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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만난세상] 희망과 위로의 광화문 글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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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7-01-15 21:33:38 수정 : 2017-01-15 23:5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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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12월 서울 광화문광장을 찾았을 때, 박근혜 대통령의 손에 포승줄이 묶인 모형이 눈길을 끌었다. 무심코 이를 찍은 사진을 보는데 그 뒤에 ‘열려 있는 손이 있고/ 주의 깊은 눈이 있고/ 나누어야 할 삶, 삶이 있다’는 교보생명 본사 외벽에 걸린 ‘광화문 글판’이 겹쳐졌다. 글귀의 ‘열려 있는 손’과 모형의 ‘묶여 있는 손’이 묘하게 대비를 이뤘다.

회사가 있는 광화문에 올 때마다 무심코 지나쳤던 글판이었는데, 이날은 촛불과 겹쳐지면서 참 새롭기도 했다. 추운 날씨였지만 광장에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서로를 포근히 안아줄 듯 따뜻해 보이는 시민들, 그러면서도 ‘박근혜 퇴진’을 부르짖을 땐 강렬했던 그들의 눈빛. 또한 ‘누군가의 나라가 아닌 서로를 위한 나라’를 만들기 위해 광장에 나왔다는 목소리들은 글판의 글귀와 맞닿아 보였다.


김선영 사회부 기자
글판 문구는 프랑스의 시인 폴 엘뤼아르의 시 ‘그리고 미소를’에서 뽑았다고 한다. 교보 측은 문구 선정 이유에 대해 “새해에는 열린 마음과 따뜻한 시선으로 더불어 사는 삶을 살아가자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광화문 글판은 30자도 안 되는 짧은 글을 통해 팍팍한 일상속 시민에게 따뜻한 위로의 말을 건네고 희망의 메시지도 던져준다. 때로는 글귀를 통해 사색에 잠기게도 한다.

기자 개인적으로는 지난 가을 광화문 글판에 걸렸던 김사인의 시 ‘조용한 일’에서 발췌한 문안(낙엽 하나 슬며시 곁에 내린다/ 고맙다/ 실은 이런 것이 고마운 일이다)이 기억에 남는다. 당시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삶의 활력을 잃고 일할 의욕도 떨어져 ‘번아웃 증후군’(Burnout syndrome·소진 증후군)에 빠져 있던 기자에게 ‘일상 속의 소소한 것들을 소중히 여기고 감사하며 살아가라’는 글판 문구는 큰 위로가 됐다.

교보 측에 따르면 한 공무원은 1998년 봄 고은 시인의 시에서 뽑은 ‘떠나라 낯선 곳으로/ 그대 하루하루의/ 낡은 반복으로부터’라는 글귀에 자극을 받아 사표를 내고 평소 하고 싶었던 사업을 시작했다고 한다.

또한 2004년에는 갓 군대를 제대한 청년이 미래를 고민하다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 그 어떤 아름다운 꽃들도/ 다 흔들리며 피었나니’라는 도종환 시인의 ‘흔들리지 않는 꽃’ 글귀를 보고 정신을 차려 열심히 살게 됐다고 알려왔단다.

지금까지 광화문 글판을 수놓은 글귀는 공자, 헤르만 헤세, 서정주, 고은, 도종환, 김용택 등 50여명의 작품 80편에 이른다.

2015년 광화문 글판 25년을 맞아 실시한 ‘내 마음을 울리는 광화문 글판은?’이라는 설문조사(2300여명 참여)에서 시민들의 사랑을 가장 많이 받은 문구는 2012년 봄에 걸렸던 ‘자세히 보아야 예쁘다/ 오래 보아야 사랑스럽다/ 너도 그렇다’(나태주 ‘풀꽃’)가 뽑혔다. 2017년에는 어떤 광화문 글판이 사랑받을까. 대통령 탄핵심판에, 조기대선 가능성 등 복잡다단한 문제들이 이어질 올해, 우리에게 희망과 위로를 안겨줄 글판이 계속 이어지길 바라본다.

김선영 사회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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