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일보

검색

열정·파격… 시대를 앞서간 사랑의 기술

입력 : 2016-09-03 03:00:00 수정 : 2016-09-02 22:27:26

인쇄 메일 글씨 크기 선택 가장 작은 크기 글자 한 단계 작은 크기 글자 기본 크기 글자 한 단계 큰 크기 글자 가장 큰 크기 글자

‘남녀칠세부동석’ 사회의 고전문학
오늘날 못지않게 뜨거운 사랑 담아
남자 선택만 기다리는 여자가 아닌
적극적이고 당당한 모습으로 그려
한 남자와 두 여자의 관계 묘사도
 
신동흔·서사와치료연구모임 지음/역사의아침/1만6000원
신로맨스의 탄생/신동흔·서사와치료연구모임 지음/역사의아침/1만6000원


말할 것도 없이 남녀의 사랑은 영원한 과제이고 가장 흥미로운 주제다. 지금이 그렇듯 옛날에도 사랑의 불꽃은 쉼없이 타올랐고, 고전문학은 ‘영롱한 말’로 그것을 전했다. 그것을 고전하면 떠올리는 구식이고 봉건적이며 틀에 박힌 것일 거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흔히 할 수 있는 예상보다 훨씬 진보적이고 파격적이며 절실하고 열정적이다. 신간 ‘신로맨스의 탄생’은 “시대보다 두 걸음이나 세 걸음쯤 앞서 갔던” 고전문학 속 사랑 이야기를 전한다. 

◆몸, 마음도 모두 강렬한…


남녀칠세부동석의 사회에서 생산된 고전이지만 서로를 향한 곡진한 마음은 물론이거니와 몸도 한껏 뜨거워지는 사랑을 담고 있다. 자유연애가 제한되었던 시대에 문학은 억눌린 열정을 분출할 해방구였던 모양이다.

사랑은 시작부터 강렬하다. “위생은 미친 마음이 크게 일어나 수레를 끄는 여섯 마리 말이 동시에 치달리듯 하니 끝내 제어하지 못하고….”(‘위경천전’) 여자에게 한 눈에 꽂힌 남자의 마음을 묘사한 문장이다. 봄날 갑작스러운 바람에 “(여자가 덮고 있던) 보자기가 걷히는 순간 버들 눈, 별 눈동자의 네 눈이 서로 부딪혀”(‘심생전’) 불같은 사랑을 직감하는 남녀도 있다.

서로의 마음을 확인한 남녀는 돌격하듯 ‘운우의 정’(雲雨之情·남녀간의 육체적 사랑)에 빠져든다. “…봄날의 구름처럼 마음이 일렁여 질탕한 행동을 멈추지 않더니, 결국 온갖 정을 나누고 모든 즐거움을 다 누린 뒤에야 그쳤다.”(‘위경천전’) “세 사람이 한 이불 아래 누우니 그 곡진한 사연을 이루 다 말할 수 없었다”(‘최치원’)고 해 ‘한 남자와 두 여자’의 관계를 묘사하는 파격도 보여준다. 

달빛을 받으며 은밀히 사랑을 나누는 연인의 모습을 포착한 신윤복의 ‘월하정인’. 어느 때라도 남녀의 사랑이 끊긴 적은 없었고, 고전문학은 그런 사랑을 빼어난 문장으로 묘사한다.
◆여자, 사랑에 솔직하다


‘일부종사’의 표상으로만 들여다보면 “일관되게 당당하고 솔직한” ‘인간 춘향’의 모습이 제대로 보이지 않는다. 박재인 건국대 연구교수는 기생인 춘향이 양반가 규수에게나 어울리는 지조와 절개를 지향했던 것을 “자신에 대한 사랑 때문이었다”고 해석했다. 자신이 살았던 시대에 가장 고귀한 가치였던 정절의식에 충실함으로써 신분을 초월해 스스로의 가치를 높이는 길을 선택했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자신을 너무도 사랑했기 때문에 남자에게 종속되어 노리개 노릇을 하는 비인간적인 삶을 용인할 수 없었던 것”이라며 사랑에 솔직했던 춘향의 모습을 제시했다.

고전문학 속 여자는 남자의 선택을 기다리는 수동적인 존재가 아니다. 사랑에 적극적이고 당당하다. ‘최척전’ 속 옥영은 자신이 선택한 최척을 반대하는 어머니에게 “이것은… 제 일생과 관련된 일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부끄러움을 꺼려하여 침묵을 지킨 채 말을 하지 않고 있다가, 마침내 용렬한 사람에게 시집가서 일생을 그르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한다. 잘못된 선택으로 결론이 나긴 하지만 초옥은 억지 결혼을 한 후에도 자기만의 사랑을 꿈꾸었고, 이상형인 이생을 만났을 때 적극적인 태도로 마음을 얻고자 노력한다.(‘포의교집’)

◆영원한 인연을 기약하는 이별

‘만복사저포기’는 사랑의 과정보다 이별의 의식이 더 길고 자세하다. 부처와 내기를 벌여 ‘그녀’를 소개받은 양생은 그녀가 산 사람이 아닌 귀신임을 금방 직감한다. 그러나 양생은 거품처럼 사라질 사랑이라도 지금이 행복했기 때문에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최선을 다한다. 불과 사흘 낮, 사흘 밤을 보내고 이내 다가온 이별, 양생과 그녀는 이별의식을 치른다.

그녀의 이웃인 4명의 처녀를 불러 잔치를 벌인다. 그녀와 마찬가지로 귀신인 처녀들은 잔치를 통해 한을 풀고 제 갈 곳으로 돌아간다. 두 번째 의식은 그녀의 부모를 불러 영혼 결혼식을 치르는 것이다. 그녀는 부모에 자신이 양생과 짝이 되었음을 알리고, 양생은 기꺼이 신랑이 되어 너무나 고맙고 소중한 그녀가 한을 풀고 떠날 수 있도록 배려한다. 이별의식은 양생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그녀와의 사랑이 허망한 것이 아님을 확인하는 과정이고, 그녀의 진정한 배필이 되어 대대로 이어질 인연을 기약하는 과정이다.

글을 쓴 노영윤씨는 “아름답게 이별을 하면 오히려 이별을 통해 더 가까워질 수 있다. 옆에 있지 않아도 늘 옆에 있음을 느낄 때 진정으로 함께하는 것이 아닐까”라고 적었다. 고전문학이 말하는 사랑의 원칙 중 하나다.

강구열 기자 river910@segye.com

[ⓒ 세계일보 & Segye.com,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오피니언

포토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아인 '미소 천사'
  • 비웨이브 제나 '깜찍하게'
  • 정은지 '해맑은 미소'
  • 에스파 카리나 '여신 미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