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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승현칼럼] 유일호의 ‘견위수명’을 생각한다

입력 : 2017-01-17 21:49:41 수정 : 2017-01-25 10:35: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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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고사는 문제 화급한 국가적 상황
공직사회는 위기관리에 헌신해야
중국 베이징대에 리링(李零)이란 학자가 있다. ‘논어’를 강의하다 그 강의록을 기반으로 인문교양서를 펴내 고전 해석의 지평을 넓힌 석학이다. 그는 소싯적엔 ‘논어’를 즐겨 읽지 않았다고 한다. 왜 즐기지 않았을까. ‘집 잃은 개’에 나오는 설명에 따르면 “어수선하고 질서가 없으며 맹탕이어서”였다. 그의 다른 책 ‘논어, 세 번 찢다’에선 한결 깔끔히 설명된다. “두서가 없다.”

그렇다. ‘논어’는 두서가 없다. 대화체가 많은데도 화자가 누군지 헷갈려 여태껏 입씨름이 이어지는 대목도 허다하다. 공자와 그 제자 자로가 ‘완전한 사람’(성인·成人)이 될 조건을 논한 ‘헌문’편의 한 대목도 같은 맥락이다. ‘위험을 보면 목숨을 내놓는다’는 뜻의 견위수명(見危授命)이 조건의 하나로 적시되는 대목이다. 견위수명은 대체 누구 말일까. 대개 공자 어록으로 보지만 자로의 말대꾸였다고 믿는 이들도 없지 않다. 리링도 그렇게 믿는다.


이승현 편집인
세상이 어수선해서인지, 연말연시가 벌써 아득한 옛날로 느껴진다. 요란했던 사자성어 잔치도 거의 다 잊혀졌다. 그럼에도 하나만은 뇌리에 남아 있다. 바로 견위수명이다. 유일호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해 부처 간부들에게 당부했다. “견위수명의 자세를 가져 달라”고. 사자성어는 쓰임새대로 해석되는 법. 유 부총리의 견위수명은 ‘나라가 위태로울 때 자기 목숨을 바친다’는 뜻으로 풀이됐다.

견위수명, 이 넉자가 왜 잊히지 않을까. 나라 안팎 상황이 실로 엄중해서다. 동북아 지정학의 급변 기류는 둘째치고 유 부총리 소관인 먹고사는 문제부터 여간 심각하지 않다. 본지는 어제 ‘적금 깨고 연금보험 해약하고…더 힘들어진 서민살림’이란 제목으로 민생고를 조명했다. 국내 5대 은행의 적금 중도해지 비율은 지난해 말 45.3%로 전년 동기보다 2.9%포인트 올랐고, 보험 해약건수 또한 날로 늘고 있다는 보도였다. 적금과 보험은 서민가계의 최후 보루다. 그 보루가 무너져 내릴 만큼 먹고사는 일이 팍팍한 것이다. 복권 판매는 급증세다. 지금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 아니라 복권공화국이다.

두서가 없는 것은 ‘논어’만이 아니다. 국가경제도 그렇다. 유 부총리는 그제 미국 트럼프 행정부 출범, 경기둔화, 가계부채, 구조조정, 대북 리스크 등을 우려 요인으로 제시했다. 맥점을 짚은 지적이지만 그 정도만 걱정해도 될지 의아스럽기도 하다. 대선의 해를 맞은 정치 리스크, 저성장 기조, 저출산·고령화, 4차 산업혁명의 조류 등도 명치 끝을 쑤신다. 하나하나가 다 난제이고, 그 복잡한 상호작용이 출구 찾기를 더 어렵게 하는 측면도 있다. 국가경제를 관상용 열대어쯤으로 여긴다면 몰라도 실용적 해법을 강구하려면 눈앞이 어지럽게 마련이다. 경제 정책과 대증 처방에 힘을 실어줄 대통령 리더십까지 사라진 상태이니 기본 여건도 매우 좋지 않고.

두서는 없고 여건은 나빠도 우선순위는 뻔하다. 일자리 확충이 시급하다. 일자리가 없으면 밥도 없으니까. 밥이 없으면 적금, 보험이 남아 있을 리도 없으니까. 현실은 암담하다. 통계청의 최근 고용 통계에 따르면 국내 실업자는 101만2000명이다. 실업자 통계기준이 바뀐 2000년 이후 처음 ‘실업자 100만명’시대가 열린 것이다. 더욱이 40% 이상은 펄펄 날아야 할 청년층이다. 유례없는 단기간에 민주화, 산업화를 달성한 기적의 국가가 어쩌다가 이 지경에 몰렸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일자리는 경제성장률과 불가분의 관계를 갖는다. 성장률 1%에 일자리 10만∼20만개가 좌우된다지 않은가. 실업대란 타개책 또한 일단 성장에서 찾아야 한다. 그러나 그 전망마저 암울하다. 설상가상이다. 국제통화기금(IMF)은 그제 내놓은 수정 보고서에서 적어도 내년까지 세계 경제가 완만하지만 회복 기미를 보일 것이라고 예측하면서도 한국은 달리 취급했다. 올해 성장률 전망치를 기존 3.0%에서 2%대로 하향조정한 것이다. 앞서 한국은행도 올해 수정전망치를 2.5%로 3개월 전보다 0.3%포인트 낮췄다. 일자리가 무더기로 사라지는 소리가 천둥처럼 울려 퍼지는 것만 같다. 한국은 복권공화국일 뿐만 아니라 역주행공화국이다.

어찌해야 하나. 견위수명밖에 없다. 공직사회가 몸을 던져야 하는 것이다. 한국 사회는 산업화, 민주화 이전의 사회가 아니다. 공직사회의 지분이 예전처럼 크다고 볼 수는 없는 것이다. 그럼에도 공직사회는 여전히 할 수 있는 것이 많다. 국가적 위기관리가 대표적이다. 공직사회가 앞장서야 한다. 그 와중에 불필요한 규제도 풀 수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래야 일자리 희망이 생긴다. 물론 인간은 약한 존재이고, 공직사회도 결국 그런 인간 집단이다. 견위수명은 말할 것도 없고, 견위수명과 짝을 이루는 견리사의(見利思義·이익을 보면 의로움을 생각한다)를 체화하는 것도 결코 쉽지 않다. 하지만 유일호 경제팀을 비롯한 공직사회가 이 비상한 시국에 약한 인간, 약한 집단에 머물러선 안 된다. 힘을 내야 한다.

리링의 ‘논어’ 해석은 독특하다. 기존 학설과 다르게 해석한 대목이 적지 않다. 적도 많다. 하지만 리링은 외압에 굴하지 않는다. ‘논어, 세 번 찢다’에서 “능력이 있다면 나와서 반박해 보시라”고 천명할 정도다. 공직사회도 그렇게 결연히 임해야 한다. 대선의 해라고 해서 정치권 눈치나 봐서는 안 된다. 각 정당이 쏟아낼 포퓰리즘 공약 장단에 춤추는 것은 가장 경계할 일이다. 공직사회가 중심을 잡아야 국가와 민생이 산다. 지금 가슴에 담을 좌우명은 견위수명이다. 유 부총리부터 솔선수범할 일이다. 길을 잘 찾아 두서가 있게 말이다.

이승현 편집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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