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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영애의 영화이야기] 옛날 옛적에 광화문 극장전

입력 : 2016-11-12 14:00:00 수정 : 2016-11-12 10:2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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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화문’이라고 불리는 공간은 요즘 주말마다 촛불을 든 시민들로 가득 차 있다. 그런데 그 공간에 영화 관객들이 몰렸던 시절도 있었다는 것을 혹시 아시는지? 1960년대 광화문사거리(세종대로사거리)에는 영화관이 세 곳이나 있었다. 오늘은 지금은 사라진 그 영화관들에 대해 얘기해볼까 한다.

1956년 8월 지금의 동화면세점(광화문빌딩) 자리에 국제문화관이라는 이름의 영화관이 세워졌는데, 1959년 1600여석의 좌석을 확보한 3층 높이의 개봉관 국제극장으로 재개관되었다. (당시 우리나라 영화관은 새로운 영화를 상영하는 개봉관과 이미 개봉된 영화를 상영하는 재개봉관으로 나뉘었다)

국제극장은 주로 한국영화를 상영하다가, 이후 외화도 함께 상영하는 영화관으로 운영되었는데, 일제강점기에 세워진 다른 개봉 영화관들에 비해 신설 영화관으로서 시설이 좋다는 평가를 받았다. 

대표적인 상영작으로 1961년 국도극장과 동시 개봉했던 ‘춘향전’(감독 홍성기, 1961), 1973년 단성사와 동시 개봉했다가 단독 장기상영에 돌입했던 ‘대부’(감독 프란시스 포드 코폴라, 1972), 1977년 허리우드극장과 동시 개봉했던 ‘타워링’(감독 존 길리먼, 아원 아렌, 1974) 등을 꼽을 수 있다.

1960~70년대 서울 시내 10여개의 개봉관 중 시설 좋은 영화관으로 통했던 국제극장은 1985년 4월 14일 광화문 도심 재개발 정책으로 폐관되어, 사람들의 기억 속에만 남았다.

현재 코리아나호텔(조선일보 사옥) 자리에도 영화관이 있었다. 1958년 조선일보사는 당시 사옥 바로 옆에 962석 규모의 개봉관 아카데미극장과 사옥 내에 재개봉관 시네마코리아라는 영화관을 개관했다.

아카데미극장은 초기에는 외화를 주로 상영했지만 1963년 이후 한국영화를 상영했다. 특히 ‘청춘영화’라 불리는 한국영화를 상영하는 영화관으로 명성을 떨쳤다. 신성일, 엄앵란 주연의 ‘맨발의 청춘’(감독 김기덕, 1964)로 대표되는 청춘영화의 주 관객층인 대학생들 사이에서는 아카데미극장에서 영화 한편 보고, 인근 덕수궁과 정동 길 쪽을 산책하는 것이 유명한 데이트코스였다고 한다. 

아카데미극장과 시네마코리아는 개관한지 10년 만인 1968년 광화문 도로 확장으로 철거되었다. 조선일보사는 새 사옥 겸 코리아나호텔을 신축해 1972년 12월 개관했지만, 영화관을 다시 개관하지는 않았다.

1960년대 광화문 주변을 담은 보도사진들 중에는 대규모 집회나 퍼레이드 등으로 운집한 사람들 뒤편으로 국제극장과 아카데미극장 간판이 보이기도 한다. 더 옛날 전차가 다니던 시절 광화문 주변 사진과 더불어 새삼 그 공간의 오랜 역사가 느껴진다. 

현재 광화문 세종대로 상에 영화관은 없고, 영화를 보기 위해 오는 사람도 없다. 그러나 여전히 많은 사람들이 다양한 이유로 모여들고 있다. 모여든 사람들이 마음껏 소통하고, 원하는 것을 얻기 바란다. 그것이 바로 영화관, 광장, 대로처럼 많은 사람들이 함께 하는 ‘공간’의 존재 이유가 아니겠는가. 

송영애 서일대학교 영화방송예술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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