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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찬의 軍] 국방부 '불통 행정'에 훼손된 사드 배치 당위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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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10-01 14:10:00 수정 : 2016-10-01 15: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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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부가 지난 30일 주한미군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지역으로 경북 성주군 초전면 롯데스카이힐 성주골프장으로 최종 확정했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은 이날 각 정당 대표들을 만나 “달마산(성주골프장이 조성된 산 이름)이 부지 가용성 평가 기준을 가장 충족했다”고 보고했다.

국방부는 국회 보고자료에서 “까치산과 염속봉산은 산림 훼손을 동반한 대규모 토목공사와 함께 기반시설을 새로 설치해야 하므로 적기의 기지 조성이 제한된다”며 “달마산(성주골프장)은 기반시설이 구비돼 있고 공사 소요가 거의 없어 적기에 사드 체계 기지 조성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야간에 시험발사되는 사드 미사일
국방부는 정치권과 별도로 사드 부지가 속한 성주군과 성주골프장에 인접한 김천시에도 고위당국자를 보내 사드 배치에 대해 설명했지만 정작 언론을 대상으로 한 공식브리핑과 질의응답은 갖지 않았다. 사드 배치를 두고 지역 사회의 여론이 갈라지고 배치 찬반 논란이 격화되는 상황에서 사드 배치의 당위성을 국민 앞에 설명해야 할 정부부처 관계자들이 카메라앞에 서지 않은 것을 놓고 ‘불통 행정’이라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 공식브리핑 없었지만 ‘발표’된 사드 부지

일반적으로 국가안보와 관련된 사안은 기자들에게 공개적으로 설명하는 자리가 마련된다. 북한 핵실험이나 장거리 미사일 같은 대형 사건은 물론 군 가혹행위 등도 사안이 중대하다고 판단되면 공식브리핑이 이루어진다.

하지만 30일 확정된 사드 배치 지역에 대한 발표는 엄밀히 말하면 ‘발표’된 것이 아니다. 책임 있는 국방부 당국자가 기자들 앞에 서서 브리핑을 진행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당초 국방부는 이날 오후 2시30분에 기자실에서 비공식 브리핑 형태로 성주골프장을 사드 배치 지역으로 선정한 배경 등을 설명할 예정이었으나 기자들의 거센 항의에 직면했다. 기자들은 “지난 7월 성주읍 성산포대를 주둔지로 선정했을 때보다 더 중요한 사안이므로 공식브리핑으로 진행하고 질의응답도 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 때 국방부 브리핑룸에서는 신문과 방송사 기자들이 공식 브리핑을 기다리고 있었다. 일부 방송사는 중계차를 대기시켰다.

한민구 국방부 장관이 30일 오전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새누리당 북핵 사드본부 간담회에서 의원들의 질문에 답변하고 있다. 남정탁 기자
기자들의 요구에 국방부는 이날 오후 “지역주민을 배려하는 차원에서 지역(성주군수)에 설명하는 것을 공식 발표로 판단한다”며 비공식 브리핑을 하자고 다시 한번 요청했다. 국방부 고위관계자는 국방부가 성주군수에게 설명한 것이 국민에 대한 발표인지를 묻는 질문에 “기본적으로는 성주군수에게 설명한 게 공식 입장”이라며 국방부에서의 공식 브리핑은 어렵다는 입장을 되풀이했다.

국방부의 입장 변화가 없자 기자들은 ‘질의응답이 있는 공식브리핑’을 다시 요청했으나 국방부가 이를 거절하면서 국방부에서의 발표는 이날 오후 3시쯤 최종 무산됐다. 국방부는 30분 뒤 성주골프장을 사드 주둔지로 결정했다는 내용을 담은 A4 용지 두 장 분량의 보도자료를 발송했지만 숱한 논란을 양산한 사드 배치 문제에 대해 제기되는 수많은 의문을 해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분량이었다. 수개월 동안 국가 안보와 지역 주민들의 삶에 큰 영향을 미쳤던 대형 이슈의 결말치고는 너무나 허무했던, ‘발표인 듯 발표 아닌 발표 같은 설명’으로 점절된 한편의 블랙 코미디가 끝나는 순간이었다.

◆ 질의응답서 말실수 할까봐? 기록이 두려워서?

그렇다면 국방부는 왜 그렇게 비공식 브리핑을 고집했을까. 국방부가 지난 7월 8일과 13일 서울 용산 국방부 청사에서 실시한 사드 배치 발표 당시에는 류제승 국방부 국방정책실장이 공식 브리핑을 실시한 바 있다. 당시 류 실장은 공식 브리핑에서 “북한의 핵과 미사일 위협으로부터 대한민국과 한미 군사력을 보호하기 위한 방어적 조치” “국민과 성주 주민 여러분이 우리 군의 충정을 이해하고 지원해주시기를 부탁한다”고 밝히기도 했다. 이 모습은 다음날 신문 지면에 실리기도 했다.

공식 브리핑은 국방부 관계자가 방송사 카메라 앞에서 준비된 자료를 읽고 기자들의 질문을받는다. 국방부는 월, 화, 목요일에 정례브리핑을 통해 국방 관련 이슈에 대한 입장을 밝히고 질의응답에 응해왔다. 이 과정에서 발표자와 질문자의 신분, 이름 등은 물론 발언 내용도 공식 기록에 남는다. 반면 비공식 브리핑은 내용만 공개될 뿐, 나머지 사항은 공개되지 않는다.

