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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술한 입양제도, 아이들이 위험하다] 양육시설 떠돌다 사회로 내몰리는 입양아들

입력 : 2017-01-17 19:20:01 수정 : 2017-01-17 19:2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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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 입양은 최후의 보금자리 / 친부모가 아이 포기 않게 도와야
‘사법당국이 부모와의 분리가 아동에게 최상의 이익이 된다고 결정한 경우 외에는 아동이 자신의 의사에 반해 부모와 떨어지지 않도록 보장해야 한다.’ 1989년 채택된 유엔 아동권리협약의 제9조 내용으로 아동보호의 밑바탕에 ‘원가정 보호’의 원칙이 깔려 있음을 강조하고 있다. 친부모의 학대나 감금·범죄, 가정 불화 등의 사유가 아닌 이상 원가정이 본기능을 회복하도록 지원해 아동이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하고, 일시적으로 시설에 맡겨지더라도 원가정 복귀를 위해 정부가 최대한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국내 요보호아동(사회적 보호가 필요해 양육시설이나 위탁가정에 맡겨진 아동)체계는 사뭇 다르다. 어렸을 때 요보호아동체계에 편입되면 원가정 복귀는 일단 힘들어지고 성인이 되기 전까지 쉽사리 빠져나갈 수 없는 것이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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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요보호아동체계는 가두리양식장?


17일 보건복지부에 따르면 2015년 요보호아동 관리체계에 들어온 아동 4503명 중 입양된 239명(5%)을 제외한 나머지 4264명이 아동보호시설에 입소하거나 위탁가정, 그룹홈 등에 맡겨졌다. 1990년대까지만 해도 20% 이상이 국내외에 입양됐지만 비판이 커지면서 입양비율이 낮아졌고 전체 요보호아동 수도 줄었다.

문제는 요보호아동이 원가정에 복귀할 수 있도록 하는 정부 차원의 노력을 찾아보기 힘들다는 것이다. 연간 퇴소청소년(만 18세가 돼 더 이상 아동복지시설에 머무를 수 없어 나온 성인)이 2000여명에 이르는 현실이 이를 보여준다. 이 중 절반은 가정으로 복귀하지만 나머지 절반은 혈혈단신으로 사회에 내몰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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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의 지원을 살펴보면 이 문제가 더욱 확연히 드러난다. 2015년 기준으로 보육원 등 아동양육시설에 대한 1인당 정부 지원 예산은 약 214만원이고 공동생활가정(그룹홈)은 102만원, 위탁가정은 58만원이다. 이에 반해 미혼모나 한부모가정에 대한 지원은 최대 15만원에 불과하다.

미혼모나 한부모가정은 가족 해체의 위험이 크다. 실제 요보호아동 발생 원인을 살펴보면 2015년 4503명 중 부모 이혼으로 인한 경우가 1070명, 미혼모 아동이 930명으로 이 두 가지 경우가 전체의 44%를 차지했다. 이 같은 현실은 정부의 요보호아동 관련 시스템이 아동이나 원가정을 지원하는 것보다 아동복지시설 규모 유지에 방점이 찍혔음을 의미한다. 숭실대 노혜련 교수(사회복지학)는 “해체 위험이 높은 한부모가정에 대한 지원을 조금만 늘려도 부모가 아이를 포기하는 사례가 줄고 시설에 입소하는 요보호아동이 자연스럽게 준다”며 “이는 장기적으로 정부의 예산 절감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강조했다.

◆아동복지의 첫걸음은 ‘인권 존중’이어야

국내의 아동복지가 이 같은 상황에 이른 것은 ‘무엇이 아이에게 가장 좋은 방법일까’를 고민하기보다는 단순한 시혜적 복지 차원에서 접근했기 때문이다. 투표권도 없이 목소리 내기 힘든 아이들의 입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예산 집행의 효율성보다 집행 자체에만 신경을 쓴 것이다.

‘일시 보호’인 아동복지시설과 비교할 때 ‘영구 보호’라 할 수 있는 입양도 마찬가지다. 국내 입양사는 6·25 직후인 1950년대부터 시작됐다. 당시는 고아·미아에 초점을 맞췄기 때문에 시설을 늘리고 새 가정을 찾아주는 것이 최적의 대안이었다. 그러나 60, 70년이 지난 현재에도 상황은 변함이 없다. 정부에 앞서 외국인 선교사 등 민간이 주도적으로 나서면서 시설 수와 입양아 수는 급증했고 ‘아동 수출국’의 오명까지 뒤집어썼다. 입양특례법이나 아동학대 관련 법이 정비되고는 있지만 국민적 인식이나 국가 시스템은 큰 변화를 찾아보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태어난 지 6개월 만에 4살 언니와 미국으로 입양됐던 정경아(제인 정 트렌카·45·여)씨는 자전소설 ‘피의 언어’를 통해 입양이란 ‘친가정과의 분리’이고 ‘본연의 자아를 부정하는 과정의 연속’임을 밝혔다. 이러한 이유로 입양인들은 자살 위험, 약물 중독, 범죄 노출 등의 가능성이 훨씬 크다는 연구보고서가 해외에서 수차례 발간됐다.

국내에서는 아동보다 양부모의 입장에 더 초점이 맞춰진 탓에 ‘입양은 사랑입니다’, ‘새 가정을 빨리 찾아주는 것이 아이를 위한 길입니다’라는 인식이 일반적이고 입양아의 저항이나 돌발행동이 통과의례처럼 여겨지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남인순 의원(서울 송파병)은 “국내에서는 친부모가 아이를 어디에 맡기느냐에 따라 요보호아동의 평생이 결정된다”며 “친부모가 아이에 대한 정보를 충분히 전달 받고 아동이 성장하면서 선택권 등 의사가 존중되도록 제도 개편이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김준영 기자 papenique@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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