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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완식이 만난 사람] “예술의 본질은 상식과 경계를 초월하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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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24 21:00:13 수정 : 2016-10-24 21:0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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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체회화’ 작업에 빠진 학벌없는 전업작가 안창홍 지난여름 한 장의 이미지가 핸드폰으로 전달돼 왔다. 강원도에 근접한 경기도 끝자락 양평 산골에서 작업하고 있는 안창홍(63) 작가에게 보낸 문자메시지에 대한 답이었다. 요즘 어떤 작업을 하느냐고 물었는데 무더위 속 속옷 차림으로 신작 작업을 하는 모습을 보내왔다.

새로운 작품이 궁금해 주말에 그의 작업실을 찾았다. 단풍으로 물들기 시작한 산자락에 위치한 작업실은 넓은 잔디밭과 꽃밭, 그리고 그 사이로 소나무와 문인석, 동자석 등이 어우러져 있다. 정원 한 켠에 낯선 조각상 하나가 눈길을 끌었다. 어둡고 우울한 조각상이었다. 고물상에 처박혀 있던 중국작가의 작품이었다. 사회주의 리얼리즘의 진수를 엿볼 수 있는 굉장히 잘 만들어진 조각품이었다. 어떻게 고물상까지 흘러들었는지는 모르지만 작가로서 보기가 안 좋아 돈을 주고 가져다 놓은 것이다. FRP재질이라 요즘 그가 하고 있는 작업의 재료와도 우연히 일치하고 있었다.

부산 국제시장에서 핸드백에 그림을 그려주는 아르바이트 등으로 자신만의 그림 인생을 일궈온 안창홍 작가.
그는 요즘 그동안의 회화작업을 입체화하는 ‘입체회화’작업에 빠져 있다. 조각이지만 회화성이 강한 입체작품이다. 2m 크기의 두상과 마스크가 스케일에서 압도한다. 부와 명예를 위해 격투기 같은 삶은 살아가는 도시인의 얼굴이 어른거리기도 하고 핸드폰 등을 붙들고 살아가는 현대인의 자화상도 읽힌다. 바코드가 그려진 두상은 최근의 흙수저, 금수저 논란을 떠올리게도 한다. 모두가 우울하고 고독한 모습이다. 애써 어둡고 음습한 부분을 들춰내 이야기하려 한다.

“인간에 대한 애정 때문이다. 안전하고 행복한 것들은 그냥 놔둬도 안전하고 행복하다. 삶 속에 일어나서는 안 될 것들을 거부해야 한다. 곪아 터진 고름이라도 끄집어내고 터뜨려 줘야 치유의 길을 찾을 수 있다.”

신작 작업인 ‘입체조각’들이 작업실을 가득 채우고 있다. 인간의 두상에 비극적인 지문들을 그려넣음으로써 인간을 성찰하게 만든다. 우울한 느낌의 마스크도 보인다.
사실 그에게도 이런 작업은 고통스럽다. 화가로서 감당해야 할 몫으로 받아들이고 있을 뿐이다.

“인간에 대한 사랑과 희망을 갈구할수록 그림은 더욱 참혹하고 난폭해지게 마련이다. 일종의 반어적 어법이라 할 수 있지만, 대개 유토피아를 이야기하는 자들이 결국엔 디스토피아로 이끌고 갔던 역사를 우리는 많이 봐왔다. 예술가가 항상 ‘독한 여정’을 즐겨야 하는 이유다.”

그는 체질적으로 반골 기질을 가지고 있다. 항상 경계를 넘어 겁없이 달려든다. 저항적이고 호기심도 많아 안주하기를 거부한다. 예술의 본질도 경계를 초월하는 것이다. 그의 삶도 상식의 경계를 부셨다. 학제적 미술공부를 거부하고 대학진학을 하지 않았다. 학연 등 폐쇄적 미술계 풍토에선 파격이라 할 수 있다. 부산 자갈치시장에서 부대끼며 삶의 지혜를 배웠다. 예술을 지식이 아니고 삶과 동떨어져서는 안 된다는 신념이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니 제도권 교육 거부는 순수한 젊음의 패기였다. 어쨌건 결과적으로 그림을 위해 내 인생을 온전히 투자하게 만들었다.”

그는 한동안 부산에서 화실을 운영하며 홍대, 서울대 합격생을 많이 배출하기도 했다. 입소문으로 학생들이 몰려들자 화실 문을 닫았다. 제도권 교육을 거부한 그가 제도권 입시에 봉사하는 모양새를 받아들일 수 없었던 것이다. 이미 고등학교 시절 명문대에 들어간 선배들의 그림에 실망한 그였다. 현재 작가로서 온전히 남아진 이들이 거의 없다. 고작 대학교수로 이름뿐인 작가들이 더러 있을 뿐이다.

