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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송스러운 맛·호사의 맛… 혀로 설명할 수 없는 맛의 기억

입력 : 2016-10-01 03:00:00 수정 : 2016-09-30 19:56: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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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라마쓰 요코 지음/조찬희 옮김/바다출판사/1만3800원
어른의 맛/히라마쓰 요코 지음/조찬희 옮김/바다출판사/1만3800원


많아야 1년에 4, 5번 고향에 갈 때마다 항상 기대하는 건 어머니의 밥상이다. 오랜만에 거둬 먹이게 된 아들을 위해 솜씨를 부린 밥상의 요리들은 항상 만족스럽다. 이제는 적응이 된 아내의 음식, 제법 큰 돈을 내고 가끔 먹는 요리집의 고급음식과는 다른 특별함이 있다. 맛도 맛이지만 어머니의 음식이 불러일으키는 다양한 감정이나 추억 때문이 아닌가 싶다.

죄송스러운 맛, 호사의 맛, 눈물나는 맛, 혼자의 맛, 강의 맛 등등 책의 각 장에 달아놓은 제목은 음식의 맛 자체는 물론 그것에서 비롯되는 여러가지의 이야기들을 전하려는 듯하다. 세상의 수많은 자식들이 어머니의 밥상 앞에서 그러하듯 저자에게 맛이란 혀를 만족시키는 감각만으로는 설명할 것이 아닌 모양이다.

한여름의 나고야, 친구를 만난 저자는 100년이 넘은 이자카야를 찾는다. 해가 높이 떠 있는 시간, 가게 안은 어쩐지 즐거워 보인다. 즐거움의 정체는 우월감이지만 한편으로 미안하다.

“세상 사람들은 번듯하게 일하고 계시는데 이런 시간에 벌써부터 술을 마시고 있는 것이다. 헤헤, 이것 참 죄송하네. 딱히 어려워할 사람도 없는데 왠지 죄송스러운 기분이 든다.” ‘죄송스런 맛’의 정체다.

‘납득이 가는 맛’은 뭘까. 전승의 보존식품을 조사하기 위해 절임, 젓갈 등 짠 음식을 이틀 내내 먹고 돌아오는 비행기 안에서 저자 일행은 ‘새콤달콤한 맛’을 끊임없이 갈구한다. 공항에서 내리자마자 식당을 찾아 먹은 음식은 케첩을 듬뿍 뿌린 오무라이스. “당장 이것을 먹으며 나 자신이 제대로 만족할 것인지를 가늠해 본” 뒤에 먹은 음식이다. 납득할 수 있는 맛을 스스로 찾아낸 것이다. 저자는 “납득이 가는 맛은, 말하자면 자신의 몸이 하는 말을 귀 기울여 듣는 맛이다. 여러 가지를 거듭해 쌓아 온 경험으로부터 떠올릴 수 있는 맛이기도 하다”고 적는다.

‘눈물 나는 맛’을 쓴 글에서는 “와사비의 맛은 아버지가 술에 취해 사 가지고 오신 나무도시락 초밥 때문에 알게 됐다”고 고백한다. “부지런히 나만의 상차림을 하는 건 의외로 재미있다. 자신을 길들이면서 만족과 타협한다. 잘되면 더할 나위 없이 좋고, 깜박하고 착지에 실패해도 괜찮다. 시무룩해져서 반성하거나 후회하는 감미로운 덤이 제대로 딸려 올 테니까.” ‘혼자의 맛’이다.

‘저녁 반주의 맛’을 다룬 문장에는 멋이 넘친다. “가을밤이 유독 길 때, 혹은 겨울 해질 녘에 도쿠리 기울이는 소리를 나 홀로 조용히 듣는 행복이 있다.”

64개의 맛 이야기를 담았다. 맛에 대한 표현들은 지극히 미각에 의존하기도 하고 종종 문학적인 상상력을 동반한다. 그저 계절의 감각을 느끼게 하는가 하면, 인생에 대한 성찰을 소담하게 담아내기도 한다. 저자는 음식과 맛을 통해 인생을 이야기하며 사려 깊고 솔직한 감각을 자극하는 촘촘한 묘사력을 보여준다. 품위 있는 문체라 읽는 즐거움이 크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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