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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안뜰] 〈18〉 영조, 실력으로 장원을 선발하다

입력 : 2016-10-28 20:48:31 수정 : 2016-10-28 20:48: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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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력·공정성이 유일한 잣대… 인재선발 병폐 뿌리 뽑아 ◆예나 지금이나 최고의 교육열

나는 못 배웠어도 자식만큼은 잘 가르치겠다는 게 우리 부모 세대의 정서였다. ‘없는 집’ 자식이 출세할 길은 공부가 유일했다. 한국이 산업화 시기에 자원과 자본의 결핍을 극복한 힘은 이러한 교육열이었다. 교육열은 조선시대에도 매한가지였다. 학업에 소홀한 자식을 호되게 꾸짖거나 공부 일정을 살뜰히 살피는 장면이 옛글 속에 심심찮게 등장한다. 벼슬을 향한 첫 번째 관문이 과거(科擧)이고 가문의 부침이 과거 합격자의 지속적 배출에 달려 있었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과방(科榜·합격자 명단)이 도착하면 죽은 부모의 관이 석 자나 들썩인다”는 속담까지 나왔을까.

제왕학의 교과서로 칭해지는 ‘정관정요’에서 “정치의 요체는 오직 인재를 얻는 데 달려 있다”고 했다. 수많은 고전에서 위정(爲政)의 방편을 논할 때 인재 선발을 외친다. 성군이란 수식어가 늘 따라붙는 세종도 그랬고, 18세기 문예군주 영조와 정조도 그랬다. 연산군조차 팔도관찰사에게 명하여 숨은 인재를 발굴하게 했다. 이에 고시관 임명부터 합격자 발표에 이르기까지 공정성 확보에 만전을 기했고 고시관도 감춰진 인재를 놓칠세라 답안지를 면밀히 검토했다.

1747년(영조 23) 식년 사마시의 합격자 명부인 ‘숭정재정묘 식년사마방목’. 영조의 결단으로 생원시 장원에 오른 허증(許增)의 인적사항이 적혀 있다.
◆최고의 영광, 과거 급제


과거에는 문과·무과·잡과 및 생원·진사시가 있었다. 그중 문과와 무과를 대과라 했고, 생원·진사시를 소과, 혹은 사마시라 했다. 소과에 한정하여 살펴보면, 생원시는 유가 경전에 관한 논술을 출제했고 진사시는 글짓기 능력을 평가했다. 1차 시험인 초시는 도(道) 단위로 관할 고을에서 돌아가며 열렸는데, 생원 초시와 진사 초시 각기 700명을 뽑았다. 한양에서 열린 복시, 즉 2차 시험에서는 생원과 진사 100명씩을 최종 선발했다. 합격자는 ‘사마안’이나 ‘청금안’에 이름을 올리며 가문의 품격을 높이고 학자로서의 위상을 다졌다.

2차 시험을 치른 유생은 대궐 문이나 동대문에 게시된 합격자 명단을 통해 합격 여부를 확인했다. 합격자는 대궐에서 열리는 방방(放榜·조선시대 과거 급제자 발표와 의식)에 참석하여 합격증을 받았다. 방방 이튿날 다시 입궐하여 사은숙배를 올리고 그 다음날 문묘에서 공자 신위에 참배했다. ‘삼일유가’란 방방일부터 알성일까지 사흘간 한양에서 이뤄진 합격자 퍼레이드다. 합격증을 앞세우고 풍악 속에서 가두 행진하는 유가는 합격자와 부모에게 가장 감격스러운 순간이다. 합격 동기생 200명은 서로를 동년(同年)이라 부르며 평생에 걸쳐 방회(榜會)라는 동기생 모임을 가졌다.

생원과 진사의 장원은 동년에게 각별한 대접을 받았다. 합격 사실을 확인하면 동년 전체가 장원을 찾아가 예를 표했고, 심지어 길에서 장원을 보면 말에서 내려 절을 하고 나란히 걷거나 앉지도 못했다.

장원을 포함한 1등 5명에게는 방중색장(榜中色掌) 한 명씩을 뽑을 수 있는 권한이 주어졌다. 따라서 방회가 열리면 총 10명의 방중색장이 선발되었는데 대개 명가의 자제가 뽑히기 마련이었다. 방중색장은 동년의 인적 네트워크를 관리하는 직임으로서 생원시와 진사시에 동시 합격한 ‘양시’(兩試), 형제가 함께 합격한 ‘연벽’(聯璧)보다 영예롭게 여겨졌고, 그 명단이 합격자 명부에 별도로 기재되었다.

서계 박세당이 1660년(현종 1) 문과에 장원급제하고 받은 홍패.
◆‘금수저’ 독식 풍조… 영조, “완전히 개혁하겠다”


1705년(숙종 31) 3월 6일, 사마시 합격자들이 집단으로 방방을 거부하는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당시 장세량이라는 서얼 출신이 신분적 한계를 극복하고 진사 1등, 4위로 합격했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동기들은 서얼과 나란히 설 수 없다는 이유로 입장을 거부하며 장세량을 쫓아내려 했다. 장세량은 끝까지 자리를 지켰고 이러한 실랑이는 반나절 내내 이어졌다. 단호한 그들의 주장에 결국 장세량에게 벌을 내리고 그를 궐 밖으로 내쫓은 후에서야 겨우 방방이 진행될 수 있었다. 도대체 장세량이 저지른 잘못은 무엇일까. 출생이 잘못인가.

