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헤이룽장성 치치하얼시 용사공원에 있는 김필순 선생(작은 사진)의 주거지. 독립기념관 제공 |
1907년에는 항일비밀결사인 신민회에 가입하여 활동하다가, 1911년 ‘105인사건’에 연루되어 만주로 망명했다. ‘105인사건’은 1911년 일본총독부가 민족해방운동을 탄압하기 위하여 데라우치 마사타케 총독의 암살미수사건을 조작하여 독립운동가 105인을 감옥에 가두는 등 독립지사들을 탄압한 것을 말한다.
김 선생은 이회영 등이 활동하던 지린성 통화현에서 병원을 개업하고, 이상촌 건설과 독립군 양성 계획을 세웠다. 김 선생은 통화현에서의 생활이 여의치 않자 헤이룽장성 치치하얼로 이동했다. 치치하얼에서 중국 군대의 군의관으로 근무하면서 병원을 개업했다. 또 치치하얼에서 부상당한 독립군의 치료는 물론 독립운동가의 연락 거점으로 활용하도록 했다. 김 선생은 거의 모든 수입은 조선독립군의 군자금으로 기부했다. 그는 독립운동을 줄기차게 전개하다가 1919년 여름 숨졌다. 김 선생이 운영하던 당시 병원건물은 지금도 현지인들의 주거지로 이용되고 있다. 치치하얼시에서는 2005년 12월 이 지역을 문화재로 지정했다.
류영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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