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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기자와 만납시다] 외국어는 틀리면 안 돼, 근데 국어는 대충해도…

입력 : 2016-08-27 08:00:00 수정 : 2016-08-27 10:37:4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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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부를 못하는 학생’과 ‘공부를 못 하는 학생’ 중 맞는 문장은 뭘까? ‘한번 균열이 생기면 걷잡을 수가 없다’와 ‘한 번 균열이 생기면 걷잡을 수가 없다’ 중에는 뭐가 맞을까?

첫 번째 문장의 정답은 ‘못하는’이다. 여건이 되지 않아 공부를 할 수 없는 게 아니라 공부를 ‘일정한 수준에 못 미치게’ 하는 것이어서 합성어로 써야 하기 때문이다.

두 번째 문장의 정답은 ‘한번’이다. 해당 문장에서 ‘한번’은 ‘일단 한 차례’라는 뜻으로 보기 때문이다. 비슷한 예로는 △ ‘한번은 이런 일이 있었다(지난 어느 때)’ △ ‘언제 한번 놀러 와(기회 있는 어떤 때)’ △ ‘춤 한번 잘 춘다(강조)’ 등이 있다.



세계일보가 26일 국립국어원으로부터 받은 ‘2015년 주요 질문 20선’에 따르면 ‘못하다 / 못 하다’를 물어온 상담전화는 296건(0.34%)이며, ‘한번 / 한 번’을 궁금해한 전화는 266회(0.30%) 걸려왔다.

지난해 1월1일부터 10월31일까지 국립국어원이 진행한 전화상담(8만7232건)만 살폈다.

30대 직장인 A씨의 책상에는 외국어 교재가 가득하다. 그는 취업 준비를 위해 들여다봤던 토익책이 아직도 있다고 했다.

A씨는 “솔직히 학창시절에 국어를 많이 신경 쓴 적은 없다”고 말했다. 결국 부작용이 발생했다. 친구와 채팅 애플리케이션으로 대화를 하던 중 ‘되’와 ‘돼’를 헷갈렸다가 한 소리 듣고 만 것이다.

A씨는 학창시절 국어시간을 떠올리면 갑갑했다.

그는 딱딱한 설명이 가득한 책을 펼칠 때마다 졸음이 쏟아졌다고 털어놨다. 부끄럽지만 사실이어서다. A씨는 “국어를 5교시에 배웠을 때가 가장 힘들었다”며 “주변 친구들도 꾸벅꾸벅 졸곤 했다”고 말했다.

 

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페이지 캡처



국립국어원 김문오 연구관은 “외국어는 틀리면 안 되고 열심히 해야 한다고 생각하면서 국어는 조금 틀려도 괜찮고, 대충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국어를 사랑하는 자세가 절대로 아니다”라고 강조했다.

김 연구관은 “외국어 일색인 간판, 영어로 뒤덮인 가사 그리고 공공기관이 새로운 정책명과 사업명 등을 선보일 때 이해하기 쉽게 지어야 함에도 그렇지 않은 경우를 볼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어순화 = 순우리말로 바꾸는 일'이라고 착각하는 것과 관련해 김 연구관은 조언을 건넸다.

“국어순화는 어려운 말을 쉬운 말로 바꾸는 것이지, 순우리말로 바꾸는 것이 아닙니다.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작업입니다. 법률용어 영역에서 국어순화는 정보 소통을 원활하게 하고, 격차를 줄일 수 있습니다.”

김 연구관은 기사에 자주 등장하는 ‘징역형’도 언급했다.

“‘징역 12월에 처한다’는 말은 ‘12개월에 처한다’는 말이 맞습니다. 어린이들이나 잘 모르시는 분들이 보면 단순한 ‘12월’로 생각하실 수도 있죠.”

한편 김 연구관은 국립국어원이 대중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점을 인정했다.

김 연구관은 “처음에는 국립국어연구원으로 출범했지만, 2011년부터 현재 명칭을 쓰고 있다”며 “우리말 관련 프로그램에 도움을 드리고 있으나, 많은 분들에게 더 알려지도록 노력해야 할 부분이 많다”고 말했다.

김동환 기자 kimcharr@segye.com

* 아래부터는 국립국어원의 ‘2015년 주요 질문 20선(전화상담)’ 중 일부입니다 *

1. -에요 / 예요(300건·0.34%)

“그 사람은 친구에요/예요?”에서 맞는 표기는?

