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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훈의법조타운] 여자의 성(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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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26 21:23:40 수정 : 2017-02-03 19:2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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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해도 자신의 성 지키는
한국 여성들 일본보다 나아
언젠간 양성평등 어긋난다며
관습 허물 날 오지 않을까
마거릿 대처 전 영국 총리,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 테리사 메이 현 영국 총리, 그리고 미국 차기 대통령이 유력한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은 공통점이 있다. 서양의 오랜 관습에 따라 결혼 후 남편의 성(姓)으로 바꾼 점이 그것이다.

어릴 때 이름은 각각 마거릿 로버츠, 앙겔라 카스너, 테리사 브레이저, 그리고 힐러리 로댐이다. 남편이 먼저 대통령에 오른 클린턴 가문은 예외로 쳐도 대처나 메르켈, 메이 가문은 출중한 며느리를 얻은 덕분에 세계사에 길이 남게 됐다.

김태훈 사회부 차장
구미 국가들도 법적으로 여자가 남편의 성을 따라야 하는 건 아니다. 힐러리는 1975년 결혼 후에도 로댐이란 성을 계속 쓰다가 남편이 정치활동을 본격화한 1982년에야 보수적 유권자층을 의식해 클린턴으로 바꿨다. 1998년 대학교수 요아힘 자우어와 재혼한 메르켈은 새 남편의 성을 따르지 않는다. 메르켈은 1982년 헤어진 옛 남편의 성이다.

한·중·일 3국 가운데 일본만 서양처럼 여자가 결혼하면 남편 성을 따른다. 일본의 이 ‘부부동성제’는 오래된 전통은 아니다. 19세기 후반 메이지유신을 즈음해 쏟아져 들어온 서양 문명의 하나다. 물론 현대 일본 민법은 ‘부부는 혼인 시 남편 또는 아내의 성씨를 따른다’고 규정해 남편이 아내의 성을 따를 길도 열어놨다. 하지만 현실에선 일본 부부의 약 96%가 남자 성을 따른다.

그래선지 일본에선 ‘부부동성제가 헌법의 남녀평등 조항을 침해해 위헌’이란 문제 제기가 끊이지 않는다. 1994년 일본 첫 여성 대법관이 된 다카하시 히사코(高橋久子)는 취임 일성으로 “여성의 거의 100%가 결혼으로 성을 바꾸며 나 자신도 그 고통을 경험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12월 일본 대법원은 부부동성제를 둘러싼 위헌소송에서 대법관 10대 5 의견으로 합헌 판결을 내렸다.

다수의견은 “가족이 하나의 성을 쓰는 것이 합리적”이라며 “남편의 성을 선택하는 부부가 압도적 다수인 현실이 법률 규정 자체에서 발생한 결과라고 볼 수는 없다”고 판시했다.

현직 여성 대법관 3명 모두가 위헌 취지 소수의견에 가담한 점에서 보듯 일본 여성계는 이 판결에 매우 비판적이다. 당장 “대법원에 여자가 적어 성차별 판결이 나왔다”며 여성 대법관 증원 운동에 나설 기세다.

‘부부별성제’를 택한 한국의 여성은 결혼으로 성이 바뀔 일은 없으니 일본보다 낫다. 하지만 자녀는 우선적으로 아버지 성을 물려받도록 정한 ‘부성주의’ 원칙만큼은 한국이라고 예외가 아니다. 호주제가 엄연히 살아 있던 시절에 만들어진 옛 민법은 아예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르고 부가에 입적한다’고 못박았다.

박경리 대하소설 ‘토지’는 최 참판댁 무남독녀 서희와 그 집의 머슴 길상의 혼인 장면이 백미다. 그냥 신분을 뛰어넘은 아름다운 사랑으로만 여겼다면 착각이다. 여자는 대를 이을 수 없는 가부장제의 한계를 극복하려는 한 여인의 집념이 서려 있다. 소설에서 서희는 자기 성을 물려주려고 일부러 신분이 낮은 남자를 택했음을 고백한다.

“성씨조차 알 길 없는 사내 길상은 지금 이곳 민적(民籍·옛 호적)에는 최길상으로 기재되었으며 따라서 아들 둘은 최환국, 최윤국이다. 최서희는 김서희로. … 두 아이는 여하튼 최 참판댁의 핏줄인 것이다.”

현행 민법 781조 1항은 ‘자는 부의 성과 본을 따른다. 다만 부모가 협의한 경우에는 모의 성과 본을 따른다’고 돼 있다. 2005년 헌법재판소가 재판관 7대 1 의견으로 옛 민법에 헌법불합치 결정을 내린 뒤 고쳤다. 부성주의 원칙을 계속 고수하되 어머니 성을 따를 길도 살짝 열어둔 것이다.

당시 헌재는 부성주의 원칙 자체에 대해서는 “규범 이전에 생활양식으로 존재해왔다”며 위헌성을 부인했다. 반면 유일한 여성인 전효숙 재판관은 “국가가 일방적으로 아버지 성을 강요하는 부성주의는 양성평등의 헌법정신에 위배된다”는 별개 의견을 냈다. 언젠가는 이 주장이 다수의견이 될지 모른다. 그러니 남성들이여, 출산 후 민법전을 펼쳐 보이며 아이 성을 뭘로 할지 협의하자고 요구하는 대신 흔쾌히 남편의 성을 따르는 데 동의해준 여성들한테 늘 감사하며 살 일이다.

김태훈 사회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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