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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감!문화재] 명승 전문가 채제공과 번암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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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 2016-08-10 21:41:55 수정 : 2016-08-10 21: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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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암집’(樊巖集)은 정조의 절대적 신뢰를 얻어 우의정으로 10년 이상을 재임한 채제공의 현전하는 유일한 저술이다. 대체로 문장은 산문적이고 평이한 것으로 취급되었는데, 최근 가치가 새롭게 주목받고 있다. 그중 하나가 명승의 원형을 파악할 수 있는 귀중한 자료들을 담고 있다는 점이다.

책에는 명승을 유람하거나 정원을 감상하면서 저술한 유람기나 화원기가 유독 많다. 많은 세력가들이 경관을 조성할 때 조언을 구하고 정자의 기문을 써 달라는 청탁이 쇄도했던 모양이다. 채제공은 당시 자연유산분야의 전문가였던 셈이다.

채제공은 서울 보은동에 있었던 자신의 집 ‘매선당’, 홍상서의 ‘견산루’, 윤이중의 ‘분호정’ 등 이제는 사라진 20여곳 정원의 상세한 모습을 담았다. 또 지금은 온통 아파트단지인 서울의 옛 명승 모습이 묘사되어 있다. 그의 시문은 시적 풍취나 감흥을 표현하는 방식에서 탈피해 주변경관 묘사, 경관의 가치와 관리문제까지 곁들이고 있어 오늘날의 현지조사 보고서를 읽는 듯한 느낌을 갖게 한다. 일례로 ‘유이원기(遊李園記)’라는 글에는 정자를 지을 때 원래의 자연을 훼손하고 좋은 나무를 구해다 심은 것을 보고 자연을 억류하여 욕심을 부리는 어리석은 행동이라고 꼬집었다.

명승을 문화가 깃든 자연환경으로 보고 자연과 인간과의 관계를 중요하게 인식하는 최근의 추세에 맞닿은 글도 있다. ‘부용재기’(浮蓉齋記) 중 일부다.

“여러 유명한 노선생들은 거의 모두 몸소 좋은 경치 좋은 곳을 점령하여 살면서 글 읽고 학문하는 곳으로 삼고 사후에는 제사하는 곳이 된다. 그러한 땅이 지금에 이르러서는 바둑을 벌여 놓은 것처럼 많다. 그러나 그 사람이 거기에 가지 않으면 명승이 또한 스스로 나타나지 못한다. 이것은 서로 기다려서 이루어지는 이치이다.”

환경과 경제성장 어느 것 하나 소홀히 할 수 없는 지금, 250년 전의 채제공과 같은 전문가가 절실한 상황은 아닐까.

국립문화재연구소 이원호 학예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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