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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돈다발 든 여행용 가방, 선거 직전 대백아파트로 옮겨”

관련이슈 최순실 게이트 , [추적보도-최순실 17년 운전기사 육성 증언]

입력 : 2016-11-21 18:18:14 수정 : 2016-11-24 11:00: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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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보도] 최순실 17년 운전기사 육성 증언 ①-운전기사 김씨 일문일답 세계일보는 국정농단 장본인 최순실씨와 그 일가의 일거수일투족을 17년간 가까이에서 지켜본 최씨의 운전기사 김모(64)씨를 인터뷰했다.



김씨는 1985년부터 1994년까지 최씨의 유치원 버스를 운전했고, 2년 정도 쉰 뒤 다시 1996년부터 2004년까지 최씨 차량을 운전했다고 밝혔다. 모두 17년.



그는 최씨 차량을 오랫동안 운전하면서 자연스럽게 최씨와 박근혜 대통령 사이 통화 내용은 물론 최씨 일가, 박 대통령과의 관계 등 수많은 사실을 알게 됐다고 말했다.



최씨 일가는 김씨를 ‘김 과장’이라고 불렀고, 그는 최씨 자매를 ‘순실이’ ‘순득이’ 등으로, 최씨의 전 남편 정윤회씨를 ‘정 실장’ 또는 ‘정 사장’으로, 최씨 어머니인 임선이씨를 ‘할매’ 등으로 각각 불렀다.












국정농단의 장본인인 최순실씨 일가의 운전기사로 17년간 일한 김모(64)씨가 지난 9일 수도권 인근 한 커피숍에서 세계일보와 만나 인터뷰를 갖고 있다. 그는 1998년 보궐선거 및 2000년 16대 총선에서 박 대통령의 선거캠프에 최씨 일가의 거액 자금이 유입됐다고 증언했다.

특별취재팀

김씨와의 인터뷰는 지난 9일 수도권 인근 커피숍과 식당 등에서 장시간 진행됐고, 다시 21일 전화 통화를 통해 추가 확인이 이뤄졌다.



세계일보는 김씨가 밝힌 내용을 검증하기 위해 인터뷰 전후부터 대구 달성군을 찾아 선거 현장을 탐방했고, 주요 내용 관련 인물을 추가로 만나거나 전화 통화를 했다. 아울러 중앙선거관리위원회에 대한 정보공개 청구를 통해 선거 및 정치자금 관련 자료를 입수해 사실 검증을 시도했다.



확인 및 검증 결과 인터뷰는 매우 구체적이고 대체적으로 진실과 사실에 부합하다고 판단했다. 다음은 김씨와의 일문일답.



― 최씨와 관련, 간단히 자기 소개를 해달라.



“1985년 10월쯤 ‘운전기사 소개소’에 순득이(최순득씨)의 남편 장모씨가 사람을 구하러 왔더라. ‘학원 버스를 사놨는데 기사가 없으니 기사를 해달라’고 했다. 순실이(최순실씨)의 ‘초이유치원’ 버스였다. 최태민씨가 아프던 1994년 (최씨가) ‘아버지 몸이 좀 안 좋고 하니 아버지 차를 운전하세요’라고 하더라. 그래서 ‘모르는 사람은 몰라도 잘 아는 분이니 자신이 없다’고 하니까 ‘그러면 그만두세요’라고 해 그만뒀다. 순실이는 당시 자신이 운전했다. 그런데 1996년 순실이가 친구를 통해 다른 곳에서 일하고 있던 나를 불렀다. 자기가 그만두라고 했는데 다시 오라고 할 수 없으니 고교 동창을 통해 전화를 했다. ‘나 좀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해 ‘무엇 때문에 만나는데’라고 답하니까 그 동창이 ‘(최)원장(최순실씨)이 옛날일 잊고 다시 왔으면 한다, 만나자’고 해서 만났다. 그때부터 2004년 초까지 계속 운전했다.”



― 왜 그만두게 됐나.



“자기 차를 운전하라는 게 아니라 (언니인) 순득이 차를 운전하라고 했다. 그래서 다시 (고향으로) 내려왔다.”



― 최씨 일가가 1998년 보궐선거부터 박 대통령을 도왔다는데.



