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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 종신형 각오한다지만 선진국 같은 중형 선고 어려워 / 온정적 처벌 법규 안 고치면 범죄 양산 막을 수 없어 국회의원이 묻고 최순실이 답했다. “몇년 형을 받을 것 같으냐. 국민은 종신형을 바란다.” “종신형을 받을 각오가 돼 있다.” 서울구치소에서 양쪽이 처음 대면한 자리에서였다. 과연 그녀는 자기 말대로 종신형을 받게 될까.

최순실은 국정을 농단해 나라를 혼돈으로 몰아넣은 장본인이다. 백번 죽어 마땅한 죄업이다. 그것이 촛불에서 확인된 민심이었다. 그녀 스스로도 검찰에 출두하면서 “죽을죄를 지었다”고 사죄한 마당이다. 국민의 분노 수치로만 보면 종신형을 받고도 남을 테지만 현실은 그리 녹록지 않다.

배연국 논설실장
최씨에게 적용된 죄목은 직권남용, 사기미수, 강요, 강요미수 등이다.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을 기업에 강요한 직권남용은 최고 형량이 기껏 징역 5년이다. 그마저도 안종범 전 청와대 경제수석과의 공모관계가 입증돼야 가능하다. 최씨는 자신의 범죄 혐의를 극구 부인한다. 향후 특검 수사에 따라 다른 죄목이 추가될 수는 있겠으나 그녀를 종신형에 처하기란 불가능에 가깝다. 중대 범죄나 상습 범죄에 지나치게 온정적인 우리의 형벌체계 때문이다.

선진국들은 대개 중한 범죄를 저지르면 엄벌로 다스린다. 우리와 법제가 같진 않지만 미국에선 종신형 이상의 형이 왕왕 선고된다. 1994년 유아 6명을 강간한 찰스 스콧 로빈슨은 징역 3만년에 처해졌다. 죽어서 영혼까지 수인(囚人)이 되어 자신의 죄업을 갚으라는 뜻이다. 다단계 금융 사기꾼 버나드 메이도프에게 내려진 징역형은 150년이었다. 회계 부정을 저지른 엔론 최고경영자 제프리 스킬링은 24년의 징역형을 받았다. 당시 영국 파이낸셜타임스는 “스킬링이 한국인이었다면 지금쯤 원래 자리로 돌아와 활보하고 있을 것”이라고 꼬집었다. 범죄에 비해 형량이 낮고 사면복권으로 자주 풀려나는 한국의 풍토를 겨냥한 것이다.

온정적 처벌에 따른 폐해는 결국 국민에게 돌아간다. 우리나라에는 위증죄, 무고죄, 사기죄가 특히 판을 친다. 일본과 비교해 66배나 많고, 인구 규모를 감안하면 165배나 된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사기 피해액만 2013년 한 해에 43조원에 이른다. 국민 전체가 범죄의 피해자로 전락한 꼴이다.

탐욕이 범죄의 액셀러레이터라면 형벌은 브레이크 역할을 한다. 브레이크가 제 기능을 못하면 범죄는 기승을 부릴 수밖에 없다. 전과 20, 30범의 누범들이 활개치는 현상도 그런 이유다. 범죄를 제어하는 브레이크가 단단히 고장났다는 증좌가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일전에 지방금융기관의 간부에게서 들은 이야기다. 한 50대 임원은 아예 감옥에 갈 것을 작정하고 돈을 빼돌렸다고 한다. 그는 사석에서 “30억원이면 편안하게 살 수 있지 않아? 눈 딱 감고 3년 감방 살지 뭐”라는 말을 입버릇처럼 내뱉었다. 미리 자신의 형량까지 계산해서 범죄를 저질렀다는 얘기다. 고교생 대상의 조사에선 ‘10억원이 생긴다면 죄를 짓고 1년 정도 감옥에 가도 괜찮다’는 응답이 절반을 넘었다. 가벼운 처벌이 청소년들의 죄의식까지 무디게 만들고 있는 것이다. 망치가 가벼우면 못이 솟는다는 경구 그대로다.

최씨 국정농단의 실상이 드러나자 국민들은 분노의 촛불을 들었다. 고사리 손까지 광장에 나와 박근혜 대통령의 퇴진을 외쳤다. 하지만 분노의 목소리만 높고 부패 청산을 위한 성찰은 부족하다. 매사가 이런 식이다. 장애인 성폭력 사건이 불거지면 도가니방지법이 홍수를 이루고, 아동 학대 사건이 터지면 관련 입법이 쏟아진다. 땜질 처방만 범람하다 보니 근본 대책은 언제나 뒷전이다. 범죄로부터 사회를 보호하기 위해 어떻게 제도적 장치를 구축할 것인지 진지한 고민이 없다.

범죄 추방은 분노만으로는 되지 않는다. 사회 병증을 치유하자면 철저한 원인 분석과 진단이 먼저다. 그 토대 위에서 균형감을 상실한 범죄 형량을 바로잡는 조치가 뒤따라야 한다.

한 여인에 대한 단죄는 당연히 필요하다. 하지만 단죄보다 중요한 과제는 제2, 제3의 최순실이 생기지 않게 하는 일이다. 범죄의 포자가 독버섯으로 자라지 않도록 풍토를 바꿔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진정한 ‘최순실 청산’이 아니겠는가.

배연국 논설실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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