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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사의 안뜰] 〈12〉 조선시대 사람들도 홍동백서 검색했을까

입력 : 2016-09-09 20:14:48 수정 : 2016-09-09 20:18: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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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자로 병풍으로… 알쏭달쏭 제사규칙 체계적으로 전해 아침 저녁으로 서늘한 날이 잦아짐과 함께 추석명절이 성큼 다가왔다. 여름처럼 덥지도 않고 겨울처럼 춥지도 않다. 추수를 앞둔 시점이라 먹을 것도 풍족하니 ‘더도 말고 덜도 말고 한가위만큼만’이라는 상투적인 말이 너무나 어울리는 시기이다. 조상들이 이즘에 맞춰 모두 모여 즐긴 것도 그럴 만한 이유가 있었던 것이다.

추석은 기원이 고대로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추석을 명절로 삼은 것은 삼국시대 초기였다. ‘삼국사기’에 의하면 신라 제3대 유리왕 때 도읍 안의 부녀자를 두 패로 나누어 왕녀가 각기 거느리고 7월 15일부터 8월 15일까지 한 달 동안 두레 삼 삼기를 하고 마지막 날에 심사를 해서 진 편이 이긴 편에게 한턱을 크게 내고 ‘회소곡’(會蘇曲)을 부르며 놀았다고 한다. 

국조오례서례의 제기도.
◆조선인에게 제사상 차림은 쉬운 일(?)


지금 우리가 지내는 추석의 아침은 차례를 지내는 일로 시작하는데, 평소에는 보기 힘든 풍경이 펼쳐진다. ‘홍동백서(紅東白西·붉은 과일은 동쪽, 흰빛의 것은 서쪽에 늘어놓음.)’, ‘조율이시(棗栗梨枾·대추, 밤, 배와 감. 제사상에 놓는 기본 4가지)’ 등 차례상 차림과 관련된 단어가 인기검색어에 오르는 것이다. 최근에는 제사를 지내지 않거나 간소하게 지내는 경우도 있지만, 아직 많은 가정에서 조상을 기리는 제사를 정성스럽게 지내려다 보니 일어나는 일이다. 모든 일이 그러하듯이 제사를 지낼 때도 절차와 격식이 있다. 그러나 현대인들에게 이는 자주 있는 일이 아니어서 그때그때 집안의 어른에게 묻거나 책이나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얻고는 한다. 조선시대 사람들은 어땠을까. 특히 제사가 일상이었던 왕실 의례를 담당했던 사람에게도 제사상 차림과 절차를 외우는 것은 어려운 일이었을까.

고종 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 제사가 일상이었던 조선 왕실은 제례와 관련된 정보를 그림으로 표시한 병풍을 만들어 제사 준비에 만전을 기하도록 했다.
◆그림으로 그려낸 제사상


조선시대 왕실제례는 제사 대상의 중요도에 따라 대사(大祀), 중사(中祀), 그리고 소사(小祀)로 구분된다. 각각의 제사들은 일정한 절차대로 진행되며, 각 제사마다 그 등급과 제사를 지내는 시기별로 소용되는 제물을 담은 제기의 종류와 숫자에 차등을 두었다. 제일 큰 제사는 한 상에 53개의 제기가 올라가는데, 이 가장 큰 제사는 어떻게 치러질까.

한국학중앙연구원 장서각에는 제사의 절차와 상차림과 관련된 전례서가 다수 전하고 있다. 보통 절차는 글로 설명하고, 제사상 차림은 그림으로 설명한다. 상차림 그림은 성종 때 완성된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의 것처럼 둥근 원 안에 제물(祭物)의 명칭을 쓰는 것이 일반적이다. 그리고 제기의 생김새는 따로 그려서 어떤 제물을 담는지 설명한다. 아마 왕실 의례를 담당했던 사람들은 정확함을 기하기 위해 이러한 책을 보며 예행 연습을 하고, 상차림을 다시 한 번 확인하며 만반의 준비를 했을 것이다. 조상을 잘 모시는 걸 윤리의 근본으로 알았던 사회였으니 어렵지 않게 상상할 수 있는 광경이다.

이런 전통적인 설명 방법은 정조 때부터 새로운 혁신을 맞이한다. 정조는 제례와 관련된 정보를 책뿐 아니라 병풍으로 만들어 여러 관청에 비치하도록 하였다. 정조는 1784년 아버지 사도세자의 사당인 경모궁에 관한 제반사항을 정리한 ‘경모궁의궤’(景慕宮儀軌)를 편찬하였고, 1797년 이 의궤와 ‘궁원의’(宮園儀)라는 책의 내용을 담아 ‘경모궁향의도병’(景慕宮享儀圖屛)이라는 8폭으로 된 병풍을 만들게 하였다. 제3폭 상단에 오향친제(五享親祭)의 상차림을, 하단에는 그 순서와 제기(祭器), 명물, 과품(果品·과일류)에 대한 식례(式例)를 실었다. 의례를 맡은 관청의 관리들은 매일 이 병풍을 보며 자연스럽게 그것을 눈으로 익혔을 것이다. 필요할 때마다 책을 뒤져 찾는 것보다 매일매일 지나가면서 무의식적으로 의례의 모든 것을 머릿속에 입력했을 성도 싶다.

