다. 다행히 위기는 넘겼지만, 히샴이 평생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건 이들 가족이 앞으로 짊어져야 할 짐이 됐다.

뉴욕타임스에 따르면 요르단으로 흘러든 시리아 난민은 65만명 규모다. 대부분 환경이 낙후한 시골 지역에 산다. 처음에 시리아인들은 의료혜택을 조금이나마 받았으나, 세월이 흐르면서 국제지원 감소 등의 이유로 병원 손길이 점점 희미해졌다. ‘국제구조위원회(International Rescue Committee)’를 비롯한 몇몇 단체가 히샴처럼 어려운 처지에 놓인 시리아 난민 가족들에게 보조금을 지원하고 있지만, 스스로 일정 비율의 의료비를 부담해야 할 만큼 지원규모는 넉넉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석 달마다 요르단 북서부 이르빗으로 검사를 받으러 다니는 히샴. 나자르는 한번 아들을 데리고 병원에 갈 때마다 주머니에서 35달러(약 4만원) 이상 지출한다. 재단사 출신인 히샴의 아버지 아브라쉬는 요르단에 온 뒤, 다섯 달이나 일을 구하지 못했다. 겨우 작은 의류회사에 취직했지만 목디스크 탓에 온종일 일할 수도 없다. 마음 같아서는 아들 치료에 많은 돈을 쏟고 싶지만 아브라쉬와 나자르가 그러지 못하는 이유다.

 
히샴과 두 동생들.


주위에 당뇨병 위험성을 널리 알려온 나자르는 가족의 먹는 방식 변화를 꾀했다. 이들 가족 식단의 주재료는 채소와 쌀이다. 나자르는 아침, 점심 그리고 저녁에 아들의 인슐린 주사를 체크한다. 현재 그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일이다.

인슐린 덕분에 다른 아이들과 같은 삶을 살게 되었다는 히샴. 가끔은 먹어서는 안 될 음식을 학교에서 먹고도 엄마에게 안 먹었다고 거짓말할 만큼 천진난만하다. 하지만 소년에게 시리아의 추억은 없다. 그는 “학교에 가지 않을 때는 소파에서 뛰놀거나, 잘 굴러가지 않는 공으로 축구를 하며 놀아요”라고 말했다. 고향 추억이 없는 아픔을 제외하면, 남동생 유세프(6)와 여동생 마이스(3)가 졸졸 따라다니는 히샴은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평범한 아이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사진=미국 뉴욕타임스 캡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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