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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쏠게" 사라지고… 'n분의 1' 문화 빠르게 확산

입력 : 2016-10-27 19:16:11 수정 : 2016-10-27 20:5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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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탁금지법 시행 한 달… 달라진 사회 풍속도
모 대형 회계법인에 다니는 공인회계사 김모(29)씨는 며칠 전 대학 동문회에서 청탁금지법(김영란법)을 실감했다. 모임 참석자 가운데 공무원, 기자 등 법 적용 대상자들이 1, 2차에서 너나 할 것 없이 각자 먹은 만큼 돈을 냈기 때문. 김씨는 “예전 같으면 학번이 높은 선배 한 명이 다 계산했을 것”이라면서 “법 대상자들은 영수증도 꼬박 챙기더라”고 말했다.

27일로 시행 한 달을 맞은 청탁금지법이 이처럼 한턱내기 위주의 회식 풍경을 ‘각자내기’(더치페이) 방식으로 바꿔 놓고 있다. 일각에서는 사람들이 몸을 사리는 탓에 각종 모임 자체가 줄어들어 안 그래도 침체된 내수가 더 위축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법 적용 대상자와 요식업계 종사자들이 이 같은 변화를 누구보다 체감하는 분위기다.

서울 종로구에서 고깃집을 운영하는 이모(56·여)씨는 “청탁금지법이 시행되고 나서 금액이 많든 적든 손님들이 카드로 나눠서 계산하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영수증을 달라는 손님도 부쩍 늘어났다”고 말했다.

한 경찰관은 “최근 업무 관계자들과의 회식 자리에서 한 사람이 ‘청탁금지법 어기면 퇴사하겠다는 서약서를 썼다’며 각자 낼 것을 고수해 결국 그렇게 했다”면서 “밥값을 따로 내는 게 아직은 익숙하지 않아 실랑이가 오가기도 했다”고 멋쩍게 웃었다.

이 같은 각자내기 추세는 통계로도 확인된다.

농협은행에 따르면 각자내기 기능이 있는 모바일 플랫폼 ‘올원뱅크’가 출시된 지난 8월10일∼9월27일 하루평균 4800명 수준이던 가입자가 청탁금지법이 시행된 9월28일∼지난 26일 9700명 수준으로 두 배 넘게 급증했다.

서울 여의도에서는 청탁금지법에 영향을 받은 생활 패턴이 어느 정도 자리 잡은 모습이다. 하지만 시범 사례가 되면 안 된다는 불안감은 여전하다.

지난 17일 국회 의원회관에 ‘홍삼 택배’ 주의보가 발령된 게 대표적이다. 한 방송사가 청탁금지법 취재 미끼로 홍삼 제품을 무작위로 발송한다는 소문이 퍼진 것. 더불어민주당 보좌진 협의회(민보협)가 휴대전화 문자메시지를 통해 “반송, 거절 등의 의사표현을 명확히 해 달라”고 공지하는 소동이 일기도 했다.

대중식당으로 바꾼 고급 한정식집 청탁금지법(김영란법) 시행 한 달째인 27일 고급 한정식집에서 가격을 낮춘 대중식당으로 변모한 서울 경희궁길의 한 업소 관계자가 가격표가 적힌 현수막을 내걸고 있다.
남정탁 기자
전문가들은 청탁금지법 영향으로 자기 것을 각자 부담해야 한다는 인식이 퍼지고 있다고 지적한다.

서강대 전상진 교수(사회학)는 “그간 한국 사회에서는 상급자나 연장자, 갑을관계상 을에 있는 사람이 돈을 내야 친밀한 관계가 형성된다는 생각이 통용돼 왔고 그런 인간관계가 부정부패로 이어지기도 했다”면서 “‘최순실게이트’가 전형적인 예”라고 꼬집었다. 이어 “이제 인간관계나 정이란 명목으로 공적 영역에서 관계를 맺는 것이 결코 사적 영역이 아니란 식으로 생각이 바뀌고 있다”고 분석했다.

사람들이 모임 자체를 꺼리면서 내수 위축 가능성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다. 한 금융 연구기관 원장 출신인 A교수는 “나를 비롯한 교수 등 청탁금지법 대상자가 있다는 이유로 20년 이상 지속된 이 기관의 전·현직 종사자들 100여명의 합동 송년회가 올해 사실상 폐지됐다고 최근 통보받았다”면서 “매년 11∼12월은 동창회, 송년회 등이 몰려 있어 사람들의 지갑이 열리는 시기인데 올해는 청탁금지법 탓에 예년에 비해 지갑이 덜 열리거나 닫힐 가능성이 있다”고 내다봤다.

박진영·이동수·이창수 기자 jyp@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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