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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절대 권력 휘두르는 기득권… 암담한 현실 '데자뷔'

입력 : 2016-12-01 21:04:59 수정 : 2016-12-01 21:04: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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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년 개봉 예정 세태풍자 영화 ‘귀인’

1950년대 자유당 시절 ‘가짜 이강석 사건’을 모티브로 삼은 현실 비판 영화 ‘귀인’은 60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근절되지 않는 권력형 비리를 조롱한다.
신문을 펼치거나 TV를 켜면 연일 영화보다 더 영화 같은 일들을 접하게 된다. 영화를 능가하는 현실 ‘최순실 게이트’는 국민을 허탈감과 무기력증에 빠뜨리고 있다. 이런 일은 그저 영화 속 이야기인 줄 알았는데···. 영화와 현실 사이에서 혼란스럽다. 관객들이 굳이 극장을 찾지 않는 원인이기도 하다.

 영화인들 역시 이러한 현실에 난감해한다. 자신들이 제작한 영화보다 눈앞에서 일어난 사건이 더 드라마틱해 앞으로 영화 만들기가 쉽지 않겠다고 자조한다. 그래도 현실을 비판하는 영화들이 속속 기획되고 있다. 특히 ‘최순실 게이트’를 소재로 한 영화 만들기는 한동안 지속될 전망이다.

 흥행 기대작으로는 ‘더 파이브’를 연출한 정연식 감독의 ‘귀인’이 손꼽힌다. 60년이란 세월이 흘러도 바뀐 것이 없는 권력의 비리를 조롱하는 세태 풍자 블랙코미디다.

 영화의 배경은 1957년, 집권여당 자유당의 권력이 부정선거와 부패·부조리로 극을 달리던 시기다. 그해 3월 26일, 대통령 이승만은 국회의장 이기붕의 장남 이강석을 자신의 아들로 입적시킨다. 이로써 이승만은 대를 이을 법적인 아들을 얻게 되고, 이기붕은 이승만의 후계를 노리는 수많은 정적들을 물리치고 대한민국 2인자로서의 권력을 확보한다.


 대한민국 권력 1인자를 양아버지로, 권력 2인자를 친아버지로 둔 이강석의 힘은 실로 막강했고 스스로를 대한민국의 3인자라고 불렀다. 이강석은 그 힘으로 서울대 법학과에 편입하지만 서울대 법대 동문들의 결사적인 반대에 부딪히자 육군사관학교에 다시 편입학한다. 그가 백주대로에서 헌병을 구타하고 파출소 기물을 부수며 난동을 피워도 누구하나 나서서 제지하지 못했다. 사람들은 이강석의 얼굴은 몰라도 그 이름은 모두 알고 있었다.

 “나 이강석인데 ···.”

 1957년 8월 21일, 새벽부터 몰아친 태풍 아그네스가 경북 동해안 일대를 쑥대밭으로 만들었다. 이 지역에 22살의 대구 출신 무직자 강성병이 나타났다. 그는 이강석 행세를 하면서 지역의 각급 기관장들을 농락하고 다녔다. 기관장들은 그에게 거액의 돈을 바치고 출세와 승진을 위해 아첨을 일삼는 추태를 보였다.

덜미는 경북지사 이근식이 잡았다. 진짜 이강석의 얼굴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가짜 이강석 사건을 심판하는 대구법원에는 개원 이래 최대 인파인 1000여 명이 몰려들었다. 판사 전용 출입문까지 들어선 방청객 사이로 법정에 들어오던 판사의 법복이 찢어지고 법정 안 의자의 반이 부서졌다.

강성병은 10개월 실형을 선고 받았지만, 방청객들은 오히려 그의 법정 발언에 박수를 보냈다.

 “돈만 있으면 언제라도 대학에 입학할 수 있는 것이 오늘의 세태가 아니냐. ··· 이번 체험을 통해 권력의 힘이 막강함을 새삼 느꼈다. ··· 내가 시국적 악질범이면 나에게 아첨한 서장, 군수 등은 시국적 간신도배이다. ··· 언젠가 서울에서 이강석이 헌병의 뺨을 치고 행패를 부리는데도 아무 일도 없었던 것을 보고 한 번 흉내내 본 것이며, 권력이 그렇게 좋은 것인 줄 비로소 알았다.”


영화 ‘귀인’은 ‘가짜 이강석 사건’을 모티브로 삼아 돈과 권력에 빼앗긴 연인을 되찾기 위해 가짜 황태자가 되어 벌이는 한 생계형 사기꾼의 삼일천하를 그린다.

 22세의 허세남 춘식은 친구 홍곤과 함께 대구역 앞에서 소소한 도둑질이나 사기를 치며 살아가는 건달이다. 어느 날 상경한 그는 ‘새파란’ 소위가 헌병들을 세워놓고 구타하는 장면을 목격한다. 누구 하나 말리는 사람 없고 오히려 수습하러 온 대위가 그에게 경례까지 붙이며 사과하는 희한한 장면까지 연출된다. 안하무인의 소위가 황태자 이강석이다. 춘식은 한 가지 확신을 얻는다. ‘이런 세태를 이용하면 거금을 마련할 수 있겠구나···.’ 춘식은 이강석에 대한 신문기사를 스크랩해 달달 외우고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강석처럼 꾸미며 사건을 벌일 장소를 물색한다.

시나리오는 곳곳에 지금의 상황과도 딱 들어맞는 대사들을 심어놓았다.

 “이래도 밟히 죽고 저래도 밟히 죽느니 잘난 놈들 발바닥에 가시라도 한번 박아보고 죽을란다.”(춘식)

 “서대문이나 경무대나 결국은 ‘우리 사람’이 중요합디다. ‘우리 사람!’”(춘식)

 “제가 영감님의 ‘그런 사람’이 되겠습니다.”(경주경찰서장)

 “후계자? 대통령이 무슨 가업이가? 대를 잇고로.”(안동경찰서장)

 후반부 법정에 선 춘식의 최후진술은 ‘청년실업’과 ‘헬조선’을 꼬집는다.

“22살. 뭐든지 할 수 있는 나이··· 그렇지예. 당연히. 하지만 지금 22살이 정말 뭐든 할 수 있는 나이입니까? 여기가 ··· 22살이 원대한 꿈을 꾸고 이상을 가꾸게 해주는 나라입니까? 젊은이들이 뭐든 할 수 있는 그런 꿈과 이상의 나라입니까. 저는 그거이 궁금합니더.”

제작비는 100억원을 웃돌 것으로 보인다. 구성이 탄탄한 시나리오를 앞세워 특급 배우들과 캐스팅 조율 중이며 내년 여름방학이나 추석 대목에 개봉할 예정이다. 그때쯤이면 ‘최순실 게이트’가 알려질 대로 알려져, 이를 직접 다루는 영화들보다 ‘60년 전이나 지금이나 권력형 비리는 똑같다’는 메시지의 이 영화가 더 설득력을 얻을 것이란 평가다.

김신성 기자 sskim65@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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