동료 작가들조차도 그의 삶의 이력을 신기해할 정도다. 대학 스펙은 없어도 늘 20대부터 ‘시대정신’, ‘현실과 발언’ 등 주요 그룹에 불려다니면서 미술계 주류를 형성해 왔기 때문이다. 주요 미술상도 그의 몫으로 돌아왔다. 학연 지연의 배타적 ‘족벌사회’인 미술계에서 매우 특별하고 이례적인 일이다. 열정과 용기, 저돌성, 타협하지 않는 정의감 등이 카리스마가 돼 미술모임에서 늘 리더그룹이 됐다. 한마디로 실력 있고 의식 있는 작가에게 학연 지연의 경계는 무용지물이었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하는 것은 내가 변질되는 것이다. 세상의 잘못된 것에 맞서는 것은 두렵지만 피해서는 안 된다는 자기확신 같은 것을 가지고 있다.”

그는 극과 극을 아우른다. 작품에서 화려함과 비참함, 비극적 느낌이 공존하고 있다. 시든 맨드라미 꽃 그림의 드라마틱한 모습이 대표적 사례다. 자연스레 미술시장과 미술관을 모두 만족시키는 작품이 되고 있다.

“빛과 그림자(음영)가 공존해야 하나의 그림이 된다. 마찬가지로 세상을 온전히 바라보기 위해선 화려함과 비극을 동시에 이야기해야 한다.”

그는 스스로를 어두운 것을 보는 더듬이가 발달했다고 평했다. 디스토피아는 그에게 유토피아를 제대로 성찰할 수 있는 도구다.

사실 그는 지난 시절의 사진을 이용한 작업으로 이름을 알렸다. 유복자인 친구의 집에 우연히 놀러갔다가 본 사진이 계기가 됐다. 일제 징용을 앞둔 친구 아버지가 아내와 함께 찍은 기념사진이다.

“내가 속했던 ‘구조그룹’이 일본 도쿄 소재 화랑에서 초대전을 가진 적이 있다. 그때 그 사진을 그려 출품했다. 회화적 사진이다. 눈이 뚫리고 피로 얼룩진 모습으로 변형시켰다. 이를 본 일본 관람객 중엔 전쟁범죄를 사죄하는 이들도 있었다.”

이 작품은 프랑스 카뉴국제회화제에서 심사위원 특별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이런 작업들은 장샤오강, 정판즈 등 중국의 정치적 팝아트 작가에 영향을 미쳤다. 한 장의 사진에 시대의 상처를 밀어넣어 환기시키고 있는 것이다.

사진을 크게 인화해 덧칠을 하는 방식도 있다. 사진들은 폐업하는 사진관에서 버린 필름 묶음들을 구해 인화했다.

“시대의 비극적 자화상을 끄집어내는 작업이다. 민초들의 피와 눈물의 역사를 재조합해 기억 속 잊힌 슬픔과 회한을 불러내 제의를 치르는 의식이라 할 수 있다. 혼을 달래는 치유의 씻김굿을 한다고 생각하면 된다. 그것이 바로 우리 스스로의 치유이기도 하다.”

그는 소시민들의 강인한 건강성도 클로즈업하고 있다. 돈과 권력에 눈먼 자들의 아수라장 같은 아귀다툼도 단골 소재다. 최근에는 폐기된 마네킹도 모으고 있다. 마네킹 산을 만들어 ‘인간 고기’를 형상화하기 위해서다. 전쟁과 권력으로 세계 곳곳에서 벌어지는 비극적 ‘인간 도살’에 대한 강한 저항의 표시다.

그는 30년 전 양평 산골로 들어왔다. 잘못된 것에 대해 분노할 줄 아는 자유정신으로 버텨 온 세월이다. 인간적 가치에 양보하지 않고 타협하지 않겠다는 의지로 스스로를 양평에 유폐시킨 것이다. 요즘 들어 작업하다 어슴푸레한 바깥 풍경에 저녁을 먹어야겠다고 문을 열고 나서면 새벽인 경우가 많아졌다. 밀려오는 고독감에 멍하니 서서 한동안 자신도 모르게 산들을 바라보게 된다. 절대 고독과의 끝없는 싸움이다. 빈 캔버스 앞에 서면 여전히 천길 낭떠러지에 서 있는 기분이다. 몸서리쳐지는 고독이다.

편완식 미술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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