이 병풍의 실물로 전하는 가장 대표적인 것이 고종 대 제작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립고궁박물관 소장의 ‘종묘친제규제도설병풍’(宗廟親祭規制圖說屛風)이다. 병풍의 제6폭은 ‘오향친제설찬도’(五享親祭設饌圖)라는 제목으로 제사의 상차림을 그렸다. 상단에 종묘 정전의 각 신실(神室) 상차림인 ‘설찬도’, 신실 앞 준소상에 배설하는 제기를 그린 ‘준소제기’(尊所祭器), 희생을 잡고 조리하는 데 쓰이는 기구를 그린 ‘전사청기용’(典祀廳器用)을 세 부분으로 나누어 그렸다. 하단에는 제기를 배치하는 방법, 제기의 종류, 과품의 종류를 기록한 ‘설찬도설’(設饌圖說)이 기록되어 있다. 그림 속의 제기들은 심지어 현재 전하는 왕실에서 사용했던 제기들과 생김새까지 많이 닮아 있다. 

장서각 소장의 ‘진설도’. 종묘에서 지내는 제사 절차, 상차림 등을 그린 것으로 때에 따른 상차림의 변화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다.
◆제사의 절차까지 보여주는 ‘진설도’


장서각에는 이와 같은 병풍은 없지만, 비슷한 성격의 왕실 고문서 한 장이 남아 전한다. 이 ‘진설도’(陳設圖)는 상차림으로 보면 조선의 국가 제례 중 가장 큰 제사인 종묘 제향을 위해 그린 것임을 알 수 있다. 윗부분에는 제사상을, 아랫부분에는 신실 밖의 술항아리를 놓아두는 준소상(尊所床)을 그렸다. 국립고궁박물관 소장 병풍에서 보이지 않는 제기들도 몇 점 보이는데 현존하는 제사 상차림을 그린 그림 중에는 가장 지금과 가까운 시기의 것으로 추정되어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이 그림문서가 어떤 이유로 만들어졌는지 확실히 알 수는 없다. 하지만 이 문서 한 장은 ‘국조오례서례’(國朝五禮序例)의 진설도와 제기도설 총 26장에 실린 내용을 한 장의 그림으로 담고 있기 때문에 제례 병풍의 전통을 이은 매우 실용적인 문서라 할 수 있다.

이 문서는 제사상 차림만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제사의 절차도 일부 보여주고 있다. 종묘 제향은 일반적으로 신을 맞이하는 ‘취위’(就位), ‘신관례’(晨?禮) 절차, 신이 즐기는 ‘천조례’(薦俎禮), ‘초헌례’(初獻禮), ‘아헌례’(亞獻禮), ‘종헌례’(終獻禮) 절차, 신이 베푸는 ‘음복례’(飮福禮) 절차, 신을 보내는 ‘철변두’(撤?豆), ‘송신사배’(送神四拜), ‘망료례’(望燎禮) 절차로 나뉜다.

장서각의 진설도는 이 가운데 신을 즐기는 절차에서의 상차림 변화를 그림으로 표현하고 있어 주목된다. 문서 하단에 좌우로 나뉘어진 준소상의 오른편(가을·겨울용)에는 술잔인 작(爵)을 깨끗하게 씻어 담아두었고, 왼편(봄·여름용)에는 3번의 헌작(獻爵·술잔을 올림) 중 초헌관에게 술을 전달하기 위해 2개의 술잔을 바구니에서 꺼내놓은 모습을 그렸다. 또 오른편 준소상의 상단에는 두 개의 촛대와 등잔이 그려져 있는데, 신실에 들어가기 전의 모습을 그린 것으로, 상단의 신실의 상차림에는 촛대와 등잔이 상에 배치되어 있다. 모든 절차의 처음이 중요하듯이 상차림의 첫 번째 변화를 그림으로 전함으로써 담당자들의 주의를 환기시켜주는 역할을 했을 것이다. 이러한 동도이시법(同圖異時法·한 그림에 다른 시간대의 여러 그림을 담는 방법)은 동아시아 회화의 전통이 이 그림에도 고스란히 스며들어 있음을 보여준다. 

하은미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까다롭게 차린 제사상, 조상을 기리는 공간


장서각의 진설도는 제사상 차림을 통해 시공간의 변화에 따른 의례 절차를 잘 구현하고 있다. 제례의 실무자가 현장에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그 프로세스를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실용적 목적의 합리적인 기록물이라 할 수 있다. 마치 지금 우리가 제사 때마다 이러한 정보를 검색하듯이 조선시대 사람들도 이 그림 문서를 가지고 그날의 제사를 잘 마무리했을 것이다.

‘홍동백서’나 ‘조율이시’와 같은 제사상의 불변의 법칙과 같은 것들은 사실 현재를 사는 우리에게는 큰 의미가 없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옛날 우리 조상들이 제사상에 음식을 올리고 감사의 마음을 표현하고, 함께 살고 있지 않은 나의 부모, 부모의 부모를 기리는 시간을 명절이라는 형태로 가질 수 있다는 점은 아주 큰 의미가 있지 않은가.

하은미 한국학중앙연구원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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