‘친구예요’가 맞는 표기입니다. ‘친구예요’는 ‘친구’에 ‘이-’와 ‘-에요’가 결합해 축약된 말입니다. ‘친구(이)다’처럼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고 뒤에 자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오면 ‘이-’가 쉽게 생략되지만, 앞말이 모음으로 끝나고 뒤에 모음으로 시작하는 어미가 오는 경우에는 ‘친구예요’처럼 축약이 일어납니다.

2. (으)로서 / 로써(283건·0.32%)

“상업 예술로서/로써의 디자인” 중 적절한 표기는?

‘상업 예술로서’입니다. ‘상업 예술’은 ‘디자인’과 동격의 자격(디자인=상업 예술)을 가지므로 자격의 ‘로서’가 붙습니다.

3. 안되다 / 안∨되다(183건·0.21%) 

“참석한 인원은 다섯 명이 안된다/안 된다.”에서 바른 띄어쓰기는?

‘안 된다’입니다. “참석한 인원은 다섯 명이나 된다.”의 부정 표현이므로 “참석한 인원은 다섯 명도 안 된다.”로 띄어 써야 합니다. 합성어 ‘안되다’는 ‘잘되다’에 상대되는 뜻으로 ‘좋게 이루어지지 않다’(시험 기간인데 공부가 안된다.), ‘훌륭하게 되지 못하다’(자식이 여럿이면 잘되는 자식도 있고 안되는 자식도 있다.),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하다’(안되어도 다섯 명은 와야지.)의 뜻으로 쓰이는데, 특히 ‘일정 수준에 이르지 못하다‘의 뜻을 잘못 이해해 ”참석한 인원은 다섯 명이 안된다.“로 붙여 써야 한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은 듯합니다.

4. 함께하다 / 함께∨하다(145건·0.19%)

“여러분과 함께하게/함께 하게 된 것을 큰 기쁨으로 생각합니다.”에서 맞는 띄어쓰기는?

‘함께하게’입니다. ‘함께하다’가 경험이나 생활 따위를 얼마간 더불어 하는 것이나 뜻이나 행동, 때 따위를 서로 동일하게 취하는 것을 뜻할 때에는 합성어로 붙여 씁니다. 반면, ‘숙제를 함께 하다’(함께 숙제를 하다)처럼 어떤 행동을 더불어 하는 것을 뜻할 때에는 띄어 씁니다.

5. 뿐 / ∨뿐(139건·0.18%)

‘사람뿐만/사람 뿐만 아니라’의 올바른 띄어쓰기는?

‘사람뿐만 아니라’입니다. 여기서 ‘뿐’, ‘만’은 조사로서 모두 앞말에 붙여 씁니다. 한편 같은 ‘뿐’이라도 ‘공부를 못할 뿐만 아니라’처럼 ‘뿐’이 관형형의 수식을 받는 경우에는 의존명사로서 앞말과 띄어 씁니다.

6. -ㄴ지 / -ㄴ∨지(110건·0.14%)

“얼마나 중요한지/중요한 지 모릅니다.”의 바른 띄어쓰기는?

‘중요한지’입니다. 여기서 ‘-(으)ㄴ지’는 막연한 의문을 나타내는 종결어미로서 붙여 씁니다. 한편, “여기에 산 지/산지 10년이 넘었다.”의 ‘지’는 어미 ‘-(으)ㄴ’ 뒤에 쓰여 어떤 일이 있었던 때로부터 지금까지의 동안을 나타내는 의존명사로서 앞말과 띄어 씁니다. 

7. 직장에서의 압존법(109건·0.14%)

“사장님, 박 과장님은 잠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라고 쓰는 것이 화법상 잘못인가?

아닙니다. 사장님 앞에서 그 아랫사람인 ‘박 과장’을 높이는 것은 압존법에 어긋나므로 잘못이라는 지적이 많으나, 압존법은 전통적으로 가족 간이나 사제 간에 적용되는 것으로서, 직장에서는 적용되지 않습니다. 따라서 “사장님, 박 과장님은 잠시 자리를 비우셨습니다.”라고 쓰는 것이 화법에 맞습니다.

8. 윗사람에 대한 ‘수고’ 표현(105건·0.13%)

윗사람이 출장을 나갈 때 “수고하세요.”라는 표현을 쓰는 것이 잘못된 것인가?

바람직한 표현은 아닙니다. 표준언어예절(2011)에서 퇴근하면서 윗사람에게 “수고하십시오.”라고 하면 듣는 사람이 기분이 상할 수 있으므로 윗사람에게 쓰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고 설명하고 있는데, 이에 준한다면 출장을 나가는 윗사람에게 “수고하세요.”라고 표현하는 것도 바람직하지 않습니다. 이런 경우에는 딱히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안녕히 다녀오십시오.”라고 표현하는 것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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