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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안뜰] 〈19〉태실조성 500년, 조선왕조의 전통

입력 : 2016-11-04 21:11:17 수정 : 2016-11-04 21:11: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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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운 좌우한다고 믿었던 ‘태’… 명당에 묻어 안정·번영 기원 첨단의학이 지배하는 21세기에도 생명의 탄생은 여전히 경이롭다. 특히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출산의 과정은 신비로운 순간들의 연속이다. 세상 밖으로 나온 태아는 탯줄을 자르는 순간 온전한 생명체가 된다. 태아에서 신생아로 바뀌는 것도 탯줄을 자르는 순간이다. 그렇게 태반과 태아를 이어주던 생명의 끈인 탯줄은 분리되어 그 소임을 다한다. 탯줄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생명의 신비를 일깨우는 상징으로서 인류의 역사와 함께했다. 

태실의 주인공이 왕위에 오르면 고급스러운 석물로 단장했다.
◆태를 예우하다


태와 탯줄은 시대에 따라 다양한 의미로 해석되었다. 시간을 돌려 의학기술이 그다지 발달하지 못했던 조선시대로 가보자. 왕실에서는 신생아의 태를 매우 귀하게 여겼고, 극진하게 간수했다. 먼저 배꼽에서 분리한 태는 물로 백번 정도 씻은 뒤, 독한 술인 향온주(香醞酒)로 씻어냈다. 그런 다음 백자 태항아리에 담아 보관하였다. 태를 담은 백자 항아리는 그보다 조금 더 큰 항아리에 다시 자리를 잡았다. 이후 전국의 명당을 물색하여 태실 후보지가 정해지면, 태항아리를 옮겨 땅에 묻었다. 태를 묻은 곳을 ‘태실(胎室)’이라 불렀고, 태를 묻는 과정을 ‘안태(安胎)’라고 했다. 태를 편안하게 모신다는 뜻이다.

왕실에서는 태실이 나라의 운세와 관련이 있다고 믿었다. 태를 소홀히 다루면 국가에 불운(不運)이 미친다고 보았다. 태를 묻는 절차가 국가적인 행사로 엄격히 진행되었던 이유고, 시간이 지나면 차츰 고유의 태실문화로 발전해 갔다.

조상들이 애지중지했고, 예나 지금이나 생명의 신비를 지니고 있는 태를 지금의 우리는 어떻게 다루고 있는가. 얼마 전까지만 해도 신생아의 태는 병원에서 특수폐기물로 처리하였다. 과거에 ‘국운’을 상징하던 탯줄이 현대에 와서 특별관리 대상인 ‘폐기물’이 된 것이다. ‘국운’과 ‘폐기물’은 과거와 현재에 드리워진 극단적인 문화의 양 단면이다. 그러다가 태를 ‘제대혈’(臍帶血·cord blood)이라 하여 다시 귀하게 대접한다. 제대혈에는 혈액을 만들어 내는 조혈모세포가 들어 있어 각종 혈액질환의 치료에 사용된다고 한다. 태는 ‘국운’을 좌우하다가 ‘폐기물’로 전락된 뒤 다시 생명을 되살리는 제대혈로 거듭난 셈이다.

태아로부터 분리된 태를 땅에 묻는 것은 소임을 다한 탯줄에 대한 예우일 것이다. 왕과 신료들은 태를 묻기 위한 좋은 날짜와 시간, 그리고 명당을 고르는 데 큰 관심을 가졌다. 왕실에서 태어난 수많은 왕자녀들의 태는 전국의 명당이라 할 만한 산봉우리를 골라서 묻었다. 그렇게 조성한 태실이 수백 곳이 넘고, 지금도 전국 각지에 수많은 태실의 유적이 산재해 있다. 태실의 주인공이 왕위에 오르면 특별한 절차가 기다리고 있었다. 국왕의 태실은 품위와 위엄을 갖추어야 했기에 고급스러운 석물로 단장하였다. 원형의 탑처럼 보이는 조형물을 가운데 세우고, 그 주변은 돌난간을 만들어 돌린 것이다. 이를 ‘가봉(加封)’이라 한다. ‘(석물을)더하여 모신다’는 뜻이다. 가봉을 한 국왕의 태실은 지금도 잘 보존된 곳이 많다. 가봉의 절차 또한 국가에서 관리하는 행사로 치러졌다. 가봉을 마치고 난 뒤에는 그 과정을 의궤(儀軌)를 비롯한 기록물로 만들어 왕에게 보고했다. 이때 왕과 왕실에 보고용으로 올린 것 중 하나가 태봉도(胎封圖)라는 그림이다. 

