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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저널 그날', 고려-몽골 전쟁의 서막 '저고여 피살 사건'의 진실은?

입력 : 2016-07-30 21:10:18 수정 : 2016-07-30 21:1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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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KBS 제공

고려와 몽골의 전쟁을 불러온 '사신 저고여 피살 사건'의 진실이 밝혀진다.

31일 오후 9시 40분에 방송되는 KBS1 '역사저널 그날'의 '전쟁의 서막-몽골 사신 저고여 살해되다' 편에서는 통해 1225년 압록강 근처에서 발생한 몽골 사신 저고여 살인사건의 진실을 추적한다. 과연, 저고여 피살사건의 진실은 무엇일까?

고려는 강동성전투 이후 몽골과 형제맹약을 맺었다. 이후 몽골은 고려에게 과중한 공물을 요구하며 강압적인 외교를 한다. 그러던 1225년 정월, 압록강 근처에서 몽골 사신 저고여(著古與)가 살해된다. 

현장에는 범인을 짐작할 수 있는 증거가 발견되지 않았지만, 몽골은 고려를 의심한다. 결국 이 사건은 1231년 몽골이 고려를 대대적으로 침입하는 구실이 되며, 기나긴 전쟁의 서막을 연다. 이 사건의 진실은 만물각 '추적 6분-저고여, 누가 죽였나'에서 파헤쳐본다.

저고여 피살사건 6년 후인 1231년 8월. 몽골의 원수 살리타이가 대군을 이끌고 저고여 피살사건의 책임을 묻는다는 명분으로 고려를 침공한다. 순식간에 성을 포위한 몽골군에 함신진(현재 의주)은 항복하여 목숨을 부지한다.

한편, 몽골의 항복 권유에도 끝까지 저항한 철주성는 철저히 짓밟힌다. 본격적인 고려와 몽골의 기나긴 전쟁의 시작된 것이다.

세 갈래로 나누어 남하하던 몽골 부대가 귀주성에 다다른다. 당시 귀주성에는 서북면병마사 박서와 인근 성들의 지휘관들이 집결해있었다. 몽골군의 기세에 성내의 고려군은 사기가 위축돼  전의를 상실하고 대부분이 싸움을 회피하려한다.

이때 남문의 수비를 맡고 있던 김경손은 "너희들은 목숨을 돌보지 말고 죽어도 물러나지 않아야 한다"며  몽골군에 끝까지 대항하여 맞서 싸울 것을 말한다. 하지만 겁에 질린 병사들이 명을 받들지 않고, 오직 12명의 결사대만이 김경손과 함께 성문을 나선다.

김경손과 12명의 결사대는 몽골군을 물리치고 귀주성을 지켜낼 수 있을지는 KBS1 '역사저널 그날'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이슈팀 ent1@segye.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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