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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뒤엉킨 세 남녀의 사랑… 밀도 있는 감정표현 집중”

입력 : 2016-12-04 21:29:15 수정 : 2016-12-04 21:29: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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뮤지컬 아이다 ‘라다메스’역 민우혁
뮤지컬 배우 민우혁(33)이 두드러진 건 지난겨울 뮤지컬 ‘레미제라블’ 때였다. 키 187㎝에 외모가 훤칠한 그는 프랑스혁명 지도자에 딱 이었다. 이어 올여름에는 ‘위키드’의 주요 배역인 피에로로 무대를 채웠다. 올겨울 그는 드디어 대형 뮤지컬의 주연을 맡았다. ‘아이다’에서 라다메스 장군을 연기한다. 소·중극장에서 대극장으로 영역을 넓혀온 그로서는 감회가 남다를 법했다. 그러나 최근 서울 종로구 세계일보 사옥에서 만난 그는 “큰 역할이라기보다 해야 할 게 많은 역”이라고 말했다.

“사실 뮤지컬에서 크고 작은 역할을 구분하기 애매한 게, 다 큰 역할이죠. 없어서는 안 될 캐릭터들이에요. 다만 ‘아이다’에서는 제가 끌고 가야 할 힘의 무게가 다를 뿐이에요.”

무대에서 단연 눈에 띄는 외모를 가진 민우혁은 3년 만의 고속 성장에 대해 “신체 조건도 운 좋게 작용한 것 같다”며 “외국 제작진들이 ‘한국에도 이런 신체를 가진 배우가 있네’라는 말을 하곤 한다. 저 역시 제 조건이 행운이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남제현 기자
주연과 단역은 주목도에서 몸값까지 천양지차인 현실에서 그의 말은 교과서처럼 들렸다. 그는 고개를 저으며 “작은 역부터 큰 역할까지 다 해봤는데, 작은 역을 할 때도 최선을 다하고 많이 고민했다”며 “제가 작은 배역을 할 때 어떤 마음이었는지 돌이켜봤을 때, 배역의 크고 작음은 의미가 없다”고 부연했다. 그는 “사실 주역들이 잘 보이려면 앙상블이 받쳐줘야지, 그러지 않으면 아무리 연기를 잘해도 한계가 있다”며 “모든 공연에서는 앙상블이 제일 중요한 것 같다”고 했다.

“‘아이다’에서 병사들이 저를 장군처럼 봐주지 않으면 제가 아무리 멋있는 척해도 그렇게 안 보일 거예요. ‘누비아’라는 노래에서 아이다도 마찬가지죠. 백성들이 한과 절규를 표현하지 않으면 누비아 민족의 한을 아이다 혼자 보여주긴 불가능해요. 아쉽게도 관객의 눈에는 주연이 먼저 들어오겠지만요.”

‘아이다’에서 그가 느끼는 어려움은 배역의 비중보다는 밀도 있는 감정 표현이다. 승전 후 귀국한 라다메스는 정혼녀인 이집트 공주 암네리스 대신 노예로 끌려온 누비아 공주 아이다에게 사랑을 느낀다. 국적·신분의 한계로 두 사람은 끝내 함께 죽음을 맞는다. 이 모든 일이 단 일주일 만에 벌어진다. 급격한 감정 변화를 관객에게 납득시키는 게 그의 1차 과제다. 민우혁은 “세 사람은 신분이 높고 머리가 좋아 민첩하게 생각하고 감정선이 빠르게 바뀐다”며 “단 한순간 방심하면 그런 표현이 안 되기에 살얼음판 걷듯 일초일초 집중하고 있다”고 전했다. 몸 만들기도 쉽지 않다. 극중 라다메스는 6개월간 말린 원숭이 고기를 먹으며 전장을 누빈 강인한 남성이다. 그는 “3개월간 닭 가슴살과 계란만 먹으며 8㎏을 감량했다”고 말했다.

그에게 ‘아이다’는 이런 고생마저 즐겁게 느껴지는 작품이다. 2012년 객석에서 ‘아이다’를 본 그는 ‘저런 작품을 할 수 있는 배우들은 어떤 기분일까’ 생각했다. 2011년 잠깐 뮤지컬에 출연한 뒤 쉬던 때였다. 이후 2013년 말부터 본격적으로 뮤지컬 배우로 활동한 그는 단 3년 만에 직접 ‘아이다’ 무대에 서게 됐다. 겉만 보면 ‘초고속 성장’이지만, 이면에는 10년간의 무명 생활이 있었다. 초등학교 3학년부터 대학교 1학년까지 야구를 한 그는 부상으로 선수의 길을 포기해야만 했다. 그는 “10년 넘게 해온 건 운동밖에 없고 회사에 들어가기도 힘들고 난 뭘 할 수 있을까 고민하던 때 노래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져 열심히 했는데 잘 안 됐다”고 회상했다. 2003년 드라마 OST를 부르기도 했으나 여기서 끝이었다. 일용직으로 일하며 꿈을 키웠지만, 무명 생활은 야구선수 시절만큼이나 힘들었다. 20대 시절이 그렇게 흘러갔다. 후회는 없다. 그는 “그때 잘됐으면 ‘난 지금 내려가고 있겠구나’ 생각한다”며 “정말 많은 사람을 만나고 여러 경험을 했다”고 말했다.

“그때는 힘들고 답답했어요. ‘내가 왜 이러고 있을까’ 생각할 나이잖아요. 지금 생각해보면 그 시간이 오히려 저를 단단하게 해준 것 같아요. 이제 인내하는 데는 도가 텄어요. 야구도 잘 한 것 같아요. 야구를 한 시간이 없었으면 무명 시절을 못 견뎠을 거예요. 제가 야구를 한 건 부모님을 사랑해서였어요. 부모님이 야구를 굉장히 좋아하셨거든요. 사실 저는 야구가 하기 싫었어요. 야구를 그만두면서 부모님께 ‘지금까지 부모님을 위해 살았으니 이제 날 위해 살겠다, 내가 선택한 일에 성공하는 모습을 보여주겠다’ 약속했어요. 그 약속 때문에 죽이 되든 밥이 되든 버텼던 것 같아요.”

인고의 시간이 있었기에 그는 “조급해 하기보다 지금처럼 천천히, 하고 싶은 일을 하며 사는 데 굉장히 만족한다”며 “큰 욕심을 부리기보다 계속 일할 수 있는 지금이 좋고, 앞으로도 좋은 작품을 만나 계속 성장하고 싶다”고 말했다.

송은아 기자 se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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