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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청와대 회유 거절하자 이튿날 새벽에 긴급체포"

관련이슈 [특종!] 정윤회 국정 농단 의혹

입력 : 2016-11-11 19:10:41 수정 : 2016-11-28 15:42: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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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추적보도-부실로 드러나는 '정윤회 문건 수사'] 2년 간의 침묵 깬 한일 전 경위

2014년 11월 세계일보의 ‘정윤회 문건’ 보도 당시 청와대 문건 유출의 시발점으로 지목된 한일(46) 전 서울경찰청 정보분실 경위는 문건 유출의 첫 당사자로 지목돼 구속된 뒤 경찰에서도 파면됐다. 이 과정에서 청와대가 한 전 경위에게 자백을 회유했다는 의혹이 제기됐지만, 청와대와 정부는 관련 사실을 전면 부인하고 그 자신도 그런 내용의 인터뷰를 한 적이 없다고 밝히면서 흐지부지 사그라들었다.

그런 한 전 경위가 2년간의 긴 침묵을 깨고 지난 9일과 11일 이틀에 걸쳐 서울 강동구 커피숍과 양천구 공원 등에서 세계일보와 만나 전모를 털어놨다.

한일(46) 전 서울경찰청 경위가 11일 서울 양천구 한 공원에서 세계일보와 만나 2014년 11월 ‘정윤회 문건보도’와 관련해 청와대의 회유와 당시 자신은 최근 ‘국정농단 비선실세’로 드러난 최순실씨에 대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고 밝히고 있다. 한 전 경위는 2년 만에 진실을 밝히게 된 이유에 대해 “그동안 너무 불안하고 힘들었다. 이제는 내가 말을 해도 누군가 믿어줄 것 같았다. 고인(최경락 경위)의 명예가 회복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남정탁 기자

한 전 경위는 보도 직후인 2014년 12월 검찰에서 “작고한 최경락 경위에게 문건을 넘겼다”고 진술했고, 최 경위는 언론에 이 문건을 제공한 혐의로 검찰 수사를 받다가 그해 12월13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한 전 경위는 결국 5개월가량 복역했다. 다음은 한 전 경위와의 일문일답.

―처음 임의동행 후 풀려났을 때 무슨 일이 벌어졌나, 당시 상황을 설명해 달라.

“(2014년 12월) 3일 우리 집을 압수수색한 검찰에 임의동행돼 3시간 정도 조사받고 풀려났다. 8일 오후 3∼4시쯤 처음 근무했던 서울 용산구 남영동 대공분실 근처로 갔다. 초심으로 돌아가서 내가 진짜 잘못했는지 생각해보자 하고 정처없이 걸었다. 오후 3∼4시쯤 공중전화로 전화가 왔다. 청와대 (민정비서관실 직속) 특별감찰반(특감반) 소속의 경찰 파견직원 박모 행정관(경감)이었다. ‘좋은 일이냐, 나쁜 일이냐’고 물으니, (그는) ‘형님, 좋은 일도 나쁜 일도 둘 다 아니다, 꼭 만나야 한다’고 했다.”

―박 경감은 어떤 사람인가.

“경찰대 출신이고 똑똑해 서로 형동생처럼 지냈다. 연배는 낮고 계급은 높아도 자주 통화했다. (그를 안 지)1년 정도 됐다.”

―박 경감과 만나 어떤 이야기를 했나.

“오후 5시쯤 근처(남영동) 선배의 사무실에서 박 경감을 만나 한 시간 반 정도 이야기하고 커피숍으로 옮겨 더 이야기를 했다. 위에서 전화를 받았는데 나와 친하게 알고 지냈다는 것을 모른 척해 본인이 곤욕을 치렀다는 말을 꺼냈다. 그는 ‘형님 녹취록이 있다면서요, 거기서 다 밝혀졌으니 지금 가서 자백하세요, 그러면 자진 출두한 걸로 되고 불기소로 편의를 봐줄 수 있대요’라고 제안했다. 나는 ‘무슨 일인지 모르겠다, 뭘 자백하면 되느냐’고 하니까 ‘형님 복사한 거 맞잖아요, 그런 내용 다 있다고 해요’라고 말했다.”

―‘자백하면 불기소 편의’를 보장한 건 도대체 누구인가.

“내가 ‘(최)경락형도 보호되느냐’ 물으니 ‘두 분 다 얘기하면 할 수 있을 것’이라고 했다. ‘누가 나를 보호한다고 약속한 것인지, 어떤 위치인지 알아야 하지 않느냐’고 물으니 ‘민정비서관 쪽’이라고 했다. 박 경감의 상관(특감반장)이 그쪽(민정비서관)에서 전화받았다고 했다. 그래서 나는 우 당시 민정비서관으로 생각했다. 검찰총장이나 대통령이기를 바랐다. 그렇다고 실망한 건 아니지만 그 정도 해줄 수 있는 위치의 사람인가가 궁금했다. 높은 사람이길 바랐다. 민정비서관이라 하니 (그런 위치인지) 잘 몰랐다. 그래도 검찰은 청와대 산하이니까 가능하겠다고 생각했다.”

―당시 민정비서관은 우 전 민정수석이었는데.

“박 경감이 두려워할 정도라면…. 정말 울먹울먹하며 ‘저도 끝났어요. 지방으로 쫓겨날 거 같다’고 했다. 당시는 (우 전 민정수석이) 어느 정도 파워와 장악력이 있는지 몰랐지만, 지금 와서 보면 다 설명되더라. 조응천(전 공직기강비서관)이 날아가면서 우(전 민정수석)에 (파워가) 넘어간 거였다.”

―청와대의 제안을 받고 어떻게 했나.

