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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동식의小窓多明] 문화가 피어나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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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18 01:01:24 수정 : 2016-10-18 01: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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획일화 부르는 전자매체 범람
우리 사회 삶의 향기 잃어가
고갈된 생명력 되살아나도록
문화인들의 꿈 과감한 지원을
10월은 문화의 달이다. 전국적으로 음악, 미술, 연극, 영화, 무용 등 문화예술 전 분야에서 공연, 전시, 축제 등이 화려하게 펼쳐지고 있고 중앙정부나 지방정부, 또 각종 단체들이 총력지원을 하고 있어서 내용면에서도 풍성하기 이를 데 없다. 과연 10월이 문화의 달임을 실감하겠다.

문화의 달이 지정된 것은 1972년이다. 문화예술에 대한 국민의 이해와 참여 제고를 위해 마련된 제도인데, 어언 44년이나 되었다. 말하자면 성년의 나이인 스무 살을 지나도 한참 지났는데도 문화의 달이네, 문화의 날이네, 문화가 있는 날이네 하면서 여러 가지 행사를 떠들썩하게 하는 것을 보면 역설적으로 문화가 아직 우리 생활에 가까이 온 것은 아닌 모양이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문화란 말의 영어 어원인 Culture는 원래 재배, 경작을 의미하는 라틴어인 Cultura에서 파생되었다고 알려져 있는데, 처음에는 본래 의미인 경작, 돌봄이라는 뜻으로 사용되다가 16세기 초부터 이 같은 본래 의미가 점차 인간 발전의 과정에까지 이르게 되어 18세기 말부터는 현재와 같은 의미의 독립된 명사로 쓰이게 되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이 문화라는 뜻의 Culture가 ‘문화(文化)’라는 동양의 단어로 정착된 것은 근대 일본의 메이지(明治)시대에 활약한 쓰보우치 소요(坪內逍?)란 번역가가 처음 쓴 데서 비롯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영국의 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의 모든 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한 사람으로 유명한 이 쓰보우치가 영어로 된 문학작품을 일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자연의 경작을 뜻하는 이 단어를 사람들에게 글(文)을 알게 하는 문화(文化)라는 단어로 바꾸어 표현했고, 그것이 우리나라에도 전해져 오늘에 이른 것이라는 설명이다.

우리는 지금 문화중흥을 외치고 있다. 한류를 세계로 확산시키고 싶어한다. 김구 선생의 소망처럼 우리나라가 무력으로 세계를 점령하는 것 대신에 향기로운 문화의 힘을 세계에 전하고 세계인들로부터 문화대국으로 존경을 받고 싶어한다. 그러기 위해서 10월 중순 이후 문화의 날을 기념하고 각종 문화 관련 행사에 온갖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그런데 조금 생각을 해보면 문화라는 단어는 농업, 자연을 경작하고 재배하는 과정에서 형성되었다는 점이다. 농업에서 하나의 작물을 잘 심어 가꾸면 그것이 성숙해서 좋은 향기가 난다. 그것이 곧 문화라고 한다면 문화는 곧 향기를 품어내는 작물을 가꾸는 일과 마찬가지이다. 향기라고 할 때의 향(香)이란 글자를 뜯어보면, 벼 화(禾)밑에 해를 뜻하는 날 일(日)이 있어서 벼가 해에 잘 익어 저절로 나오는 익은 냄새라는 뜻이 된다. 그런데 어떤 사람들은 이 ‘日’자가 달고 맛있다는 감(甘)자의 변형으로서, 쌀로 밥을 지을 때 풍기는 냄새가 달콤해서 입맛을 돋운다는 데서 향기롭다는 글자가 나왔다고 한다.

실제로 근대 조선왕조를 이끈 고종(高宗)은 대원군에 의해 경복궁이 중건된 이후 후원에 있는 향원정(香遠亭)의 편액을 직접 썼는데 이때 향이란 글자의 날 일자(日)를 달콤하다는 감(甘)을 쓴 것이 서울대 규장각에 전해오고 있다. 향원정은 북악산과 인왕산을 배경으로 서 있는데, 위태로운 시대에 새롭게 국정을 잘 펴고 싶다는 염원이 담겨 있다고 한다. 향원이란 말은 원래 중국 송(宋)나라의 성리학자인 주돈이(周敦?)가 연꽃을 칭찬하면서 쓴 ‘애련설(愛蓮說)’에서 ‘향기가 멀수록 더욱 맑다(香遠益淸)’는 글귀에서 따온 것으로서, 다른 한문에서 보는 ‘맑은 향기가 멀리까지 풍겨온다(淸香自遠)’는 사자성어도 같은 뜻이 된다. 다만 이때는 연꽃이 아니라 난초의 향기가 멀리까지 풍긴다는 뜻이지만 그 어느 것이든 향기가 멀리까지 전해지는 것, 그것이 문화요 예술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높은 문화의 힘’은 곧 삶의 힘이며 지금과는 또 다른 것을 갈망하는 끈질긴 생명력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한 알의 벼가 익어 맛있는 밥이 되어 멀리까지 향기를 내뿜으려면 씨를 심고 쌀로 길러 이 쌀에 물을 붓고 불을 때 주어야 맛있는 밥이 되는 법이다. 즉 문화의 향기를 맡으려면 문화예술인들이 그들이 갖고 있는 생각을 마음껏 발휘할 수 있도록 이해하고 아끼고 키우고 도와주어야 한다는 말이다. 더구나 오늘날은 발달한 전자기기, 전자매체에 의해 모든 사람의 생각과 말과 행동이 곧바로 노출되고 전파되고 있으며 그러한 것들이 오히려 인간성을 제약하는 시대로 변하고 있다. 자율과 개방을 통해 서로 다른 문화를 흡수하고 새롭게 만들어갈 수 있도록 하자는 것이 오히려 지나친 대중문화의 범람으로 인간성의 실종으로까지 이어지고 있는 시대가 아닌가.

“현대의 매스커뮤니케이션은 인간을 획일화하며 독자적인 사고를 제약하고 행동이나 의욕, 또는 창의력을 상실케 했기 때문에 이른바 틀에 박힌, 획일화된 인간을 만들었다. 예술은 비인간화된 기술 때문에 고갈된 생명력과 에너지를 다시 한번 부활시켜야 한다.” 문명비평가인 루이스 멈퍼드가 한 이 말은 우리가 왜 문화예술가들의 창조적인 활동을 지원해야 하는지를 설명하고 있다. 문화의 달이 벌써 절반 이상 지났지만 우리는 잠시 멈춰 서서 문화가 무엇인지, 문화예술이 왜 중요한지, 우리가 문화예술가들에게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곰곰 생각해 보아야 할 것 같다.

이동식 언론인·역사저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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