“(1998년 4·2보궐선거의 공식 선거운동 시작 직전) ‘할매’(최씨의 모친 임선이씨)가 ‘돈은 내가 가지고 내려가니까’라고 말하면서 ‘우리 딸 너이(넷)하고 내(나)까지 해서 5000만원씩 내 2억5000만원인데 니(너)가 잘 가지고 내려가라’고 했다. 차로 할매하고 순실이와 함께 가방 하나를 싣고 대구 달성군 대백아파트로 내려갔다. 대구 넘버를 가진 자동차에 싣고 내려갔다.” (선거캠프 한 관계자는 이와 관련, 취재팀에 “선거 때문에 외제차나 서울 번호를 가진 차를 운행할 수 없었다. 변변한 차가 없는 상황이었다”고 증언했다.)







―차에 실었던 가방 기억나나.



“돈을 담은 가방은 1m가 넘는 길이의 밤색 여행용이었다. 바퀴가 달려 있고 엄청 딱딱했으며 번호를 설정해 잠그는 여행용 가방이었다. 가방을 들 수 없었다. 가방이 가득찬 것을 느꼈다.”













1998년 보궐선거와 2000년 16대 총선 당시 박근혜 대통령이 머물렀던 대구 달성군 화원읍 대백아파트. 박 대통령은 1998년 4·2 보궐선거 주소지로 사용하기 위해 이곳을 임대한 이후 2000년 6월 매입했다가 2012년 6월 매각했다.

대구=특별취재팀

―언제 출발해 어떻게 배달했나.



“우리가 먼저 (대구 달성에) 내려갔다. 아마 오전 8시 조금 못 돼 서울에서 출발했던 것 같다. 성격이 매우 급해 3시간20∼30분 달려 오전 11시쯤 (대백아파트 105동 202호에) 도착한 것 같다. (아파트는) 2층이어서 엘리베이터가 안 섰다. 가방이 너무 무거워 엘리베이터를 타고 3층에서 내려 계단에서 굴렸다. (가방이) 주르르 굴러가버렸다. (가방을) 할머니 방으로 갖다 줬다.”



― 박 대통령은 언제 대구에 내려왔는가.



“그날 박 대통령도 자신의 차량에 가방을 싣고 내려갔다. 원래 순실이네 집 가방이었는데 그쪽으로 보낸 것이었다. 박 대통령은 가방 하나 좋은 것이 없었다. 박 대통령이 가져온 청색 가방에는 우리의 반밖에 (돈을) 가져오지 않았다. 그 집(박 대통령쪽) 기사는 ‘가방 되게 무거워요’라고 말했다. 그래서 내가 (그 가방을) 들어보니 (무게가) 우리 것의 반밖에 안 됐다.”



―가방 속의 돈을 확인했는지.



“딱 한번 (가방 안을) 본 적이 있다. 한 일주일 정도 지난 뒤였다. 왜 봤느냐 하면 (할매가) ‘야 김 과장, 큰일났다’고 해 ‘왜 그러느냐’고 하고 가보니 ‘(방의) 문이 잠겼다’고 말했다. 밖에 이야기할 수 없어 나에게 말한 것으로 생각된다. ‘니 못 여나(여느냐)’라고 했다. 그래서 내가 책받침을 하나 사왔다. 그것을 가지고 (방문을) 훑으니 열리더라. 할매가 깜짝 놀랐다. 그때 가방을 열어놨는데 돈이 한가방이었다. 전부 돈이었다. 그때 유일하게 봤다. 선거하는 중이었는데 (가방의) 한 4분에 1 정도가 비어 있는 상태였다.”



―돈 가방은 어디에 보관했나.




“큰 방에는 박 대통령이 잤는데, 돈 가방이 있던 곳은 할매가 자는 방이었다. 돈 관리는 전부 할매 방에 (가방을 가져다)놓고 할매가 했다.”



(당시 박 캠프에서 활동하던 정윤회 후보 비서실장과 다른 참모들은 선거 기간 박 대통령의 아파트와 별도의 방 2개짜리 대백아파트에 묵었다고 한다.)



―그 돈을 누가, 어떻게 사용했는가.



“캠프 핵심 관계자만이 가방에서 돈을 가져갔다. 그가 현금을 007가방 같은 데에 담아 갔다. 박 대통령은 당시 돈이 얼마가 나가고 그런 것을 몰랐던 것 같다.”



―관련 자료가 있는가.



“이 사람들은 선거가 끝나면 이틀도 아니고, 오늘 (당선) 발표가 나자마자 아침에 (서울로 바로) 올라갔다. 자료를 하나도 남김 없이 폐기했다고 하더라. 그 사람들과 사진 한장 같이 찍은 게 없었다.”



