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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 비핵화 향한 자주 외교 궤적 담다

입력 : 2016-10-14 19:10:30 수정 : 2016-10-14 19:10: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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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9·19 공동성명은 비둘기파 성과물
한미 공조·한중 조율·남북 소통 ‘삼박자’ 맞아
당시 협상주역 송민순 전 외교장관 회고록
“남이 써주던 역사 우리 손으로 쓴 것” 평가
송민순 지음/창비/3만원
빙하는 움직인다/ 송민순 지음/창비/3만원


“국제정치는 서울의 시간표대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그렇다고 국제정치의 시계에 맞춰 서울의 시간표를 매번 새로 짠다면 늘 한발 늦습니다. 서울의 시간표만을 고집한다면 국제정치에서 고립을 자초하지요. 그 사이에서 타이밍을 잡는 것이 바로 외교입니다.”

노무현정부 외교부 장관을 지냈고 30여년간 국제정치 무대를 누빈 송민순 북한대학원대학교 총장의 회고록이다. 책 제목 ‘빙하는 움직인다’는 국제정치의 핵심, 즉 외교의 본질을 콕 집어낸 표현이다. 제네바 북핵 협상 당시 ‘진전이 없다’는 기자들 질문에 “회담이 빙하의 움직임과 같다”고 답했다고 한다. 당장은 보이지 않지만 몇년이 지나면 변화가 온다는 게 바로 외교의 결과라는 것이다.

1975년 외교부에 들어가 2008년 장관 퇴임을 하기까지 저자의 자주 외교 궤적이 오롯이 담겨 있다. 아직까지 북핵 평화적 해결을 위한 9·19 공동성명이 겉돌고 있음에 진한 아쉬움을 드러낸다.

4차 6자회담 끝에 2005년 9월19일 발표된 ‘9·19 공동성명’은 남북한을 비롯한 미·중·일·러 6개국 비둘기파들의 성과물이었다. 6개국은 53일간의 밀고 당기기 끝에 합의에 이르렀다. 불가능하다고 보았던 일이 성사된 것이다. 저자는 “한국이 외교의 중심에 서서 한·미 공조, 한·중 조율, 남북 소통이라는 삼박자를 가동한 ‘거대한 첫걸음’”이라고 평가했다. “남이 써주던 우리 역사를 우리 손으로 쓰고 있다”며 한국 외교의 자신감을 드러낸 사건이었다고 평했다.


2005년 4차 6자회담에서 ‘9·19 공동성명’에 합의한 6개국 대표들이 모여 손을 맞잡고 북핵의 평화적 해결을 다짐하고 있다. 저자는 “9·19 공동성명은 한국이 주도해 북한의 비핵화 합의서를 도출한 한국외교의 성과물”이라고 평가했다.
연합뉴스
그러나 발표 이듬해 미국은 방코델타아시아(BDA) 사건을 터뜨려 9·19성명을 무력화시켰다. 마카오 BDA에서 북한의 불법자금을 세탁한 의혹을 제기한 미국은 금융제재 압박을 가했고, 9·19 이행은 교착상태에 빠지고 말았다. 결국 북한은 2006년 10월 9일 1차 핵실험을 감행하고 말았다.

저자는 “11년이 지난 지금, 북한의 모든 핵무기와 핵계획 포기, 동북아의 항구적 평화와 안정을 위한 공동 노력 같은 합의 내용은 고장 난 자동차처럼 방치되어 있다”며 한반도의 긴장감이 높아가고 있음을 탄식했다.

올 들어 1월부터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실험, 사드 배치 결정, 9월 북한의 5차 핵실험 등

을 도대체 어찌 설명해야 할까. 저자는 “실제 사드를 배치하고 나면 한·미는 물론 중국도 북한의 핵과 미사일 개발을 억제할 수단을 갖지 못한다”고 지적한다.

현재 미국에서는 협상파, 강경파 할 것 없이 북핵 문제를 해결하려는 의욕이 증발되고 있다는 것.

저자는 “9·19 공동성명이 성실히 이행되었다면 천안함 사건이나 연평도 포격 사건이 일어났을 가능성이 낮았거나, 일어났더라도 위기관리가 용이했을 것”이라고 했다.

저자는 미국발 대북 금융제재의 성공사례로 평가되는 BDA 사례를 비판한다. “미국의 네오콘(신보수주의자 그룹)과 재무부 및 법무부의 관료들은 대북 금융제재의 효과를 과대평가해, 비핵화 이행을 지연시켰다”고 했다.

그는 “9·19 공동선언 이행이 무려 21개월 동안이나 지체됨으로써 북한의 핵폐기를 진전시킬 동력이 떨어졌다”며 “당시 나를 포함한 한국 정부에서는 북한에 금융제재를 가할수록 북한이 더 폐쇄적으로 되고, 핵무기 개발에 집착할 것으로 판단했다”고 적었다. 그러면서 북핵의 평화 해결 프로세스를 거부하면 핵시설 타격을 포함한 강경책도 한국 정부의 옵션에 들어있다고 전했다.

저자는 과거 실패한 북핵 프로세스가 주는 교훈을 이렇게 전한다.

“북한은 체제와 정권 생존이 보장되지 않는 한 핵무기 옵션을 포기하지 않는다. 미국과 중국 모두 독자적으로나 합작으로나 북핵문제 해결에 발 벗고 나설 가능성은 거의 없다. 만약 미국이 모든 수단을 동원해서 북한의 핵무기를 용인하지 않겠다는 결의를 지난 사반세기의 적절한 시점에서 북한과 중국에 분명하게 통보하고 실천했다면 결과는 달라졌을 것이다.”

저자는 북 인권 관련, 한국 정부의 혼선을 지적하기도 했다. 2007년 유엔 총회 북한 인권결의안 표결에서 노무현정부는 ‘기권’을 최종 결정하기에 앞서 남북 채널을 통해 북한의 의견을 물었다는 것.

앞서 2006년 1차 핵실험 때는 유엔결의안에 찬성했다고 저자는 밝혔다.

저자는 북핵 해결책으로 “북핵 6자회담을 재개하고, 북한의 핵폐기와 북·미관계 정상화 및 대북 경제지원 등 9·19 공동성명의 골격을 이행하면서 한반도 평화체제 협상을 병행해야 한다”고 제시했다.

책에는 노무현, 반기문, 조지 W 부시, 콘돌리자 라이스 등과의 일화가 곁들여 역사적 현장의 생생함을 더한다. 북핵 해결을 위한 각국 대표들의 막전막후 사건들이 영화처럼 전개된다. 한반도 외교의 교과서적인 책이다.

정승욱 선임기자 jswook@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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