지천 최명길의 행적을 적은 글에 “우리나라 풍속은 생원과 진사 장원을 극선하므로 으레 합격자 발표일에 피봉을 뜯어보니, 문벌이 좋고 명망이 있는 선비가 아니면 장원이 될 수 없다”고 했다. ‘피봉’이란 응시자 인적사항이 적힌 답안지 우측 부분을 둘둘 말아서 풀로 붙인 것이다. 공정성 확보가 그 목적이었다. 그럼에도 최고의 ‘금수저’를 가리기 위해 사전에 전체 합격자 답안지의 피봉을 일일이 확인했다. 온갖 부정이 끼어들 소지가 다분했다. 실력이 아닌, 지위와 명망이 장원의 요건이 되는 점은 물론이고 피봉을 엿보는 행위 자체가 부정행위다.

문벌 중시와 피봉 개탁의 풍조는 영조 연간에도 여전했다. 1747년(영조 23) 2월, 식년 사마시의 합격 순위를 매길 때 이러한 정황을 처음 알게 된 영조는 경악을 금치 못하며 강한 개혁의 의지를 피력했다.

“문과는 생진시보다 중요하나 등급의 고하로 성적을 매길 뿐 장원을 따로 뽑는다는 말을 들어본 적이 없다. 유독 생진시에 이처럼 잘못된 규례가 있거니와 심지어 높은 성적을 버리고 200장의 피봉을 다 뜯어본 뒤 반드시 경화벌열 출신을 가려 장원으로 뽑으니 불공정함이 막심하다. 국가의 시험은 사체가 엄중하거늘 어찌 합격자 발표 전에 피봉을 뜯어본단 말인가! 또한 생원 3위도 1등에 속하는데 이것은 반드시 시골의 힘없는 인물로 가려 뽑으니 도대체 무슨 이치인가! 내가 오늘부터 이러한 병폐를 완전히 개혁하겠다. 이에 생원 장원과 생원 3위를 이미 바꾸었으니 시관들은 내 뜻을 알아야 할 것이다.”

‘평생도’ 가운데 ‘삼일유가’. 대과 급제자 유가 장면을 그렸다. 소과와 대과에 응시해 한 번에 합격하는 이상적인 장면을 포착함으로써 자손의 출세를 염원한 것이다.
◆유일한 잣대는 실력과 공정성


오랜 전통이라는 미명하에 피봉을 엿보아 문벌로 장원을 뽑는 관행을 영조는 납득할 수 없었다. 이에 생진시도 실력으로 성적을 매기게 했고, 피봉을 미리 뜯어볼 경우는 과장(科場)에 관한 형률로 처벌하겠다고 선포함으로써 개혁을 단행했다. 그리고 출신이 미천한 자를 생원 3위, 진사 6위에 배정하는 ‘생삼진륙’의 악습에 철퇴를 가했다.

영조는 “생삼진륙은 반드시 촌사람이나 중인, 서얼로 채운다. 서울 사람이 천하게 여기는 것을 촌사람에게 주니 너무 가련하다”고 말하며, 탁월한 답안에도 불구하고 개성 출신이라는 이유로 ‘생삼’에 앉혀진 허증이라는 사람을 일약 장원으로 끌어올렸다. 고시관들은 ‘국조 300년의 아름다운 고사’ 운운하며 끝까지 반대했으나 영조는 모든 고시관을 파직시키며 밀어붙였다. 일부 계층의 집단 이기심이 인재 선발과 평가에 개입될 수 있겠는가!

영조는 단호했다. 실력과 공정성 이외의 다른 잣대는 결코 용납하지 않았다. 마침내 실력보다 문벌을 우위에 두던 소과 장원 선발의 고질병과 사회적 약자를 생삼진륙에 앉히던 오랜 악습이 사라졌다. 장원이 이끌던 방회도 자취를 감췄고 방중색장과 여러 방임도 더 이상 뽑지 않았다. 

김덕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돈도 실력’(?)… 영조의 일갈을 떠올리다


입시 전형, 인사 전형 등의 표현에서 알 수 있듯이 전형은 사람을 가려 뽑는 것이다. ‘전형’(銓衡)이란 한자어는 본래 저울을 가리킨다. 적임자 선발을 저울질에 비유한 것이다. 무게를 달 때 눈금과 저울추가 정확치 않으면 저울은 무용지물이다. 적어도 탕평군주 영조에게는 공정성이 눈금이었고 실력이 저울추였다. 영조는 강력한 왕권을 기저로 다양한 개혁을 추진했다. 그 가운데 가난한 백성, 시골 유생, 서얼, 중인, 노비, 죄인 등 사회적 약자를 배려하는 정책들이 유난히 눈에 띈다. 기득권의 암묵적 담합에 기인한 만성적 병폐를 좌시하지 않았고 음지에서 신음하는 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을 보냈다.

입시난과 취업난이 유례없이 심각한 시대다. 사회적 양극화는 도무지 해소될 기미가 없다. 그 와중에 각종 입시 비리와 특혜 채용 의혹이 허구한 날 도마에 오른다. 돈도 실력이라는 어느 ‘금수저’의 말 한마디가 일파만파 퍼지는 것은 대중의 공분과 좌절의 반영이 아닐까. 요즘 들어 애민군주 영조의 일갈이 부쩍 가슴에 와 닿는다.

김덕수 한국학중앙연구원 선임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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