―당시 대백아파트에서 한 할매가 밥을 해줬다는 얘기도 있던데.



“그 집에는 임씨와 가정부, 박 대통령밖에 없었다. 임씨가 밥을 해준 게 아니라 가정부가 있어서 그가 밥을 했다. 순득이네 집에 있던 가정부였다. 임씨는 (박 대통령의) 말동무를 해줬다.”



―자금지원 외에 최씨 일가가 박 대통령의 선거를 어떻게 도왔는가.



“그 집에 순실이는 왔다 갔다 했다. 당시는 아이(정유라씨)가 기껏 돌이 지난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가정부가 ‘박 대통령이 식사하는 동안 (임씨가) 앞에서 얘기를 다한다. (박 대통령이) 유세 보고 등을 하면 (임씨가) 주민들이 너무너무 좋아하고 그런 좋은 이야기만 했다’고 그러더라.”



―임씨가 박 대통령을 도왔다는 얘기인가.



“가정부는 ‘(박 대통령에게서) 전화가 오면 이모 바꿔달라’고 한다더라. 가끔 아파트에 올라가 보면 할매가 누워 전화를 받기도 하더라. 그러면 커피를 마시면서 기다리곤 했다. 박 대통령과 통화인데, (통화시간이) 최하 1시간이었다. 통화 내용이 다 들렸는데, 옆에서 들어보면 전부 거짓말이었다.”







―무슨 거짓말을 했다는 것인가.



“맨날 좋은 소리만 했다. 예를 들면 ‘노인정을 갔는데 (박 대통령의) 평판이 어떻다, 사람들이 의원님 칭찬이 대단하다’고 말하곤 했다. 순 거짓말만 했다.”













1998년 대구 달성에서 국회의원에 처음 당선되고 난뒤 환호하고 있다.

사진 = 연합

―2000년에도 국회의원 선거가 있었는데.




“1998년과 똑같았다. 그때도 선거 하루 전인가 해서 내가 (돈 가방을) 싣고 (대구 달성에) 내려갔다. 그때는 (임씨가 돈과 관련한) 말을 안 하더라. 하지만 트렁크는 매한가지로 한가방이었다. 이 집(최씨 일가)은 밤색 가방, 삼성동쪽(박 대통령 측)은 청색 가방이었다.”



―당시 기억나는 일은 없는가.



“선거가 임박하니까 1998년처럼 (최씨가 가족들에게) 돈을 내라고 했던 모양이다. 그런데 순득이가 현금이 없어 대출을 받아야 한다며 못 낸다는 식으로 얘기한 것 같았다. 그러니까 순실이가 차에서 순득이에게 전화해 ‘앞으로 나에게 부탁하지 마, 절대. 알아서 해’라고 말했다. 그러니까 언니가 ‘알았다’며 찍소리 못 하고 돈을 냈다.”



―박 대통령은 선거자금 지원에 대해 모르는 일이라고 하고 최씨 측도 돈을 준 적 없다고 할 텐데.



“(돈을) 배달한 사람이 있는데. (그 가방에) 옷 넣어 가지고 갔나? 최태민씨가 (박 의원을) 대통령으로 만들려다 못 만들고 죽고, 그 바통을 할매(임씨)하고 순실이가 맡았는데, 실제로 순실이가 다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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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씨는 도대체 어떤 사람인가.



“임씨와 최씨 일가는 양반은 못 되는 것 같더라. 말하는 것도 그렇고, 욕심도 엄청 많아 남에게 주는 건 절대로 하지 않았다. 가정부 얘기로는, 할배(최태민씨)가 아플 때 할매에게 ‘은행에 평생 써도 다 못 쓰는 예금 130여억원이 있으니까 내가 죽더라도 애들에게 손 벌리지 마라’고 했다고 한다. 강남 부동산을 다 구입한 뒤였다. 그런데 할매 성격이 그렇지 않더라. 아무리 돈이 많아도 딸들에게 손을 벌렸다. 순실이도 그런 게 있다.”



―임씨가 죽은 뒤 재산은 어떻게 됐나.



