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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파원리포트] 박 대통령은 트럼프의 반면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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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15 21:39:27 수정 : 2017-01-16 00:02: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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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럼프 7개월 만에 기자회견
청사진 없이 언론 비판 열 올려
선거로 갈라진 민심 통합 난망
언론 기피증 환자 돼서는 안 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당선자는 타고난 싸움꾼이다. 그의 주특기는 카운터펀치이다. 되로 받으면 반드시 말로 갚는다. 그런 트럼프가 미디어를 적으로 본다. 그가 폭풍 트윗을 날리며 살고 있는 핵심 이유도 언론을 믿지 않기 때문이다.

트럼프가 지난해 7월 이후 약 7개월 만인 11일(현지시간) 첫 기자회견을 했다. 트럼프가 오는 20일 취임을 앞두고 국정 청사진을 제시하거나 선거로 분열된 미국을 치유하는 메시지를 던질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전망이었다. 그러나 이런 예상이 보기 좋게 빗나갔다. 트럼프는 회견 내내 미디어를 두들겨 패느라 정신이 없었다. 기자회견에 앞서 진보 성향 인터넷매체 버즈피드(BuzzFeed)는 트럼프가 사업가 시절에 러시아에서 성매매여성들과 섹스파티를 했다는 ‘미확인’ 보도를 했고, CNN방송도 미국 정보 당국이 트럼프 당선자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러시아가 트럼프에 불리한 정보 파일을 보유하고 있다는 내용을 보고했다고 보도했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트럼프는 단단히 독이 올라 있었다. 그는 버즈피드를 ‘망해가는 쓰레기더미’라고 불렀다. 트럼프는 맨 앞줄에 앉은 CNN의 짐 아코스타 기자가 질문 기회를 얻기 위해 손들 들자 “무례하게 굴지 말라. 나는 너에게 질문 기회를 주지 않겠다. 당신네는 가짜 뉴스잖아”라고 호되게 면박을 줬다. 아코스타 기자는 자리에서 계속 소리를 질렀다. 그는 “당신이 우리를 비난했으면 질문할 기회를 주어야 할 것 아니냐”고 거칠게 항의했다. 트럼프는 그 기자에게 끝내 질문 기회를 주지 않고, 그의 반대편에 자리 잡은 다른 기자를 지명했다.

트럼프는 버즈피드나 CNN 공격에 그치지 않았다. 한 기자가 ‘언제 개인소득세 신고 내용을 공개할 것이냐’고 묻자 트럼프는 “아 이런, 내 세금 보고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기자들밖에 없잖아. 나는 이미 대통령이 됐단 말이야”라고 공박했다.

미 정치 전문지 폴리티코는 미국의 대통령이나 대통령 당선자가 막무가내로 기자와 이렇게 싸우는 광경이 벌어진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시사종합지 애틀랜틱은 트럼프 기자회견장은 굶주린 동물들이 사냥에 나서 서로 물어뜯는 ‘작은 동물원’ 같았다고 했다. 애틀랜틱은 “트럼프가 지난해 11월 깜짝 승리를 거둔 뒤 적군인 정치부 기자들을 두들겨 패거나 당혹감을 안겨주는 데 그치지 않고, 기자 마을을 불태워 없애 버리고, 기자의 집을 짓밟고, 기자들의 무덤 위에서 춤을 추고 있다”고 트럼프와 언론의 관계를 묘사했다.

트럼프가 담당 기자들을 길들이는 전략 중 하나가 일당을 주고 회사 직원들을 기자회견장에 동원해 자신을 위한 뜨거운 응원전을 펼치도록 하는 것이다. 트럼프는 당선 후 첫 기자회견장에도 어김없이 일당을 받은 응원부대 요원을 대거 배치했다. 트럼프가 언론을 조롱하고, 비난을 퍼부을 때마다 이들 응원 부대가 조직적으로 박수갈채를 보냈다. 폴리티코는 이 응원 부대를 ‘그리스 합창단’이라고 불렀다. 고대 그리스 연극에서는 배우의 대사와 연기가 극적으로 전달될 수 있도록 합창단이 동원돼 효과음을 냈었다.

트럼프의 당선 후 첫 기자회견으로 트럼프 시대에는 ‘허니문 기간’이 있을 수 없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미국에서는 언론이나 야당이 새 대통령에게 통상 6개월가량 너그럽게 대하는 게 관행이었다. 트럼프가 당선과 동시에 언론과의 전쟁에 돌입함으로써 선거로 갈라진 민심의 통합이 더욱 어려워지고, 트럼프에 대한 국민적 신뢰도 동반 추락하고 있다. 퓨리서치 조사에서 트럼프의 취임 직전 지지율이 37%에 그쳤다가 갤럽 조사에서는 44%로 반등했으나 역대 대통령 중 최저 수준이다. 같은 기간 버락 오바마 83%, 조지 W 부시 61%, 빌 클린턴 68% 등이었다.

트럼프는 눈을 한국으로 돌려 언론 기피증 환자인 박근혜 대통령의 말로를 반면교사로 삼아야 할 것 같다. 트럼프가 언론에 대한 피해의식에서 벗어나지 못하면 박 대통령처럼 불통 대통령으로 전락해 점점 국민과 유리되고, 국민적 신뢰를 잃어 국정 추동 능력을 잃을 수 있다. 트럼프 당선자가 임기를 시작하기도 전에 벌써 그런 조짐이 나타나고 있다. 정치 지도자의 자유 언론에 대한 불신은 민주주의에 대한 불신이다.

국기연 워싱턴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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