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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과문화] 촛불이 만든 새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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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9 21:35:01 수정 : 2017-02-03 18: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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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와 손잡은 문화 결국 참사
정치색 물든 편가르기는 안 돼
분노를 삼킨 성숙한 시민의식
보다 나은 미래의 밑거름돼야
결국 탄핵안이 가결됐다. 박근혜 대통령의 몽니도, 정치인들의 복잡한 셈법도 촛불과 함께 타오른 민심을 거역할 수는 없었다. 하루가 다르게 끓어오르는 국민의 분노와 커져만 가는 함성으로 우리가 이 나라의 주인임을 다시 한 번 확인시켜 주었다. 승리란 표현을 쓰지는 말자. 앞으로의 일들이 더 중요하기 때문이다. 나라 어느 곳 하나 정상적으로 돌아가는 것 같지 않은 지금 이 상태가 이제는 끝나야 하고, 새로운 출발을 위한 계기로 삼아야 한다. 어디서부터 잘못됐는지, 무엇부터 바로잡아야 할지 지난 일들을 되돌아보는 일부터 시작하자.

우리들의 마음에 남은 상처가 너무 크다. 한 해가 저물어 가는 지금 삶의 여유를 느낄 수 없게 하는 어처구니없는 현실이 우리를 짓누르고 있다. 분노, 허탈함, 상실감, 우울증, 무력감 등으로 표현되는 불편한 현실이 사람들의 하루하루를 뒤덮고 있다. 이렇게 아프고 불편한 마음을 달래주고 치유해 줘야 할 문화가 그 원인이었다는 점이 우리를 더 아프게 한다. 문화를 개인의 돈벌이와 치부 수단으로 만들어 버린 사람들과 그들의 놀이터였다고 조롱받는 문화체육관광부가 사회의 또 다른 모습이었다는 점이 나로 하여금 더 화나게 한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하지만 필자는 오늘의 결과를 보면서 우리 문화와 우리들의 살아가는 모습이 여기서 그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는다. 6차에 걸친 촛불집회에서 우리 국민이 보여준 모습을 통해 문화의 새로운 가능성을 보았기 때문이다. 현실에 대한 분노와 불만을 평화로운 축제 방식으로 표출하는 성숙한 시민의식이 돋보였고, 2만명에서 시작해 200만명에 이르는 국민이 남녀노소나 진보와 보수의 구분 없이 하나 된 모습을 이루었다. 그래서 나는 이 혼란과 분노와 허탈함이 곧 끝나길 바라면서 부패한 정치와 결탁된 문화가 아닌 더욱 성숙한 문화의 모습을 그려본다. 분노를 승화시킨 성숙한 시민의식과 진보 보수를 뛰어넘는 하나 된 모습이 문화에도 이어지길 기대하면서 말이다.

지금의 분노가 보다 나은 미래를 위한 계기가 되도록 해야 한다. 지난 2년여 동안 우리 문화에 어떤 일들이 벌어졌는지를 냉철하게 들여다보고, 다시는 그런 일들이 반복되게 해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관계 당국이 달라져야 한다. 넋이 나간 척하고 당한 것처럼 말하면서 책임 떠넘기기와 꼬리 자르기로 일관하는 모습에서 탈피해야 한다.

예술과 문화에 정치색을 입혀 편 가르기 하는 태도도 없어져야 한다. 진보니 보수니, 좌파니 우파니 하는 편 가르기가 문화의 본질인 다양성을 좀먹고 있기 때문이다. 그 구분 기준 중 하나는 현실 참여적이고 현실에 대한 비판적 태도를 취하면 좌파라고 하고, 현실에 대한 문제의식보다 예술 세계만을 추구하면 우파적이라고 구분 짓는 것이다. 예술가들이 사회를 향해 발언하고, 사람들의 생각에 영향을 미치며 보다 나은 방향으로 사회를 변화시키려 하는 것은 너무도 자연스러운 일이다. 한 편의 영화나 그림이 나와는 다른 생각과 감정에 공감하게 하고 내 삶에 영향을 주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그렇다고 형식적으로 다듬어지지 않은 조악한 형태로 선동적 내용만을 앞세운다면 그것은 더 이상 예술이라고 할 수 없다. 하지만 이런 것들을 가려내는 일은 우리들의 몫이지, 정부나 목소리 큰 몇몇 예술가의 몫은 아니다. 이러한 일에 정부가 개입하고 특정 부류의 이익을 앞세우며 정치색을 입히는 순간 지금과 같은 문화 대참사가 일어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이제 한 해를 마무리해야 할 때다. 나는 광장의 함성과 노래와 촛불파도타기에서 우리 문화의 현주소를 확인했고, 우리의 사회의 미래에 대한 기대도 갖게 됐다. 민주주의라는 이름으로 새로운 역사가 쓰여 져야 할 텐데, 정치가 이런 우리를 따라주지 못하는 것이 그저 답답할 뿐이다.

박일호 이화여대 교수·미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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