“정확히는 모르지만, (2003년 사망한 임씨의) 삼우제가 지난 뒤 옛날 돈을 가져왔던 가방을 가지고 (장례식장에) 들어갔다. 부조금이 (가방에) 들어갔다. 장례식장에 650명 정도 왔다 갔다고 하더라. 박 대통령도 그때 다녀갔다. 듣기로는 할매 돈이 은행에 130억원 정도 있었다고 하더라. 그것을 딸들끼리 나눈 것으로 안다.”



(박 대통령은 임씨의 장례식뿐 아니라 팔순 잔치에도 참석해 노래까지 불렀다고 정윤회씨의 아버지 정관모씨가 언론 인터뷰에서 밝힌 바 있다)



―최씨 자매의 돈이나 부동산 구입 자금은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최태민씨에게서 (돈이) 넘어왔다고 봐야 한다. 원래 지(최씨)가 뭐 있었겠느냐. 최순천 부부 소유의 1300억원짜리 서울 청담동 빌딩도 최태민씨가 살아 있을 때 지어줬다고 하더라. 자세히는 모르지만, 최태민씨는 밤새도록 용달차로 돈을 실어 나를 정도로 돈이 많았다고 한다. 최씨의 외사촌 오빠 임모씨(작고) 얘기로는 ‘할배(최태민씨) 돈을 용달차로 4, 5대나 옮겼다’고 하더라. (돈을) 옮기는 데 죽을 뻔했다고 한다. 한두 번이 아니고 엄청나게 많았다고 하더라. 최태민씨는 남 모르게 죽고 1년 후에야 언론에 알려지기도 했다.”



―최씨의 재산은 어떻게 해서 형성된 것인가.



“지금 최씨가 사는 서울 신사동 7층짜리(미승빌딩)는 원래 7억원을 주고 최태민씨가 사줬다고 하더라. 빌딩을 짓기 위해 강남구 역삼동 180평짜리 2필지 집을 28억원 정도를 받고 팔았다. 할매에게 10억원을 받았지만 38억원밖에 안 됐다. 실제 45억원이 넘는 돈이 들어가게 돼 돈이 모자랐다고 한다. 순득이가 할매에게 10몇억원을 빌려가 매달 이자로 900만원을 내고 있었는데, 한번은 임씨 명의로 10억원을 보내라는 내용증명을 보낸 모양이다. 난리가 났다. 순득이와 남편이 찾아와 할매를 막 다그쳤다. ‘엄마가 어떻게 내용증명을 보낼 수 있느냐’고 다그치자 ‘사실은 순실이가 보내라고 해 보냈다’고 실토했다. 그 자리에서 순실이에 대한 욕을 했지만 실제 순실이를 만나면 찍소리도 못 했다.”







―대단하군요.



“언젠가 현재 동부상호신용금고가 있는 곳의 3개 필지 가운데 하나(서울 신사동 639-11)를 50억원을 주고 샀다. 나중에 최씨의 땅을 사지 않으면 큰 건물을 지을 수 없는 상황이 되자 순실이가 (매수자에게) 100억원을 내라고 하더라. 그래서 매수자들이 울며 겨자 먹기로 85억원을 주고 샀다고 한다. 순실이의 배짱이 보통을 넘었다. 20여년 전 경기도 동두천에 1억원을 주고 산 땅을 2000년도인가 즈음에 40억원을 받고 팔았다. 그때 차를 아우디와 벤츠로 싹 바꾸더라. 원래 저 사람들은 현금을 가지고 있지 않았다.”



―이런 얘기를 전부 공개해도 되겠느냐. 걱정되지 않나.



“걱정될 게 뭐가 있느냐. 조금이라도 보탠 것이 없다. 내 이야기가 나가면 순실이는 (구치소에) 드가(들어가) 있으니까 모를 것이고, 안봉근(전 비서관)이라든가 ‘야들’(박 대통령의 측근 참모들)도 다 알 것이다. (나에게) 약점은 아무것도 없다.”



―그동안 이 얘기가 왜 알려지지 않았는지.



“누구 말마따나 돈이 생겨 이런 것도 아니고…. (대선이 있던 2012년) 내가 하도 열받아 ‘너(최씨)는 앞으로 만날 일도 없을 것’이라고 생각해 야당 쪽에 전화를 하긴 했다. 주위에서 ‘하지 마라’고 말려 (기자회견을) 하지 않았다. 당시 야당에 (이런 내용을 공개)해버렸으면, 박 대통령이 (대통령에) 안 됐을지 모른다.”



특별취재팀=김용출·이천종·조병욱·박영준 기자 kimgija@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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