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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주의 일상 톡톡] "우리아이 피해 볼까봐 거절 못했어요"

입력 : 2016-10-26 05:00:00 수정 : 2016-10-25 18:17: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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맞춤형 보육제도를 시행한지 100일도 더 지났지만, 아직 제대로 뿌리를 내리지 못해 보육현장에서의 혼란이 좀처럼 수그러들지 않고 있습니다. 또 각종 편법이 난무해 학부모들은 '도대체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는 비난을 쏟아내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학부모들은 이번 보육제도로 인해 어린이집의 ‘눈치 아닌 눈치’를 더 보게 됐다고 하소연하고 있는데요. 맞벌이 부모가 눈치를 보지 않고 어린이집을 마음 편하게 이용하게끔 한다는 기존 취지와 달리 워킹맘들의 고충도 여전합니다. 어린이집 역시 일손이 모자라는 등 난감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이처럼 학부모와 어린이집 모두 불만의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맞춤형 보육제도의 부작용을 줄일 수 있는 보완 대책이 시급하다고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습니다.

맞춤형 보육이 시작된 지 석 달도 더 지났지만, 아직도 보육 현장에서는 제도가 자리 잡지 못해 불편을 호소하는 목소리가 끊이질 않고 있다.

맞춤형 보육제도는 0~2세반(만 48개월 이하) 영아의 보육 체계를 하루 12시간까지 이용할 수 있는 '종일반'과 하루 최대 6시간에 필요할 경우 월 15시간 긴급보육바우처 추가 이용이 가능한 '맞춤반'으로 이원화하는 것이다.

정부는 필요한 대상자에게 적정한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함이라고 강조하고 있지만, 시행 직전까지 구체적인 내용이 확정되지 않아 발생한 혼란스러운 분위기는 아직도 가라앉지 않고 있다.

서울 관악구에 사는 워킹맘 김모(37)씨는 "맞벌이를 한다는 내용의 증빙서류를 제출하라고 해서 주민센터를 세 번이나 방문했다"며 "남편은 일용직이고 나는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어 서류 준비도 쉽지 않았는데, 나보다 더 열악한 곳에서 일하는 엄마들은 자료 발급도 문제지만 이걸 제출하러 갈 시간도 없을 것 같다"고 토로했다.

◆맞춤형 보육 시행, 복직하려다가 마음 접은 사연

지난 3월 입학해 이제 겨우 어린이집 생활에 적응한 어린아이들은 석 달 만에 바뀐 등·하원 일정에 다시 적응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이다.

두 아이를 둔 엄마 박모(34)씨는 몇 년 전 아이를 12시간 맡아주는 어린이집을 찾지 못해 급여를 절반만 받는 대신 오후 3시 퇴근이 가능한 부서로 옮긴 경험이 있다. 둘째를 낳고 육아 휴직 중인 박씨는 처음 맞춤형 보육이 시행된다는 이야기를 듣고 복직을 하면 원래 일하던 부서로 돌아갈까 생각했다. 하지만 최근 마음을 접었다. 정책이 바뀌었지만 여전히 말뿐인 종일반이었기 때문이다.

그는 "큰 아이는 7살이라 여전히 종일반이긴 해도 오후 6시쯤 어린이집에 아이를 데리러 가면 불 꺼진 어린이집에 당직 선생님과 저희 아이만 있다"고 말했다.

종일반에 아이를 맡기는 학부모들이 눈치 보지 않고 어린이집을 이용할 수 있다는 정부의 설명과 달리 시설과 인력이 열악한 일부 보육기관은 예전과 차이가 없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어린이집 "우리도 죽을 맛이에요"

맞춤형 보육 시행 후 고충을 토로하는 건 학부모뿐만이 아니다. 어린이집도 나름의 고충을 하소연하고 있다.

인천에서 어린이집을 운영하고 있는 원장은 이모(50·여)씨는 "바우처(이용권) 사용을 전산에 입력할 때 병원 방문, 가사 등 사유를 넣어야 하는데 일일이 부모들에게 물어볼 수 없어 그냥 1번으로 모조리 입력한다"고 털어놨다.

그러면서 "바우처를 다 사용하지 않으면 수지가 맞지 않는다"며 "부모님들에게 잘 얘기해 바우처를 매일 쓰는 형식으로 하고, 이를 다 쓴 뒤 급한 일로 긴급 보육이 필요하면 바우처 없이 아이를 맡아주기로 했다"고 전했다.

더 큰 문제는 이처럼 제대로 자리 잡지 못한 맞춤형 보육의 문제점은 학부모와 어린이집 원장과 교사에게 일시적인 혼란을 초래하는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이다.

자녀가 어느 반에 편성될지 몰라 발을 동동 구르던 일부 학부모들은 아이를 계속 종일반에 보내기 위해 각종 편법을 동원하거나, 질 낮은 일자리를 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전업주부 오모(35)씨는 5살, 22개월 자녀를 두고 있어 당연히 둘 다 종일반에 보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만 시행 한 달 반 전 둘째 아이는 종일반에 보낼 수 없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게 됐다.

오씨는 "내년부터 일하려고 생각은 하고 있었지만, 둘째가 맞춤반에 적응하기 힘들 것 같아 부랴부랴 일자리를 구했다"고 밝혔다. 그는 "충분한 시간을 들여 구직활동에 나섰더라면 좀 더 나은 일자리를 구할 수 있었을 텐데, 당장 일할 수 있는 곳을 찾다 보니 선택지는 아르바이트뿐이었다"며 "그래도 지금 일하는 곳에서 발급해 준 재직증명서와 2주 치 아르바이트 비용이 들어온 통장 사본을 주민센터에 제출해 맞벌이 부부라는 것을 증명받았다"고 말했다.

◆우리아이 어느 반에 편성될지 몰라 '전전긍긍'

다급한 제도 시행에 쫓겨 질이 낮은 일자리로 내몰리거나, 다급하게 구직활동을 하는 사례는 오씨뿐만이 아니다. 더불어민주당 문미옥 의원이 최근 여성가족부로부터 받은 자료를 보면 맞춤형 보육 시행 한 달 전인 6월, 여가부의 경력단절여성 재취업 사업인 '새일센터' 구직활동 증명서류 발급은 전년보다 129.6% 증가한 것으로 나타났다.

4월과 5월의 구직활동 증명 서류 발급이 각각 1.4%, 41.2% 증가한 데 그친 것을 고려하면 6월에만 이례적으로 증명서 발급 수치가 급증한 것이다. 늘어난 증명서 발급과 달리 6월 새일센터를 통한 취업사례는 전년보다 1.2% 늘어난 160건에 불과했다.

보건복지부는 어린이집 현장점검을 통해 운영시간 미준수나 바우처 사용 종용 등 보육 현장에서 발생하는 맞춤형 부정 사례를 모니터링하고 있으나 상황이 여의치만은 않다. 막상 현장점검을 나가도 행정 처분이 가능할 정도의 심각한 어린이집 운영 기준 위반 사례를 찾아내는 게 쉽지 않기 때문.

기존의 어린이집 운영 관행과 달리 많은 분들이 맞춤형 보육을 어색하고 불편하게 느낄 수는 있다며 맞춤형 보육제도가 수요자들에게 만족할만한 수준이 되기까지는 시간이 좀 더 필요할 것 같다고 복지부 측은 설명했다.

김현주 기자 hj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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