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홀연히 로마로 떠난 괴테… ‘대가’로 거듭나다

입력 : 2016-10-21 20:30:56 수정 : 2016-10-21 20:30: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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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위 공직자·작가로서 남부러울 게 없는 삶
어느날 편지 한 장 남기고 이탈리아 여행
당시 유럽 문화 만개한 로마서 다시 공부
문학·미술·음악 삼중의 예술적 사색 즐겨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안인희 옮김/지식향연(김영사)/2만9000원
이탈리아 여행/요한 볼프강 폰 괴테 지음/안인희 옮김/지식향연(김영사)/2만9000원


1788년 대문호 괴테가 쓴 ‘그랜드 투어’의 기록이다. 당시 유럽의 상류층 자제들 사이에서 로마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다. 그 무렵 로마는 세계의 수도로, 유럽 문화의 원조였기 때문이다. 괴테는 이탈리아 여행을 일컬어 스스로 ‘재탄생’이라고 했다. 바이마르 출신의 일개 작가에서 이탈리아의 역사, 문화, 예술을 만나 경탄하고 숭배하면서 대가로 거듭난 것이다.

여행 직전 괴테는 남부러울 게 없었다. 고위 공직자로 부유했으며, 상류층 유부녀들과 바람피우는 귀족이었다. 하지만 자신의 예술적 끼를 억누를 수 없었다. 편지 한 장 달랑 남기고 홀연히 떠나 버린다. 자신을 귀족 반열에 올리고 온갖 후원을 아끼지 않은 바이바르 공작의 만류를 뿌리치고 이탈리아 여행에 나선다. 괴테의 나이 30대 후반 무렵이었다. 당시로선 뒤늦은 투어였다. 괴테의 그랜드 투어란 일종의 단기 유학이었다. 유학이란 게 꼭 젊은 나이에 해야 하는 것이 아님을 괴테의 사례를 통해 알 수 있다. 어느 정도 사회 경험을 쌓을 무렵 괴테는 뚜렷한 목적의식을 가지고 이탈리아로 떠났고 대단한 결실을 얻었다.

27살 젊은 날 일찌감치 ‘베르테르’의 작가로 유럽 전역에 필력을 날린 그의 대중성은 타고났다. 장중미려한 문체를 고집하는 고상한 작가가 아니었다. 독특한 대중성과 오락성을 겸비했다. 이 작품 ‘이탈리아 여행’에서도 여지없이 확인할 수 있다. 자칫 지루해지기 쉬운 여행 기록 중간중간에 익살맞고 재미있는 이야기들을 끼워넣곤 했다. 적절한 구성의 묘미였다.


18세기 유럽의 상류층 자제들 사이에서 로마 그랜드 투어가 유행했다. 괴테도 1788년 로마에 머물며 여행기를 남겼다. 당시 로마에 머무를 때의 초상화.
김영사 제공
200여년 전 작가의 문장이 지금도 통할 만큼 유머러스한 경쾌 발랄한 문체를 구사했다. 고전물인데도 현대인들의 감각을 사로잡는다. 고전이라면 어렵다고 한다. 물론 쉽지는 않다. 하지만 괴테의 글처럼 경쾌하고 재미있다면 고전도 어렵지 않을 것이다.

번역자 안인희 교수는 “괴테를 터무니없이 어렵게 만든 것은 학자들의 짓거리”라고 비판한다. 학자가 아닌 작가 괴테는 분명 난해한 해석에 반대했을 것이다.

이 책은 자전적 기록이지만, 아울러 놀라운 관찰력으로 자연 현상을 설명하고 기록했다.

이 글에 비친 괴테의 모습을 보면 대체로 긍정적이고 아름다운 측면이 드러나 있다. 그의 다른 특성들은 대체로 빠져 있다. 예컨대 유부녀와의 사랑이 그렇다. 지식과 교양을 갖춘 젊은 귀족 여인 슈타인 부인과 사랑을 나누면서 정신적 교감을 이룬다. 열여섯 살이나 어린 여인과 결혼해 아들도 낳았다. 하여간 여복이 많은 남자였다.

로마 체류 동안 괴테는 대부분의 시간을 화가들과 보낸다. 그 자신도 부지런히 건축과 미술을 공부했다. 실제 꽤 많은 습작 과정을 통해 작품을 남기기도 했다. 덕분에 이 책을 보면 이탈리아의 유명 미술품 감상도 가능하다. 당시엔 화가의 스케치가 오늘날 사진과 비슷한 역할을 했다. 음악가 카이저와 어울리며 음악에도 열중했다. 그야말로 유럽 문화가 만개했던 당시 로마에서 문학, 미술, 음악이라는 삼중의 예술적인 사색을 즐기고 미적 감각을 키웠다.

이는 괴테의 비옥한 정신과 뛰어난 작품으로 결실을 맺는다. 바이마르 공국으로 돌아온 이후 교육장관직만 유지한 채 오직 창작 활동에 정신력을 쏟았다. 이미 여행 동안 괴테는 ‘타우리스의 이피게니아’를 완성했다. 독일에서 최고로 꼽는 고전 작품이다. 이후 괴테의 두 대표작 ‘빌헬름 마이스터’와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괴테가 이 작품을 남기지 않았더라면 오늘날까지 이어지는 명성은 얻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아주 많은 것을 짧은 시간에 생각하고 조합할 수 있다는 복’을 타고났다. 하지만 한 걸음씩 차근차근 진행하는 습성은 없었다. 말하자면 아이디어와 위대한 영감은 많았지만, 끈질기게 붙잡고 완성하는 습성은 없었다. 괴테는 이런 끈기를 이탈리아 여행을 통해 습득했다. 늘지 않는 미술 연습을 계속하면서 작품의 완성에 꼭 필요한 손 기술과 끈기를 연마한 것이다.

안인희 교수는 “괴테가 원래 세 권으로 내놓은 책을 우리는 단 한 권으로 만난다. 그 무게에 짓눌릴 수 있지만 책을 단숨에 읽어 치우려는 욕심을 접고 차근차근 음미하면서 읽어 나가면 다방면의 재미를 만끽할 수 있다”고 했다. 이 책은 신세계그룹의 인문학 중흥사업 ‘지식향연’의 첫 성과물이다.

번역자인 안인희 한국외대 교수는 독일 문학의 권위자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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