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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과 그들이 사는 세상, 2016년 ‘제5공화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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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2-01 23:37:00 수정 : 2016-12-01 23:36: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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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동네 라이온스 클럽을 만드는 것이 아닙니다.”

1984년 어느 날, 고 정주영 당시 현대그룹 회장과 양정모 국제그룹 회장 등 재벌총수들이 서울 모처의 한 호텔로 들어섰다. 이 곳에서는 일해장학회재단을 만드는 일이 한창이다. 3년에 걸쳐 총 300억원에 달하는 재단 설립기금을 강요받은 대기업 총수들은 서로 눈치를 보며 재계서열에 따라 기금을 냈다. 당시 혼란한 정국과 민주화를 염원하던 세대를 그려 시청자들로부터 호평을 받은 드라마 ‘제5공화국’에서 최순달 전 일해장학재단 이사장은 10억원을 쾌척한다는 정 회장에게 “지금 동네 라이온스 클럽을 만드는게 아니다”며 무안을 주고 결국 15억원을 받아냈다.

2016년 12월, 제5공화국때와 같은 일이 대한민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청와대와 대기업의 밀실회담이라는 정경유착 비리가 1일 출범한 특검을 통해 낱낱이 파헤쳐질지 주목된다.


◆닮아도 너무 닮은 일해재단과 K스포츠·미르재단◆

1988년 5공 청문회에서 전두환 전 대통령의 일해재단 자금을 전경련이 주도적으로 나서 모금한 사실이 밝혀졌다. 전 전 대통령의 아호인 ‘일해’를 이름에 쓴 이 재단은 1983년 미얀마 아웅산 묘소 폭발사건 희생자 유족을 지원하고 장학 사업을 펼친다는 목적을 내세웠다. 당시 전두환 정권은 재단 연간 운영비용으로 3년에 걸쳐 300억원을 확보하기 위해 표면적으로 대기업들에게 모금에 참여할 것을 권유했지만 실제 모금은 강압을 통해 이뤄졌다. 당시 모금에 부정적이었던 국제그룹은 전두환 정권에 ‘미운털’이 박혀 결국 해체수순을 밟았다.

미르재단과 K스포츠재단의 모금과정도 이와 다르지 않다. ‘한국문화를 전 세계에 확산한다’는 미르재단과 ‘스포츠를 통해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인다’는 K스포츠재단은 그럴 듯한 포장을 내세우며 기업들로부터 총 774억원을 조성했다. 기업들의 자발성이라기보다는 사실상 반강제적 모금 수법도 동일하다. 일해재단은 장세동 당시 대통령 경호실장이, 미르와 K스포츠재단은 안종범 전 청와대 정책조정수석이 수시로 모금상황을 챙기면서 기업들을 압박했다. 하지만 지금까지 숱한 정치바람에 단련된 기업들도 순순히 응할 리 없다. 기금출연의 대가로 총수의 사면, 경영권 방어, 사업 인허가, 검찰수사와 세무조사 무마 등의 민원을 요구했다는 의혹이 크다.


◆전두환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 대응도 판박이◆

검찰 수사를 거부하며 특검을 고집한 박 대통령의 모습에서 전 전 대통령의 골목성명 당시 모습이 보인다.

전 전 대통령은 1999년 12월 연희동 자택 앞에서 “종결된 사안의 수사는 진상 규명을 위한 게 아니라 정치적 필요에 따른 것으로, 어떠한 조치에도 협조하지 않을 것”이라는 이른바 ‘골목 성명’을 발표하고 고향인 경남 합천으로 내려가 버렸다. 검찰이 12·12 군사쿠데타와 5·18 광주 민주화 항쟁 당시 내란 및 내란목적 살인 혐의 등을 수사하겠다고 발표한데 대한 항의였다. 이에 검찰은 법원에서 사전 구속영장을 발부받아 전 전 대통령을 구속한 뒤 그가 수감된 안양교도소로 가서 출장조사를 벌이는 ‘초강수’로 대응했다.

박 대통령도 지금까지 3차례에 걸친 검찰 특별수사본부의 대면조사 요구를 모두 묵살했다. 박 대통령이 지난 4일 대국민 담화에서 “필요하다면 저 역시 검찰의 조사에 성실히 임할 각오”라고 한 약속도 공염불이 됐다. 표면적으로는 ‘촉박한 변론 준비기간 등 일정상 어려움’이지만 청와대의 검찰 장악력이 급격히 떨어진 상황인 데다 검찰이 예상밖의 강수를 들고 나오자 차라리 특검 조사에 집중하는 쪽으로 전략을 튼 인상이 짙다.


◆특검 수사 주류도 박 대통령과 대기업간 ‘밀실회담’◆

검찰은 지금까지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수수 혐의 규명에 수사력을 모아왔고 공을 넘겨받는 특검수사의 핵심도 결국 박 대통령의 뇌물죄 규명이다.

직권남용과 강요 등의 혐의로 구속기소된 비선 실세 최순실(60)씨와 안 전 수석의 공범으로 박 대통령을 지목한 검찰은 삼성물산·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 이어 롯데그룹과 SK그룹의 면세점 사업 신규 진출 및 재선정 과정에서 최씨와 박 대통령의 관여가 있었는지 집중적으로 확인했다. 박 대통령은 올해 초 SK 최태원 회장, 롯데 신동빈 회장과 독대했는데, 검찰은 최, 신 회장에게서 면세점 사업 등 현안에 관한 부탁을 들은 박 대통령이 ‘경제수석에게 검토를 지시하겠다’는 긍정적 취지로 답변한 정황을 포착한 것으로 알려졌다. 독대 후 두 그룹은 K스포츠재단 추가 출연 요청을 받았다.

검찰은 면세점 특혜 의혹 등으로 롯데와 SK를 압수수색하면서 영장에 ‘최씨와 안 전 수석의 제3자 뇌물수수 혐의 규명을 위해서’라고 적시했다. 이들은 박 대통령과 공범 관계다. 결국 타깃은 박 대통령의 뇌물수수죄 규명인 셈이다.

박 대통령의 제3자 뇌물죄 혐의와 관련한 직접조사 등 검찰에서 해결하지 못한 난제를 어떻게 해결하느냐에서 갈릴 것으로 관측된다. 특검이 대통령 수사 과정에서 뇌물죄를 적용해 공소장을 변경하거나 추가기소할 경우 정치권의 탄핵 절차에도 큰 영향을 미칠 공산이 크다.

김건호 기자 scoop3126@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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