“최 경위에게 전화해 ‘형님, 민정에서 왔는데 이렇게 해준대요’라고 전화했다. 그랬더니 최 경위는 ‘회유에 넘어가면 안 된다, 그쪽을 믿지 말라’고 했다. 변호사와도 통화했는데 내가 선택해야 할 문제라고 답했다. 나만 살자고 청와대 제안을 받아들일 수 없어 못하겠다고 거절했다.”

―정말 회유인가.

“분명 회유였다. 그들(검찰)도 (문건) 유출경로를 찾아야 했다. 내가 볼 때 검찰에서 당황한 것 같았다. 조응천, 박관천, 우리 넷(한, 최 경위)을 다 같은 세트로 봤는데 단절되니까. 근데 이걸 다 맞추려면 내가 스타트가 돼야 하는 거였다. (내가) 복사한 걸 인정해야 스타트가 되는 거였다. 내 자백이 필요했던 것이다.”

―회유 과정에서 이상한 정황은 없었는가.

“검찰과 청와대 간 교감은 내가 알 수 없는 영역이지만, (박 행정관이) 녹취록 이야기를 했다. 검찰에서 확보했다는 건데, 직전에 검찰이 압수한 증거물에 대해 말한다는 게 이상했다.”

―청와대의 제안을 거절하자 상대방이 어떤 반응을 보였나.

“울먹울먹하며 ‘저도 살려주세요’ 하더라. 말하자면 ‘저도 칙사 자격 같은 건데, 그냥 가면 불이익당할 수도 있어요’라고 하더라. 마음 아프더라. 자기 말로는 책임지고 온 것이라고 그러더라. 박 경감도 두려운 마음으로 온 것 같았다. 공중전화로 무조건 만나자고 할 때 두려워했다. 지금도 마찬가지일 거다. 하지만 내가 완강하게 거부하자 할 수 없다며 돌아갔다. 젊고 장래 유망한 직원이라 마음이 아팠다.”


―청와대 제안에 불응한 뒤 무슨 일이 있었는지.

“청와대 회유를 거절하고 집으로 갔다. 그러고 새벽에 교회를 가려고 집을 나서다 (검찰에 의해) 긴급체포됐다.”

―검찰이 청구한 영장이 2014년 12월12일 기각됐는데.

“당시 영장 판사는 엄상필 판사였다. 냉혹한 분이었다고 한다. 그는 ‘나는 한 가지만 걱정된다, 너무 큰 소용돌이에 휘말려 있어 나가서 극단적인 생각할까봐’라고 말했다. 그래서 나는 ‘전 끝까지 제 결백을 주장할 겁니다. 죽기 전까지 (결백을 주장)하고서 죽을 겁니다’라고 답했다.”(하지만 그는 2015년 10월 1심 재판에서 징역 1년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다.)

―검찰이 압수수색해 확인한 녹취록은 뭔가.

“정보원과 통화한 녹취록을 담아둔 이동식 저장장치(USB)였다. 그 안에는 최순실씨나 승마협회와 관련해 수집한 첩보도 있었다.”

―당시 최씨와 승마협회 비리를 조사하고 있었다는 건가.

“2013년 말에 경북지방경찰청 직원에게서 그해 승마선수권 대회에서 심판 판정과 관련한 소동이 있었다고 들었다. 그때 최씨의 딸 정유라씨 이야기가 나오고 승마협회에서 문제가 생길 것 같다는 첩보를 입수해 차근차근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다.”

―최씨나 승마협회 비리에 대해 검찰은 묻지 않았나.

“일절 물어보지 않았다. 그 사람들은 문건이나 USB 내용에는 관심이 없었다. 유출에 대해서만 질문했다.”

―최씨 관련 수집된 정보는 어느 정도였나.

“그때는 국정 농단에 관한 정도는 아니었고 박근혜 대통령이 정책을 펼치면 그게 경제나 국민에게 어떻게 반영되는지를 장관이 아니라 최씨를 통해 듣는다고 했다. 대통령이 ‘어떠냐’고 물으면 (최씨가) ‘잘 하셨어요, 이건 보완이 필요한 것 같다’는 식으로 조언과 피드백을 하는 관계라고 파악했다. 일종의 집사 역할을 한다고 알았다. 당시 정보로는 이 정도까지인지는 몰랐다. 다만 승마협회는 집중하고 있었다.”

―재판이 잘 풀리면 경찰에 복직할 것인가.

“(복직)하지 않을 것이다. 복직을 하지 않으려는 이유는 제가 너무 지쳐 복직하더라도 퇴직을 신청할 거다. 만약 (복직이) 허용된다면 복직하고 명퇴 신청을 하고 싶다. 명예롭게 나가고 싶어서다. 또 제가 이런 상태로 근무한다는 게 우리 경찰 조직에 도움은 될 것 같지 않아서다.”(그는 현재 대법원에 상고한 상태다)

―지금 진실을 밝히게 된 이유는.

“솔직히 이런 말을 하면서도 우 전 민정수석한테 박살날까봐 두렵다. 당시에도 너무 무서웠다. 그래서 병원에 입원까지 했다. 고인(최 전 경위)의 명예도 지켜드리고 싶고 이제는 말할 수 있겠다는 판단이 섰다. 당시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이제 국민이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요즘 어떻게 생활하는가.

“당시 법정구속이 되면서 전세 살던 집도 기자들이 수십명이 몰려오고, 집주인이 나가라고 해 아내가 멘붕에 빠지기도 했다. 공무원 신분에서 파면되고 다시 바닥부터 시작하자 해서 개인회생신청을 하기도 했다. 현재 보증금 6000만원에 월세 50만원짜리 다세대주택에서 산다. 지금은 지인들에게 일거리를 소개받아서 근근이 생활한다.”

특별취재팀=김용출·이천종·조병욱·박영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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