국방부가 이날 비공식 브리핑을 고집한 것은 ‘질의응답’ 때문이다. 국방부와 기자들이 브리핑 형식을 놓고 갑론을박을 벌였을 때, 국방부가 마지막으로 내놓은 안은 보도자료를 공개 브리핑에서 읽고 질의응답은 비공개로 하자는 것이었다. 그러나 질의응답도 공개로 해야 한다는 기자들의 요구를 거부함으로서 발표는 무산됐다.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사드 배치 제3부지 발표를 규탄하며 구호를 외치고 있다. 하상윤 기자
이로 미루어보면 공개된 장소에서 기자들의 질문에 응할 수 없다는 게 국방부의 진정한 속내로 보인다. 왜 사드 주둔지를 성산포대에서 성주골프장으로 바꿨는지, 성산포대와 성주골프장 중 어느 쪽이 군사적 효용성이 더 높은지 등 국민들이 궁금해하는 사안에 대해 공개적으로 답변하지 않겠다는 의미로 해석되는 대목이다. 군 소식통은 “질의응답 과정에서 말실수를 해 지역 주민들을 자극할까봐 그런 것 같다”며 “태도 변화에 대한 질문을 받고 싶어하지 않은 속내도 있었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발표 내용이 공식 기록에 남는 것을 기피하려는 의도라는 지적도 나온다. “군사적 효용성 측면에서 성산포대가 최적”이라는 당초 입장에서 79일만에 선회한 결과를 국방부가 행정부 공식 기록물로 남겨 훗날 역사의 심판을 받는 것을 피하려 했다는 해석이다. 실제로 국방부에 국회에 보고한 자료에는 ‘성산포대, 성주골프장’이라는 단어조차 없다. 보도자료에는 성주골프장이 언급되어 있으나 다른 후보지였던 염속봉산과 까치산보다 성주골프장이 더 나은 이유는 언급되지 않았다.

◆ 말하고 싶은 것만 말하고 듣고 싶은 말만 듣나

결국 국방부의 사드 배치 ‘발표’는 성주골프장을 주둔지로 하는 방안에 내심 찬성하는 김항곤 성주군수에게 관련 사항을 설명하는 것으로 끝났다. 지역주민들을 자극할까봐 몸을 낮추겠다는 뜻으로 보이지만, 실효성은 없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당초 군은 지난 7월 “성산포대가 최적의 부지”라고 밝혔다. 하지만 성주골프장이 더 적합하다고 태도를 바꿨다. “국유지만 검토하다 보니 성산포대가 최적이었고, 사유지도 함께 검토해보니 성주골프장이 더 나았다”는 게 군 당국의 설명이다. 실제로 성산포대보다 성주골프장이 더 넓고 여건도 좋아 주둔환경은 성주골프장이 더 나은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군이 부지 선정 과정에서 치밀한 검토가 부족해 혼란을 자초한 것 아니냐는 비판을 피하기는 어렵다. 이는 성주 군민들과의 갈등 관리를 소홀히 한 채 사드 배치를 밀어붙였다는 비판과 도 일맥상통한다. 특히 국가 안보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정책 결정을 손바닥 뒤집듯 바꾼 것은 정책의 투명성과 신뢰성을 떨어뜨리는 처사라는 지적도 제기된다. 

국방부가 경북 성주군 초전면의 롯데스카이힐 성주골프장 부지를 사드 배치 지역으로 발표한 30일 오후 서울 용산구 국방부 정문 30일 오후 국방부 정문 앞에서 원불교 신도들이 사드 배치 제3부지 발표를 규탄하는 기자회견을 하고 있다. 하상윤 기자
국방부는 지역 주민들을 대상으로 설득을 지속하겠다는 입장이지만 어느 정도 효과가 있을지는 미지수다. 30일 국방부 설명에 대해 김항곤 성주군수는 응했지만, 박보생 김천시장은 국방부가 일방적으로 설명 시간을 변경했다는 것을 이유로 청취를 거부했다. 사드 반대 김천투쟁위원회는 “성주골프장에 사드 포대가 배치되면 피해를 보는 것은 김천 시민”이라며 국방부가 김천 시민들을 무시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국방부가 이날 ‘발표’로 사드 논란이 마무리 국면에 접어들었다고 판단한다면 오판이다. 연극으로 따지면 이제야 1막이 끝났을 뿐이다. 부지를 수용하고 미국과 협의를 거쳐 토지 소유권을 이양하며, 기지 건설에 필요한 예산을 조달하는 등 사드 배치까지 남은 과제가 산적해있다. 국방부는 행정적 조치로 이 모든 것을 갈음할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겠지만, 국민들과 사드 주둔지 변경에 대해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자세를 취하지 않은 채 하고 싶은 말만 하려 하면 사드 배치의 당위성조차 훼손될 수 있다. “왜 국방부가 공식 발표를 안했지? 뭔가 숨기고 싶은 것이 있나?”라는 의문을 국민들이 제기하는 순간, 사드 배치 당위성은 불신이라는 바람 앞에 흔들리는 촛불과 같다. 소통 없는 ‘설명’을 공식 발표로 갈음해버린 국방부의 다음 행보가 우려스러운 이유다.

박수찬 기자 psc@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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