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시베리아로 간 사내가 있다. 러시아 애인과 함께 그녀의 고향으로 갔다. 그는 평소에 아무것도 쉽게 부패하지 못하는 그 추운 벌판에서 단순하게 살아보고 싶다고 했다. 그 순백의 벌판 어느 틈에서 사람들 눈에 띄지 않게 영원히 자신의 육신과 혼을 냉동시키고 싶다고 했다. 그는 시베리아 마을 사람들과 얼음낚시를 나갔다가 실종됐다. 그의 러시아 여인이 전해준 말이다.

“밤에 바깥에서 불어대는 시베리아의 바람소리는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몰라요. 사모바르에서 몽글몽글 피어오르는 수증기만 아니라면 우리가 누워 있는 방안까지 바람이 몰려와 모든 것이 하얗게 얼어버릴 것 같은 두려움이 생기지요. 처음에는 그 사람도 그런 밤들이 무척 외롭고 추웠던 모양이에요. 밤새 잠 못 이루고 뒤척이는 날이 많았지요. 이런 날 밤 바깥에 나가면 하얀 숨이 그대로 얼어붙을 지경이었지요. 공기 중에 떠도는 물 알갱이들이 모두 얼어버려서, 거대한 냉동창고의 얇은 얼음 장막을 뚫고 걸어가는 느낌이에요. 한번은 자다가 깨어보니 그 사람이 안 보이는 거예요. 사모바르는 싸늘하게 식어 있고, 방안은 추위가 지배하고 있더군요. 화장실이라도 갔나 해서 찾아보았지만 실내에 그 사람은 없었어요. 그 춥고 칠흑 같은 한밤중에 어디를 갔나 궁금해서 잠을 이룰 수 없었지만 막상 바깥에 나갈 엄두가 나지 않았어요. 다시 불을 붙인 사모바르가 보글보글 소리를 낼 무렵, 바깥에서 거세게 밀려들어오는 바람과 함께 그 사람이 꽁꽁 언 채로 들어서는 거예요. 시베리아 밤하늘의 별을 보러 나갔다 왔다더군요. 밤새 그치지 않는 바람소리 때문에 잠들 수 없었대요. 낮 시간의 중노동이 힘들지도 않았을까요? 일 미터가 넘는 두꺼운 얼음장에 구멍을 내고 낚싯줄을 드리우는 일이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거든요. 하루만 지나면 그 구멍은 다시 얼음으로 메워져버린답니다. 그 두꺼운 얼음장 밑에서 끌어올려진 물고기들은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그대로 얼어버립니다. 그 물고기들에게는 지상이 바로 냉동창고인 셈이지요.”

개썰매가 뒤집혀 눈 속에 묻혀 있던 그를 봄이 와서 겨우 찾았다고 했다. 그를 찾아와 사모바르 옆에 뉘였을 때 바깥에서는 바람이 끊임없이 유리창을 흔들며 지나가고 사모바르는 따스한 입김을 내뿜었다. 차를 끓이는 주전자 사모바르는 러시아 말로 ‘스스로 끓는 용기’라고 한다. 이 겨울 마음이 산란한 모든 이에게 스스로 따스해질 용기를 전한다. 사모바르 사모바르.

조용호 문학전문기자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
  • 블랙핑크 로제 '여신의 볼하트'
  • 루셈블 현진 '강렬한 카리스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