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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설] 납득 못할 국기문란, 대통령 사과로 끝날 일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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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25 23:45:16 수정 : 2016-10-25 23:52: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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석연치 않은 해명 국민 의혹만 키워
진상 규명하고 국정 쇄신 전면 단행해야
박근혜 대통령이 어제 ‘비선 실세’로 지목된 최순실씨에게 대통령 연설문과 발언자료 등 청와대 문서를 유출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그동안 온갖 추문과 비리 의혹으로 나라를 어지럽힌 민간인 신분의 최씨가 박 대통령의 통치 행위에 깊숙이 개입한 국정농단 정황이 사실로 확인된 것이다. 이로써 박근혜정부는 출범 이후 최대 위기에 직면했다.

박 대통령은 어제 기자회견에서 “최씨는 과거 제가 어려움을 겪을 때 도와준 인연으로 지난 대선 때 주로 연설·홍보 분야에서 저의 선거운동이 국민에게 어떻게 전달됐는지에 대해 개인적 의견이나 소감을 전달해 주는 역할을 했다”고 했다. “일부 연설문이나 홍보물도 같은 맥락에서 표현 등에서 도움 받은 적 있다”고 최씨에게 청와대 자료가 전달된 배경도 설명했다. 그러면서 “좀 더 꼼꼼하게 챙겨보고자 하는 순수한 마음으로 한 일인데 이유 여하를 막론하고 국민 여러분께 심려 끼치고 놀라고 마음 아프게 해 드린 점에 대해 송구스럽게 생각한다”고 밝혔다. 최순실의 ‘최’자조차 언급하지 않았던 예전과 달리 ‘책임’을 인정한 것이다.

그러나 대통령의 해명은 진심을 담은 사과로 보기 어렵고 내용에도 많은 문제가 있다. 일방적인 변명일 뿐이고 최씨 관련 의혹만 더 키웠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사상 초유의 국기 문란 사태에 참담한 자괴감을 느끼고 있는 국민의 심정을 조금이라도 헤아린다면 고작 1분 40초 476글자의 사과문이 아니라 제대로 사죄하고 경위를 소상히 밝혔어야 한다. 최씨를 둘러싼 각종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겠다는 의지도 표명했어야 한다.

박 대통령은 “취임 후에도 일정 기간 일부 자료에 대해 의견을 들은 적도 있으나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된 이후에는 그만뒀다”고 했다. JTBC 보도에 따르면 최씨 사무실 컴퓨터에서 나온 200여개의 파일은 2014년 상반기까지의 것이었다고 한다. 박 대통령이 취임한 지 1년이 넘을 때까지 청와대 보좌체계가 완비되지 않았다는 설명인데 설득력이 없다.

실정법 위반 문제도 있다. ‘최순실 파일’에는 국가안보와 정부 인사, 각종 정책과 관련한 자료가 망라돼 있다. 박 대통령이 당선인 신분이던 2012년 12월28일 당시 이명박 대통령과 40분 동안 가진 독대의 사전 시나리오도 파일에 담겨 외교안보, 경제정책 등을 놓고 두 사람이 실제 나눈 국가기밀 내용도 최씨에게 전달됐을 가능성이 점쳐진다. 이 같은 청와대 자료 유출은 심각한 국기문란 행위다. 직접 유출했거나 유출을 지시한 사람 모두 ‘대통령기록물관리에 관한 법률’에 따라 처벌받을 수 있다. 공무상 비밀 누설죄 등도 적용될 수 있다. 문건 유출자는 “청와대의 대통령 최측근 참모였다”고 JTBC는 보도했으나 유출을 지시한 박 대통령의 정치적, 법률적 책임은 남아있다.

앞서 최씨가 박 대통령이 연설하기 전 파일 형태로 연설문을 입수했고 국무회의와 청와대 인사 등이 담긴 민감한 내부문서까지 사전에 받았다는 JTBC의 보도 내용은 충격적이다. 연설문 44개가 파일 형태로 최씨 컴퓨터에 입력된 시점은 모두 대통령 연설 이전이다. 2014년 3월28일 ‘통일 대박론’을 밝힌 박 대통령의 ‘드레스덴 연설문’도 최씨는 하루 전에 원고를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최씨가 미리 받아 본 원고 곳곳에는 붉은 글씨가 있었고 박 대통령은 실제로 이 부분은 원본 연설문과 다르게 읽기도 했다고 한다. 일례로 최씨가 받은 연설문에 없던 박정희 대통령 재임 시 고속도로 건설과 관련된 에피소드가 실제 연설문에 추가됐다. 반면 북핵 관련 내용은 빠졌다. 최씨가 대통령 연설 원고를 고쳤다고 볼 수 있는 부분이다. 박 대통령은 2013년 8월 5일 허태열 비서실장 등 당시 비서진 일부를 전격 교체했는데, 이미 8월4일 오후 6시27분 최씨에게 전달된 ‘34회 국무회의 대통령 모두발언’ 제목의 파일엔 이런 내용이 담겨 있었다.

TV조선은 어제 김종 문화체육관광부 2차관이 2014년 최씨를 몰래 수시로 만났고 자신의 측근들의 이력서를 보내 요직에 앉히려 했다고 보도했다. 김 차관은 늦은 밤 수시로 최씨를 만나 ‘회장님’이라 부르며 현안과 인사 문제를 보고했고 실제로도 반영한 것으로 보인다고도 했다. 이성한 전 미르재단 사무총장은 최씨가 거의 매일 청와대로부터 ‘대통령 보고자료’를 건네받아 검토했다면서 사실 최씨가 대통령한테 ‘이렇게 하라 저렇게 하라’고 시키는 구조라고 주장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이원종 청와대 비서실장은 지난 21일 국회 국정감사에서 “최순실씨가 제일 좋아하는 일이 대통령 연설문 고치는 일”이라는 보도에 대해 “정상적인 사람이라면 믿을 사람이 있겠느냐. 기사 처음 봤을 때 실소를 금치 못했다. 성립 자체가 안 되는 이야기다.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얘기가 어떻게 밖으로 회자되는지 개탄스럽다”라고 했다. 하지만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일이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최소한 2년 가까이 벌어지고 있었다.

세계일보가 2014년 청와대 문건 내용을 인용해 정윤회씨 ‘국정농단’ 의혹을 제기했을 때 박 대통령은 “찌라시에나 나오는 이야기들”이라고 폄훼하고 비선실세의 전횡 가능성을 일축했다. 그러나 봇물 터지듯 쏟아지고 있는 최씨 관련 의혹을 보면 사실무근이 아니었음을 보여준다. 박 대통령이 진작에 언론 경고를 귀담아들어 등잔 밑을 살폈더라면 작금의 국기문란 사태는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시중에서는 대통령 탄핵 요구와 하야 여론이 거세다. 야당은 내각 총사퇴와 청와대 비서진 전면 교체를 요구했다. 국민 신뢰를 잃었고 정권의 도덕성은 땅에 떨어졌다. 대통령 지지율이 곤두박질치면서 레임덕 현상이 가속화할 것으로 보인다. 박 대통령은 비장한 각오로 위기 극복에 힘을 쏟아야 한다. 최씨 국정 농단 의혹을 철저히 규명하고 책임자는 엄벌해야 한다. 내각·청와대 비서진 개편 등을 포함한 전면적인 국정 쇄신도 단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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