순조의 태실이 있는 충북 속리산의 모습을 담은 ‘순조태봉도’. 그림의 가운데 부분에 그릇을 엎어놓은 듯 볼록 솟아오른 언덕이 보이고, 그 위에 설치한 태실의 석물이 눈에 띈다. 조선왕실의 태실문화는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고, 왕실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는 것이었다.
◆태실을 그려서 임금께 올리다


태봉도는 국왕의 태실을 단장하는 공사를 마친 뒤 일종의 보고서로 왕에게 올린 것이다. 그림은 태실 주변의 산세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그렸다. 그림을 보면 태실의 위치가 얼마나 명당의 조건을 갖추고 있는지를 판단할 수 있다. 태실의 현장에 내려 갈 수 없었던 왕은 이 그림을 통해 공사를 마친 태실을 확인했다. 장서각에 전하는 ‘순조태봉도’를 살펴보자. 순조의 태실은 충청북도 속리산 안에 자리 잡고 있다. 이곳은 순조가 태어난 뒤 태를 묻었던 곳이다. 그림의 가운데 부분에 그릇을 엎어놓은 듯 볼록 솟아오른 언덕이 보이고 그 위에 설치한 태실의 석물이 눈에 띈다. 태실이 있는 산봉우리는 주변으로 연결되는 능선이 없어야 하고, 볼록한 지형을 이룰 때 명당이 될 수 있었다.

그림의 아래쪽에는 태실을 관리하던 수호사찰인 법주사(法住寺)가 웅장하게 자리 잡고 있다. 그림 왼편 아래의 금강문을 비롯하여 당간지주(幢竿支柱), 5층 탑 형태의 팔상전(八相殿) 등 법주사의 전체 가람 배치가 한눈에 들어온다. 지금으로부터 약 210년 전 법주사의 모습이다. 순조태봉도에는 속리산 안의 주요 암자를 비롯한 불교유적들까지 그려 넣었다.

태를 담은 백자 항아리.
◆태실의 병폐를 개선하다


태실을 만드는 과정에 많은 문제점들이 있었다. 이를 적극 개선하고자 했던 임금은 영조와 정조였다. 영조는 왕실 자녀들이 태어날 때마다 전국 명산을 골라 태실을 만드는 것을 병폐로 여겼다. 그 과정에 인력과 과도한 물품들이 들어가는 것 자체가 백성들에게 피해가 된다고 여겼다. 이에 대한 조치를 두 차례에 걸쳐 내렸다. 첫째는 1758년(영조 34)의 조치인데, 왕실자녀들의 태는 하나의 산봉우리를 정하여 거기에 순서대로 묻으라는 것이었다. 번잡한 과정을 줄이고 관리하기도 효율적인 방안이라고 여겼다.

두 번째 조치는 1765년(영조 41)에 내렸다. 이번에는 왕실 왕자녀의 태를 궁궐 안의 정결한 곳에 묻도록 했다. 예컨대 창덕궁의 경우 궁궐의 후원에 태실을 만들도록 한 것이다. 이처럼 태를 묻는 장소를 궁궐 안으로 정한 것은 획기적인 일이었다. 다만 세자와 원손의 태실은 궁궐 밖의 명당을 골라 설치하게 하였다. 영조의 결단은 단호하게 실행되었고, 이후에도 지켜야 할 선례가 되었다.

정조도 태실을 조성할 때 백성들의 피해를 경계하였다. 특히 정조는 동원되는 인원과 물품도 대폭 줄였고, 어사(御使)를 보내 수시로 실정을 살폈다. 백성들로부터 부당하게 물건을 거두거나 대가를 주지 않고 일을 시키지 못하게 했다. 특히 주목되는 것은 태실을 만들 때 ‘돌’을 쓰지 못하게 한 점이다. 1790년(정조 14) 7월, 순조의 태실을 마련할 때 정조는 “돌이라는 이름을 지닌 물건은 일절 쓰지 말라”고 했다. 태실 공역에서 가장 힘든 일이 돌을 다루는 작업이다. 정조는 석물을 사용하지 못하게 하여 민폐를 없애고자 했고, 자신의 의지를 철저히 추진하고자 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 석재가 없이는 태실을 꾸밀 수 없었다. 결국 절충안으로 단단한 석재를 연석(軟石)이라고 하는 무른 돌로 대체했다.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태실문화,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다


1929년 조선총독부는 전국에 산재한 왕실 자녀들의 태실을 지금의 파주 서삼릉(西三陵)으로 옮기는 일을 추진했다. 태를 담은 항아리와 태실의 주인공을 기록한 지석(誌石)을 옮겨 묻는 일이었다. 겉으로는 전국에 흩어져 있던 태실을 보호하기 위한 통합관리의 필요성을 내세웠지만, 사실은 왕조의 정기를 끊기 위한 의도가 깔려 있었다. 심지어 궁궐에 있던 태실까지도 예외 없이 찾아내어 서삼릉으로 파서 옮겼다. 1929년 서삼릉에 묻었던 태항아리들은 70년 만인 1999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발굴조사를 실시한 뒤 국립고궁박물관으로 옮겨 안전하게 관리하고 있다.

조선시대의 왕실문화는 화려함만을 추구하지 않았다. 왕실에서는 출산의 부산물인 태를 국운을 좌우하는 상징으로, 또한 생명 존중의 정신이 투영된 의례로 정착시키며 조선왕실의 고유한 태실문화를 만들어갔다. 조선의 왕실에서 태를 그렇게 소중히 다루었던 이유는 새로운 생명의 탄생을 축복하고, 이를 통해 왕실의 안정과 번영을 기원하는 데 있었다.

윤진영 한국학중앙연구원 책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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